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행문]기행문-전라북도 고창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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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땅 굽이굽이 명승지가 많다. 한발 한발 내 디딜 때마다 새로운 감흥에 젖는다. 그러나 그 모든 곳을 다 가볼 수는 없는 일, 가지도하고 가볼수 있는 게 기행문을 읽어 보는 것이다. 간접경험을 통해서 직접 경험 같은 경험을 기행문을 통해 얻어 보자.
목차
목차
1. 소개의 글
2. 고창읍을 다녀와서
3. 참고자료
본문내용
선운사에 가면 잊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 “복분자” 뉘 집 귀여운 여자 아기의 이름 같지만 고창이 자랑하는 유명한 술 이름이고 또 선운사가 자랑하는 곡주의 이름이다. “ 이것이 말이여, 마실 때는 달착지근하고 목에 착 달라붙는데 과음을 하면 말이여 골을 팍팍 때린 당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토종 전라도 선술집 아저씨의 친절한 설명이다. 하긴 비싼 양주라도 과음하면 골을 안때리는게 어디 있겠는가 ? 과하면 독이지 ....

전래에 비방으로 만들어진 양념을 살짝 바른 고창의 풍천장어를 안주로 복분자를 한 병 들이킨 다음 작설차로 입가심을 하면 고창의 반을 본 것이다. 그리고 선운사를 떠나 바다로 나가면 탁 트인 서해의 망망대해가 나오며 해변에는 수백 년 된 소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동호 해수욕장을 만난다. 십리 남짓 펼쳐진 모래사장은 경사도 완만하려니와 해수의 염도가 높아 피부병, 신경통 환자들의 모래찜 장소로도 안성맞춤이다. 썰물 때는 바구니를 가지고 잡는 조개잡이는 도시 생활의 온갖 잡념을 떨쳐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아이들처럼 뛰어 놀며 재미있게 놀수 있어 조용한 바닷가를 찾는 도시민들의
참고문헌
3. 참고자료
현재의 고창군은 전라북도 6시 8군의 하나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고창, 무장, 흥덕 세고을 병합되어 생긴 이름이다.

병합되기 이전 고창은 본래 백제의 모량부리현인데 신라 삼국통일 이후 경덕왕 16년 고창현으로 고쳐 이웃 무령군(지금의 영광)의 영현이 되었고, 고려 때에는 고부군의 영현이 되었으며 이웃 상질감무가 겸임했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태종원년 두 현에 각기 감무를 두었고, 그 뒤 현감을 두어 나주진관에 소속되었다가 고종 32년 군으로 고쳐졌으며 건양 원년 전라남도에 소속시켰고 융희 원년 전라북도로 소속되었으며, 1914년 흥덕 무장을 병합했다.
흥덕은 본래 백제의 상칠현인데 신라 경덕왕 16년 상질이라 고쳐 고부군의 영현이 되었고, 고려에 들어서는 장덕, 창덕을 거쳐 흥덕으로 고쳐졌는데 장과 창은 충선왕과 창왕의 이름 이었기에 그걸 피하느라고 고쳐진 것이며, 감무를 두어 이웃 고창을 겸임시켰고, 조선조에 들어서는 따로 각기 감무를 두었다가 뒤에 현감을 두었으며 진관으로는 전주, 토포로는 나주, 속오로는 입암산성에 속했고, 고종 32년 군으로 고쳐졌고(1904년에 고부의 부안면이 편입되었다)

건양 원년 전라남도에 소속시켰다가 융희 원년 전라북도로 소속되었으며 1914년 고창에 병합되었다. 무장은 본래 무송과 장사 두 고을이 병합된 고을이다. 무송은 백제때 송미지현인데 신라 경덕왕 16년 무송현으로 고쳐 이웃 무령군의 영현이 되었고, 고려에 들어서도 그대로 내려왔으며, 장사는 백제때 상로현인데 신라 경덕왕 16년 장사현이라 고쳐 이웃 무령군의 영현이 되었고, 고려에 들어서도 그대로 내려왔으며, 뒤에 감무를 두어 무송을 겸임시켰고 조선조에 들어와 태종 17년 이 두 고을을 병합하여 무장이라고 하고 진을 설치하여 병마사를 두어 현 행정까지 겸임시켰다.(나주진관) 세종 5년 병마사를 첨절제사로 고치고, 그 뒤 현감을 두었다.
고종 32년 군으로 되어 전주부에 속했다가 건양 원년 전라남도에 소속시켰고 융희 원년 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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