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과연 링컨과 같은 길을 갈 수 있을 것인가 노무현과 링컨의 정치리더쉽 비교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3.29 / 2015.03.29
  • 6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0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노무현은 과연 링컨과 같은 길을 갈 수 있을 것인가?
-노무현과 링컨의 정치리더쉽 비교-
2003년 올해 우리는 노무현이라는 한 정치가를 투표를 통해 우리나라의 국가수반으로 선택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자체가 아직 3달을 넘기지 않은 시점에서 앞으로 어떤 변수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대통령 선출 자체가 우리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부르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 변화들은 정치적인 면에서 이른바 3김이라는 과거 부조리한 인물, 행태와의 결별일 뿐더러 동시에 21세기라는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자 국제적으로는 새로운 권력구조의 도래 속에 시작되는 정권이라는 점, 거기에 국내적으로는 급변했던 한국사를 살아온 세대들 가운데 이른바 무(無)부채 세대라고 불리는 풍족한 경제발전기의 세대가 사회 구성의 중심세대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대통령 개인부터 이른바 특권의 혜택을 받지 않는 서민 대통령이라는 점 역시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반증이라 할 수 있겠다. 과도한 평가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이 이러한 변화의 시기임은 많은 이들이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또다른 변화의 시대에 대통령이었던 링컨을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해 보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자신이 존경하는 정치인은 김구선생과 링컨 대통령이라고 말하면서 종국적으로 링컨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쉽을 배우고 싶다고 밝힌바 있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참고자료로 읽은 그의 저작 “노무현이 만난 링컨”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사실 그와 링컨 대통령은 생애에서부터 사회적, 정치적 경험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분에서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어 큰 흥미를 끈다. 노무현 대통령이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라는 책을 적은 2001년 시점에서 그는 링컨 대통령을 모습을 배우길 원하는 정치인이었지만 2003년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는 그의 삶은 놀라우리 만치 링컨 대통령의 삶과 유사한 모습을 띄게 되었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드물뿐더러 가지기도 어려운 직책을 가진 두사람이 이처럼 유사한 삶을 산 것은 이야기거리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소재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선 링컨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쉽을 비교 분석해보고자 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두 대통령에 대해 먼저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글을 쓰는 본인으로써는 창피한 일이지만 링컨 대통령에 대해서라고는 어렸을 적 책 외판원이 팔아대는 문고판의 그림 위인전기에서 본 것과 단편적인 교과서 수준의 내용이 전부였다. 참고 서적으로 읽은 “노무현이 만난 링컨”은 아마도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읽는 링컨에 대한 서적이자 위인전기가 아닌가 싶다. 사실 책에 서술된 내용은 저자인 노무현 대통령의 개인적인 존경심에서 나온 예찬론적인 부분이 상당하여 객관적 사실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만을 인용하겠다.
링컨 대통령은 서부 개척시대인 1809년 미국 켄터기주의 한 시골에서 가난한 개척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우리가 영화에서나 봤던 서부개척시대와는 달리 당시 개척 농민의 삶이란 하루하루 힘든 노동을 해야만 하는 삶이었다. 더군다나 9살에 어머니를 잃은 링컨의 유년기는 풍족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그는 정규교육은 고사하고 학교라고는 13살 때 근처의 마을에 연 학교에서 3개월간 성경에 대해 읽고 쓰기를 배운 정도가 고작이었다. 물론 그를 통해 그의 독학의 길이 열린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그가 배움의 길을 잃지 않도록 해준것은 새어머니인 새러였다. 그의 친모가 죽은지 1년뒤에 만난 계모 새러는 그에게 유년시절의 바른 길을 제공한 진정한 스승이었다. 실제로 그의 행적 곳곳에서 새어머니에 대한 그의 강한 애정을 볼 수 있다.
이와 비교해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유년시절 역시 풍족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1946년 경남 김해의 시골 농가에서 태어난 노무현 대통령은 그 시대의 국민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하루하루의 삶이 힘겨운 날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1966년 경남상고를 졸업하는데 이것은 당시의 평균으로 보자면 상당한 학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링컨 대통령에 비하면 그의 배움의 길은 꽤나 순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링컨 대통령의 첫 정계진출은 그가 가게 점원으로 일하던 뉴세일럼의 주의원이었다. 당시 생활고등의 이유와 주위의 추천으로 진출했지만 낙선했고 다시 생활고에 찌들어 그는 군인과 우체국장등의 일을 하게된다. 그리고 재선 끝에 그는 일리노이주의 수도 밴덜리아에서 주의회 초선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해 당선에 용기를 얻어 법률공부를 시작해 3년뒤인 1837년 변호사 자격증을 따게된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졸업후 여러 일을 하다 법률 공부를 시작해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대전지법 판사를 거쳐 3년 뒤부터 변호사로 활동을 하였다. 그 뒤로 여러 시국사건에 변호를 맡으면서 사회운동에 눈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다 1988년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링컨과는 반대로 법계에 먼저 진출하고 후에 뒤늦게 정계에 입문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링컨 대통령은 2년 임기의 주의원을 4선하면서 변호사로써도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 경험을 쌓아갔다. 그 안에서도 그는 몇 번의 실패와 실수 성공등 많은 경험을 쌓아갔고 1846년 소속인 휘그당의 공천을 받아 하원의원에 출마 처음으로 중앙정계인 워싱턴 정가에 들어가게 된다. 사실 그는 이 공천의 문제 때문에 첫 공천을 받지 못했고 2년뒤에는 다시 하원의원직을 양보해야만 했다. 사실상 그의 공직생활은 이걸로 끝이였다. 그는 1955년까지 정당활동과 변호사 업무를 계속했고 1955년 상원의원직을 노려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만다. 그리고 다음해 그의 긴 소신중에 하나였던 노예제 반대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라 큰 쟁점이 되면서 노예제 반대자를 중심으로한 공화당에 들어가게 된다. 2년뒤인 1858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선거에 출마하여 자신의 일생의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의 더글러스와 7차에 걸친 논쟁을 전개함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당시 이미 민주당의 거물급 인사였던 더글라스 와의 설전은 낮은 지명도의 링컨을 단번에 그와같은 수준의 인물로 격상시켜 그의 입지강화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하여 1860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하여 분열된 민주당을 꺽고 당선에 성공한다.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노무현과 링컨의 정치리더십 비교
  • 노무현과 링컨의 정치리더십 비교옆집 아저씨처럼 서민적이고 친근한 분위기, 5년 전 만해도 누구도 쉽게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없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16대 대통령으로 당당히 당선되었다. 일명 ‘노사모’ 라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의 대대적인 지지와 사랑은 민주당의 가장 강력한 이인제 후보와의 민주당 자체 공선에서 승리를 가져다 줄만큼 대단하였다. 이렇게 국민이 만들어준 노무현 대통령은 시작에

