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학의 수용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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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양명학은 16세기 초 왕수인이 주자학의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내놓은 사상입니다. 양명학이 나온 배경은 크게 사상적 측면과 사회 경제적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사상적 흐름을 보면 원나라가 중국을 차지하고 난 뒤 1314년에 과거 제도를 부활시키면서, 『논어』,『맹자』,『중용』,『대학』에 대한 주희의 해석을 과거시험의 모범 답안으로 채택하였습니다. 그 결과 주자학은 막강한 국가 권력의 지원 아래 관학으로 자리 잡았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현실과의 긴장 관계를 놓침으로써 학문적 생명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학자들 대부분은 유학의 모든 체계를 주희가 다 이루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그 이론을 철저히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주자학을 실천 중심적인 모습이나 교조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명나라로 들어오면서 사물의 이치를 중심으로 이학(理學)에서 마음의 작용을 강조하는 심학(心學)으로 흐름이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철학에세이, 동녘 , 김교빈 , p200
다음으로, 사회·경제적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명나라는 15세기 중반부터 연이은 반란을 겪으면서 점차 쇠퇴기로 접어듭니다. 하지만 왕과 권력자들은 백성의 어려움은 아랑곳 하지 않고 더 많은 토지를 소유하는 일에만 열심이었습니다. 그 결과 농민의 조세 부담을 더욱 가중시켰고, 집 잃은 유민이 늘어나면서 곳곳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농민군의 구호는 “다시 혼돈의 하늘을 열자”는 것이었습니다.‘혼돈의 하늘’이란 주자학에서 내세우는 하늘이 정한 이치를 부정하는 것이자 봉건 통치 질서에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자학은 이 같은 사회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고, 따라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소수 민족과 농민군을 진압하는 데 여러 차례 참여했던 왕수인은 주자학에서 말하는 하늘이 정한 이치가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 주체와 분리되는 한 결코 백성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국철학에세이, 동녘 , 김교빈 , p201
이 같은 배경에서 양명학이 나옵니다.
2.양명학 격물치지
왕수인이 말한 마음의 이치는 맹자가 말한 양지(良知)였습니다. 양지란 맹자가「진심盡心」편에서“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사이에 서로 아끼는 것은 배우지 않아도 알고 연습해 보지 않아도 할 수 있다”고 했던 양지양능(良知良能)을 가리킵니다. 양지양능이란 타고난 앎이자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양지양능은 인간만이 아니라 만물에도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내 마음과 내 마음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만물 사이에는 조금의 틈도 없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만물 사이에는 조금의 틈도 없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의 본모습을 깨달으면 만물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주체의 입장에서 본 만물일체론(萬物一體論)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지행합일론(知行合一論)을 주장하였습니다. 지행합일론이란 마음의 움직임이 곧 이치를 드러내는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왔는데 그런 입장에서 왕수인은 앎이란 실천의 시작이며 실천이란 앎의 완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같은 생각은 사물에 담긴 이치를 먼저 깨달아 이를 바탕으로 실천에 나선다고 본 주희의 선지후행론(先知後行論)과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사실 먼저 알고 난 다음에 실천이 뒤따른다는 생각은 결과적으로 실천보다 앎을 강조하게 되지만 왕수인처럼 앎이 곧 실천이라는 입장은 실천을 강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 실천을 통해 자신의 양지에 도달하는 것이라는 치양지론(致良知論)으로 나아갔습니다‘치양지’란 마음과 이치가 하나로 합일된 경지로서 인간 자신의 타고난 도덕적 자각을 완성한 상태입니다. 왕수인은 사물 하나하나에 나아가 각각의 사물에 담긴 이치를 알아 간다는 주희의 격물치지론과 달리 실천을 통해 내 마음의 양지를 모든 사물에 드러낼 것을 주장한 것입니다. 한국철학에세이, 동녘, 김교빈, p204,205
정제두의 학문은 왕수인과 마찬가지로 격물치지를 해석하는 부분에서부터 주자학과 입장을 달리합니다. 특히 사물에 나아가 그 사물에 들어 있는 이치를 구한다고 했던 주희의 생각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도 없으며, 이러한 주희의 생각은 유학의 근본 가르침과도 다르다고 보았습니다. 사물에 담긴 이치를 탐구하는 작업으로는 도덕에 바탕을 둔 理의 본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정제두의 생각이었습니다. 정제두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마음에서 해답을 구하는 양명학에 접근해 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제두는 理를 구분하여 모든 사물의 이치 가운데 사람의 이치를 중심에 놓고 다시 그 속에서도 참다운 이치를 찾아야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에서 정제두는 이를 3단계의 구조로 이해하였습니다. 그 1단계는 모든 사물의 이치인 물리이고, 2단계는 사람의 이치인 생리이며 3단계는 도덕적으로 완전한 진리입니다. 한국철학에세이, 동녘 , 김교빈 , p211
그런데 정제두는 생명력의 여부에 따라 물리를 다시 말라비틀어진 나무조각이나 타고 남은 재 가은 무생물의 이치와 풀이나 나무, 날짐승과 길짐승처럼 생명력이 가득한 생물의 이치로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생물도 인간처럼 자신의 생명력을 남을 위해 쓸 수는 없다는 점에서 무생물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물도 인간처럼 자신의 생명력을 남을 위해 쓸 수는 없다는 점에서 무생물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개체의 삶의 원리이자 종족 보존의 법칙으로 작용하는 생명력을 인정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무생물의 이치는‘죽은 이치’라 하였고, 생물의 이치는 그 생명력 때문에 인간과 가까운 존재라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력도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합당한 이치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고 보았습니다. 