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 측천무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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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태생
궁녀로서의 일화
황후되기까지의 과정
왕권침탈
무측천의 정치
사가의 평가
본문내용
옛날 중국에서는 기형적인 작은 발로 부자연스럽게 걷는 여성들의 모습이 진기한 구경거리는 아니었다. '기형의 발 만들기'를 유년시절부터 강요 받아왔기 때문이다. 국내외적으로 여론의 압력에 밀린 청(淸)정부가 1910년 금지령을 내려 차츰 행해지지 않았지만 전족의 유래에 관해서는 아직도 별로 밝혀진 바가 없다.

중국의 작가 루쉰은 자신의 작품 『고향』에 나오는 '두부가게 미녀'의 모습을 통해 전족의 이미지를 재현해 냈다. "저렇게 굽이 높은 신발을 신은 전족의 발로 빨리도 걷는구나"하고, 주인공이 두부가게 미녀를 보고 말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전족을 신고 빨리 걸을 수 없음을 말한다. 이런 전족의 유래는 대략 1천년 전 경이라고 하는데 전해져 오는 유래를 보면 아래와 같다.

『어떤 황제가 발이 작은 무희를 총애했다. 그것을 안 경쟁자들이 다투어 각각 발을 작게 보이려고 부심하게 시작했다. ‘작은 발로 보이는 것’ 자체가 후궁들 사이에서 패션의 중심이 되는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카케히 쿠미코, 『 영웅의 역사 9』, 여인천하. P.7


우리가 역사시대라고 생각하는 중국사는 위의 전족의 유래만 보더라도 극치 부권의 시대이며 여성을 부차적인 존재로 만들어 왔다. 특히 역대 제왕들은 일부다처(一夫多妻)인 경우가 많았다. 첩을 거느리는 것이 당연했던 봉건시대에 후궁은 미녀가 선발된다. 여색에 빠져 국사(國事)를 돌보지 않고 천하가 어지러워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여기에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통해 권력을 잡고 천하를 호령하는 사람도 생겼다. 경국지색(傾國之色)으로는 전한(前漢)의 조비연이나 당의 양귀비가 그 이름이 높다. 수렴청정을 한 황비는 전한의 여후(呂后), 당의 측천무후(測天無後), 청의 서태후(西太后)가 있다.

그 중 측천무후는 잠시나마 당제국의 맥을 끊고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 그녀는 중국사의 유일한 여성황제로서 진보적인 역할을 하면서 중국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태생
당나라의 제3대 고종(高宗)의 황후로 이름은 조(配)이고 산시성[山西省]에서 출생하였다. 대재상목으로 당나라 창업에
참고문헌
김영진 편저, 『중국오천녀사 中』, 대광서림, 1989.
볼프람에배하르, 『中國의 歷史』, 문예출판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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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환 편역, 『인물로 보는 중국역사 3』, 신원문화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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