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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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산업혁명의 정의
‘산업혁명’ (The Industrial Revolution)이라는 용어가 근대영국경제사의 기초적 개념으로 확립된 것은 1884년에 토인비(A. Toynbee, 1852-83)의 유고 『18세기 영국산업혁명정의』(Lectures on the Industrial Revolution of the Eighteenth Century in England)가 출판되면서였다.
토인비는 산업혁명의 본질을 ‘이전에 부의 생산 및 분배를 지배하고 있던 중세적 여러 규제에 대신하여 경쟁이 나타난 것’이라고 인식하고 그 주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즉, 첫째는 급속한 인구증가, 특히 도시 인구가 증가하였다는 것, 둘째는 공동경지제의 지양, 공동지 및 황무지의 대규모 인클로우저 및 소농장의 대농장에의 통합을 내용으로 하는 농업혁명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서 농촌인구가 감소하고 특히 중소농이 몰락하였다는 것, 셋째로 기계가 발명됨으로써 가내공업에 대신하여 공장제가 출현하였다는 것, 넷째로 교통기관이 변혁되고 그에 따라서 상업발전이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다섯째로 결과적으로 빈부의 격차가 확대되고 노동자의 지위가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토인비는 산업혁명을 단순한 기술혁신과 그 결과로서의 부의 양적 확대라고 하는 경제 과정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사회관계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 하나의 커다란 사회혁명으로 인식하였다. 즉 그는 19세기 산업사회의 특징으로서의 경쟁, 공장제, 부의 급속한 증가와 분배의 불평등 등을 1760년에서 1830년에 이르는 시기의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혁에 의해서 나타난 것으로 보고, 그와 같은 변혁과정을 바로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토인비가 역사적 개념으로 처음 사용한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1906년에 출판된 망뚜(P. Mantoux)의 대저『18세기의 산업혁명』(La revolution Industrielle an Xviiie Siecle, essai sur les commencements de la grande industrie moderne en Angleterre: 이 책은 1928년에 영역 되었다)에 의해서 학술어로서 확립되게 되었다.
그러나 20세기의 20년대에 들어와서 토인비의 고전적 산업혁명론에 대한 유력한 비판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첫째는, 토인비가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으로 인식한 역사상의 시기가 과연 과거와 단절된 ‘혁명’의 과정이었느냐 라는 점이었다. 이 점에 대한 유력한 비판은 우선 언윈(G. Unwin)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그는 산업혁명이 토인비가 생각한 것처럼 1760~1830년에 급격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인 만큼 그에 대해서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언윈에 뒤이어 산업혁명의 혁명성을 부정하고 고전적 학설에 비판을 가한 것은 클래팜(J.H. Clapham)이었다. 그는 바로 산업혁명기를 다룬 그의 대저『근대영국경제사』(An Economic History of Modern Britain: The Early Railway Age, 1820~1850, 1926)에서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경제발전을 연속적 과정으로 보고 그것을 단절이라든가 혁명으로서가 아니라 끊임없는 진보의 과정으로 보았던 것이다.
비판의 둘째는 기본적으로는 첫째와 관련되는 것이지만 산업혁명의 평가에 관한 것이었다. 클래팜은 통계적 분석의 결과로서 수직공 등 사양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제외하면 모든 공업노동자의 임금은 1850년에 이르기까지의 60년 동안에 현저히 상승하였다고 결론지음으로써 산업혁명의 평가에 관한 비관적 ‘전설’을 공격하면서 낙관론을 주장하였다.
요컨대 고전적 산업혁명론에 대한 비판은 생산방법의 변화, 즉 기술혁신을 포함해서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으로 인식된 역사과정이 ‘돌발적’ 또는 혁명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일어난 것인 만큼, 그와 같은 역사과정에 ‘산업혁명’이라는 딱지를 붙인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과 ‘산업혁명’은 노동자의 물질적 조건을 개선하였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비판은 반드시 클래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비판은 산업혁명의 해석에 하나의 전기를 가져왔다.
이와 같은 경향 속에서 같은 연속설낙관론의 입장에 서 있으면서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의 유용성을 재확인하고, 그에 일정한 개념을 부여함으로써 ‘산업혁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은 『산업혁명』(The industrial Revolution, 1760~1830, 1948)의 저자 애슈론(T.S Ashton)이었다. 그는 조지 3세시대에 일어난 경제적, 사회적 및 지적 변화를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로 인식하고 있다. 그는 클래팜적인 연속설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산업혁명’이 유용한 역사개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의 연구에 자극을 주었다.
최근의 경제성장사학에서 산업혁명은 ‘이륙’(take-off), ‘빅 푸쉬’(big push), ‘돌파’(breakthrough)등으로 인식되어 활발한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늘날 토인비-해먼드적 학설은 경제성장사학자들에 의해서 계승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경제성장사학에 속하는 학자로서 ‘산업혁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고 시도한 학자는 콜맨(C.D. Coleman)이었다. 그는 그의 논문 「공업성장과 산업혁명」(Industrial Growth and Industrial Revolutions, 1956)에서 종래의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1) 개별공업에서의 기술혁신, (2) 개별산업의 성장, (3) 국민경제의 근대적 변혁이라는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고 지적하고, 이들 세 가지 사용예의 타당성을 검토하여 ‘산업혁명’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그는 ‘산업혁명’을 특정공업의 성장률을 증대시키는 기술적 및 경제적 혁신이나 또는 몇몇 공업의 성장률 증대에 적용해서는 안 되며, 공업성장이나 단순한 기계화가 아니라 그 속에서 인구증가, 대규모 및 광범한 공업투자, 그리고 공업에의 과학의 응용이라는 매우 광범한 효과가, 공업화의 급속한 누적적 과정을 야기시키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변화의 결정적 시기에 적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콜맨의 산업혁명 개념은 앞에서 든 (3)의 개념, 즉 국민경제의 근대적 변혁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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