즉 소를 밭 갈게 하고, 말을 달리게 하며, 닭을 삶아 먹기도 하는 이치는 모두 인간이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경우들을 하나하나 결정하고 처리하는 것이 실은 오직 내 한 마음에 달려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정제두의 사물 이해는 철저히 인간 중심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물리보다 상위 개념인 생리는 무엇일까요? 생리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생리는 순수한 도덕적 이치가 아니라 생리적이며 감각적인 제한을 받는 구체적인 인간의 이치입니다. 따라서 그 속에는 언제나 선으로 드러나는 도덕적 본성과 함께 악으로 드러날 수도 있는 욕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리는 헛된 조리에 불과한 물리와 달리 능동적으로 자신의 도덕성을 실천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성리학자들이 인간의 본성을 순수하게 선만 존재하는 본연지성(本然之性)과 선과 악이 함께 존재하는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눈 것에 비추어 본다면 생리는 기질지성에 속하는 셈입니다. 정제두는 이처럼 물리와 생리의 치아기 생명력을 바탕으로 한 능동성의 유무에 따른 차이가 있음을 명백히 한 것이며, 그렇게 때문에 다시 생리 가운데서 진리를 택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한국철학에세이, 동녘 , 김교빈 , p212
그렇다면 정제두의 공부 목표였던 진리는 무엇일까요? 사실 현실에 살아가는 인간은 모두 理와 氣를 함께 가지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理가 도덕적으로 완전한 것이라 해도 그것이 불완전한 氣 속에 들어 있는 한, 우리는 생리적·적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완전히 선만 존재하는 진리는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이상에 불과한 것일까요? 만일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진리를 찾는다는 정제두의 생각은 처음부터 허구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생리 가운데 들어 있는 악을 제거하면 완전한 본모습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볼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정제두는 이때의 기준 또한 자신의 마음속에서 찾았고, 내 속에 들어 있는 완전한 진리를 깨달으면 나부터 모든 사물에 이르기까지 가려졌던 틈이 없어지면서 만물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한국철학에세이, 동녘 , 김교빈 , p213,214
3.정제두의 이기론
이처럼 정제두는 만물의 이치를 3단계의 중층 구조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성리학이 나온 이후 학자들이 만물을 설명하는 개념은 理와 氣였습니다. 한국철학에세이, 동녘 , 김교빈 , p214
그렇다면 이기일원론을 취하는 정제두의 경우 이기일원이라고 하려면 理의 구조에 대응하는 氣의 구조가 있어야 논리적인 합리성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제두가 氣를 어떻게 보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물리에 대응하는 氣는 어떤 것일까요? 정제두는 이 氣를 각각의 사물에서만 조리 있게 통하는 氣라고 합니다. 조리 있게 통한다는 것은 합법칙적인 것이기는 하나 보편적으로 모든 사물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에만 적용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2단계인 생리에 대응하는 氣는 어떤 것 일까요? 생리는 앞에서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능동적 생명력이며 그 속에 선과 악이 함께 들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정제두는 생리에 대응하는 氣를 생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생기가 돈다’고 할 때의 생기입니다. 생기는 매일 생활해 가는 활력이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는 혈기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사물을 알고 분석해 가는 지각 능력이나 어려운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생기가 작용한 것이며, 그런 점에서 생기를‘양지’라고도 부릅니다. 하지만 생기 역시 생리처럼 선과 악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리와 대응하는 氣는 어떤 氣일까요? 정제두는 이것을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지닌 순수한 氣라고도 했고, 참된 氣라는 뜻에서‘진기’라고도 했습니다. 그 밖에 으뜸이 되는 氣라는 뜻에서‘원기’라고도 하고 가장 큰 氣라는 뜻에서‘대기’라고도 부릅니다. 하지만 정제두의 생각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용어는 맹자가 말했던‘호연지기(浩然之氣)’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높은 산에 올라 막힌 것 없이 탁 트인 발 아래 광경을 볼 때의 느낌이 호연지기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철학에세이, 동녘 , 김교빈 , p215
호연지기란 이처럼 어떤 경우에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도덕적 용기를 뜻합니다. 호연지기에 대해 정제두는 큰 물처럼 넓고 막힘이 없으며, 부끄럼이 없기에 부족함도 없으며 도덕적으로 조
참고문헌
<참고문헌>
·한국철학에세이, 동녘, 김교빈 , 2003년
<토론주제>
1.양명학의 발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주자학과 양명학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학자에 따라서 주자학의 연장이므로 계승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과 주자학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으므로 극복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전자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약간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두 사상 모두 봉건 사회의 이데올로기였다는 점을 중시하여 이학(理學)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러나 후자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주자학의 엄숙주의·권위주의에 반기를 든 것이 양명학이며 이러한 변화가 주지주의적 규제에서 정서(精書)에 입각한 자연주의로, 객관에서 주관으로 전통에서 반전통의 자유주의로 나타났다고 보고 주학과 구별하여 심학(心學)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입장인지 토론하여 봅시다.
2.주희의 격물치지론은 사물에는 각각의 이치가 있고 사람에게는 앎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앎의 능력으로 사물의 이치를 하나하나 알아가다 보면 어느 날 하루아침에 모든 사물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입장과 왕양명은 인간의 마음이 이(理)를 낳았다고 하면서 성(性)과 정을 모두 포함하는 마음 자체가 곧 천리(天理)라고 주장한 양명의 입장 중 어느 입장인지 토론하여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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