  • 노무현과 링컨의 리더쉽 비교
  • 같은 리더십을 발휘했지만 정치리더십이라는 것은 어떤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상황에 따라 또 자신의 의지와 필요에 따라 변화 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이 취임 중에도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또한 노 대통령과 링컨의 정치적 성장과 일생에 대해서는 충분한 자료와 정보가 있으므로 특별히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다.◈ 링컨과 노무현의 리더쉽 비교 ‘노무현’ 하면 일단 떠오르는 것은 “대화와 토론,

  • 노무현과 링컨의 정치 리더쉽비교
  • 리더쉽으로 정치를 해나갈지는 우리 나라를 운영해 나갈지는 아직 모를일이다. 현재의 판단, 후세가 내릴 평가 또한 아무도 모른 는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링컨의 리더쉽을 배우고자 했으며 가장 닮고 싶은 리더쉽, 또한 자신과 링컨과 닮은 점이 많다고 말하고 있다.그렇다면 노무현과 링컨이 걸어온 길, 그리고 둘이 가지고 있는 리더쉽의 비교를 통하여 비교해보고 노무현이 원하는 결과 링컨과 같은 대통

  • 노무현과 링컨의 리더십비교와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길
  • 링컨의 사진을 보면서 링컨의 얼굴이 너무 야위었기때문에 수염을 기르면 훨씬 더 멋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여성이 그를 더 좋아하게 되어 자신의 남편에게 링컨에게 투표하라고 권하게 되고, 그러면 링컨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그에게 편지를 썻던 것이다. 그리고 링컨은 그 소녀의 생각을 받아 들여 수염을 길렀다. 그 후 링컨의 턱수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링컨의 트레이드마크인 수염처럼 노무현 역시

  • 노무현과 링 컨의 정치 리더십 비교 보고서
  • 노무현과 링컨의 정치리더십 비교옆집 아저씨처럼 서민적이고 친근한 분위기, 5년 전 만해도 누구도 쉽게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없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16대 대통령으로 당당히 당선되었다. 일명 ‘노사모’ 라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의 대대적인 지지와 사랑은 민주당의 가장 강력한 이인제 후보와의 민주당 자체 공선에서 승리를 가져다 줄만큼 대단하였다. 이렇게 국민이 만들어준 노무현 대통령은 시작에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