인간적 놀이파괴자 타일러 더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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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놀이파괴자 타일러 더든
이 글을 써내려 가기 전에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부탁할 말이 있다. 그것은 영화 ‘파이트 클럽’을 보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파이트 클럽 ’전반에 면밀히 흐르고 있는 놀이적요소와 그와 대비되는 놀이 파괴적 요소, 둘 다를 이야기 할 것이기에 ‘파이트 클럽’ 감상은 이 글을 읽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 편이 이 글의 이해를 돕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를 안다는 전제 하에 줄거리는 과감히 생략하도록 하겠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글쓴이의 태도가 오만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겠으나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이 사전 지식을 가지고 읽어줬으면 하는 글쓴이의 욕심이라고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이 글의 주된 주제이자 소재는 ‘폭력’이다. 어찌보면 푝력을 놀이의 범주에 넣는 것이 억지스럽다고 생각될 수 있으나 아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놀다 때리는 것이나 커서도 서로를 툭툭 치며 노는 경우를 볼 때, 또한 권투도 하나의 폭력을 사용하는 경기이자 놀이 임을 볼 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놀이는 놀이 자체가 아닌 어떠한 것을 위한 것이라는 조건 도 충족한다. 잭과 타일러는 폭력을 폭력 자체가 아닌 물질 문명을 파괴하기 위한 수단이며 물질 문명의 조정 아래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여기서 참 아이러니 한 점은 폭력이라는 놀이가 거대 문명이라는 놀이의 생산물을 파괴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뒤에 가서 더욱 자세히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 놀이는 사람을 열광하게 하거나 몰두하는 것, 즉 미치게 하는 힘이 있다. 이는 땀으로 범벅이고 그로 인해 번들거리는 몸을 하고는 서로 뒤엉켜 싸우는 모습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그 순간 그들 머리 속에는 단지 ‘때려야 한다! 싸워야 한다!’는 생각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순간에는 관중들의 환호도 야유도 들리지 않는다. 철저히 혼자가 되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할지는 의문이다. 원래 잭과 타일러 둘만이었던 조직은 어느새 미국 전 지역에 지부를 결성하고 군대화 되어 간다. 놀이 공동체는 놀이가 끝난 뒤에도 지속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 군대는 결국 갖가지 테러를 감행하게 된다. 이들에게는 테러도 하나의 유희이다. 뉴스에서 자기들이 저지른 일을 영화 관람하듯 맥주를 마시고 팝콘을 먹으며 낄낄대는 그들의 모습에서 심각함이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특수한 상황에 함께 있다는 감정.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공유한다는 감정, 일상 세계의 규범을 함께 배격한다는 감정은 그들을 더욱 끈끈하게 연결시켜주고 나아가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적이라는 배타적인 감정마저 조장하기에 이른다.
호모루덴스에서는 문화의 각각의 요소에는 놀이적 요소가 숨어있고 놀이와 문화라는 복합체에서는 놀이가 일차적이라고 밝힌 바있다. 이 점을 전제로 하면 타일러 더든은 철저한 놀이 파괴자이다. 그의 목표는 문명사회의 파괴이기 때문이다. 문명사회야말로 놀이의 복합체이며 궁극적인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일러를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그는 제법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영화 내내 풀어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그가 놀이를, 문화를 파괴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영화 초반 잭은 참을 수 없는 정신의 허기와 무력감. 불면증에 짓눌려 살다가 암환자 모임들에 나가게 된다. 암이란게 뭔가. 현대가 낳은 문명병 아닌가. 현대문명의 이중성을 지켜보며 그는 매일 심리적인 죽음과 부활을 경험한다.
잭이 타일러를 처음 만난 날은, 잭이 더 이상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야성적 본성을 찾겠다고 작심한 날일 것이다. 그래서 타일러가 묻는다.“머리 좋은 게 사는데 도움이 되냐”고 비아냥거린다. 드디어 나타나 문명적 허위의식을 비웃는 본성의 목소리. 잭은 자기의 가방이 똑같이 생겼다고 얘기한다. 가방 또한 한사람의 가치관과 생활 습관이 고스란해 들어있는 공간을 상징한다. 거기에는 타일러의 대명사 같은 비누가 들어있다. 폭탄과 원료가 같은 비누. 비누로든 폭탄으로든 세상을 정화하긴 마찬가지다. 하긴 그들의 원재료가 사람의 지방이라면 사람의 몸에도 파괴 일종의 정화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 당연해진다.
광고는 우리를 자동차와 옷에 매달리게 해서 , 싫어하는 일을 해 번 돈으로 필요도 없는 것들을 사게 만든다. 문명적 가치관의 껍데기, 허위의식을 설파하는 본성의 일발. “니가 안다고 생각하는 건 다 잊어” 타일러는 문명이 세뇌시킨 선입견을 씻어버리고 본성에 충실한 새 인간으로 거듭나야한다고 우리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일벌은 떠날 수 있다. 수벌마저 날아갈 수 있다. 여왕벌이 그들의 노예다. 일벌과 수벌이 지탱하는 여왕벌 체제, 어느 쪽이 진정 노예인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오랜 명제, 심리적으로는 상부구조가 하부구조의 노예이다.
“우린 신이 버린 자식들이야”라는 대목에서는 무의식에 도사린 우리의 어두운 본성이. 자기를 억압하고 소외시킨 문명에 극도의 적의를 드러낸다. “우린 모두 거대한 거름더미의 일부분이야. 냄새나고 추하지만 , 철저히 썩어 세상의 비료가 되는 거름” 이는 사회를 지탱하는 하부구조 인간들의 역할을 가리킨다. 청소, 경비, 식당일 등 온갖 밑바닥 일을 해 문명의 상부구조를 떠받치는 존재들. 이들은 투쟁야성으로 문명을 정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 밤. 도로를 역주행하는 잭과 타일러의 차. 이는 질서를 거역하려는 의도적 장면이다. 마침내 고속도로를 이탈해 거친 밑바닥으로 쳐박히는 차. 타일러는 환호하면 외친다. “우린 방금 진짜 인생을 맛 본거야.”
금융 바벨탑들의 붕괴....마지막 대폭발의 장면을 감상하자며 타일러가 잭을 데리고 올라간 전망대. “이 창을 통해 이 나라 경제가 붕괴되는 걸 보게 될 거야. 경제적 평등에 한발 더 다가서는 거지” 개인 내면심리 속의 하부와 상부간의 투쟁은 사회구조 차원에서는 밑바닥 인생의 욕망의 본성과 문명적 질서와의 투쟁으로 구체화된다. 카메라는 한발은 신발을 신고 한발은 맨발인 잭의 상태를 클로즈업하여 보여준다. 이는 신발(문명)과 맨발(야성)사이를 말하는 듯 하다.
여기까지가 놀이파괴자 잭이 놀이를 파괴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내용이 좀 동떨어진 것은 아닌가라는 고민을 했다. 하지만 놀이라는 것이 우리 삶의 곳곳에 숨어있고 그 영역이 너무나도 광범위하기에 놀이에 대한 사고를 조금만 더 확장시켜 본다면 그리 벗어난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어떻게 보면 이 글은 놀이 파괴자의 입장에서 본 현 놀이문명의 죄가 폭로성 발언이다. 하지만 호이징하가 말한 놀이의 발전물인 경제와 재판이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지
금의 우리는 체스판을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개의 말 중 하나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
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경제라는 놀이 속에서 이효리가 광고에 입고 나온 의상을 입고 맥도날드를 먹으며 아파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미 놀이의 주체가 아니라는 것을 이 영화에서는 내내 경고하고 있다. “조종당하느니 부셔버려라!”이것이 감독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이었을까?
놀이의 형태는 끊임없이 변해왔고 그 중 잔류한 놀이 요소는 민속, 시, 철학, 그리고 법적, 사회적 생활의 다양한 형태 속에서 지식으로 결정된다. 그래서 본래의 놀이 요소는 문화 현상 뒤에 거의 완전히 감추어진다. 형태가 감추어 지면 그 속의 정신 또한 희미해 지는 것일까? 본래의 놀이적 요소는 사라진 채 천박한 자본주의의 장사속만 남은 우리의 현실에서 타일러를 인간적 놀이 파괴자라고 칭한다면 너무 지나친 감상주의적 발상일까?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내내 그에게 씁쓸한 측은지심이 드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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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루벤스 76p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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