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 그 끝없는 시지프스의 굴레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23.01.10 / 2023.01.10
  • 3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2,0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 그 끝없는 시지프스의 굴레
1800년대 자유무역경제는 결국 자본주의 국가들간의 식민지 경쟁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것은 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켰다. 전쟁 후 제국주의 전승국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영토를 재분할하고 패전국에 대해 막대한 배상금과 군비제한 등으로 철저히 응징하였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전쟁 물자 공급 등으로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 되었으며, 전쟁 후에도 피폐해진 유럽에 농산물과 공업제품 등을 수출함으로써 급성장했다. 미국의 경제성장으로 기업이 흑자를 내고 주가가 오르자 사람들은 주식으로 큰돈을 벌기 위해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었다. 1929년에 취임한 후버 대통령조차 미국 경제의 영원한 번영이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전후 피폐했던 유럽의 생산력이 점점 회복되자 수출은 줄어들었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시장이 축소되어 생산과잉 상태가 됐다. 거기에 소비에트가 사회주의를 선언하며 국제시장을 탈퇴해 큰 타격이 됐다. 마침내 1929년 10월24일, "암흑의 목요일" 월가의 주식이 폭락했다. 이것은 세계경제공황의 시작이었다. 주가는 한 달 사이에 40%나 폭락했고 이후 3년간 계속 하락했다. 이로써 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속출해 소비가 위축되는 불황의 악순환이 시작됐다. 후버는 경제를 구하는데 실패했다.
1933년에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뉴딜정책을 추진했다. 케인즈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공기업을 육성하고 국민의 일자리를 창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이전의 고전경제학이 주장해온 자유경제와는 다른 것이었다. 고전경제학의 주장은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개입은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을 왜곡시켜 최고 효율의 자원 분배를 저해한다는 논리였다. 따라서 공급만 해주면 수요는 알아서 따라 온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의 무정부성은 언제나 과잉생산 과잉공급을 초래할 위험성을 그 자체에 내포하고 있다. 1929년 공황은 그 결과였다. 케인즈는 ‘수요가 있으면 가격이 상승’하고 그러면 기업은 공급량을 늘리게 되어 경제가 균형을 찾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수요를 늘리기 위해서는 가계의 소득을 증대시켜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케인즈주의의 핵심은 국가가 국민경제에 개입해서 시장의 문제점을 보완한다는 것이었다. 국가는 물가와 실업 등을 조정하는데 집중하고, 복지제도의 강화를 통해서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시키자는 것이었다. 케인즈주의는 자본가들의 요구와 노동자들의 요구를 절충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국가는 기업 활동에 개입하지 않고, 국가의 개입은 화폐정책과 재정정책 등 거시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주식시장 등의 금융활동의 통제, 완전고용, 교육 및 연구지원 확대 등이 그것이었다. 이는 당시 테일러, 포드주의 영향으로 마구 쏟아져 나오는 상품을 소화해줄 소비자가 필요했던 자본가의 요구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본가는 노동자들에게 적정한 임금을 주고, 국가는 실업자 등에게 일정한 지원을 해줌으로써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케인즈주의를 바탕으로 미국 자본주의는 1929년 공황을 딛고 이후 성장하게 되었다.
한편 식민지를 소유하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는 제국주의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관세를 인상하는 블록경제화를 추진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식민지를 잃은 독일과 이탈리아는 군사력을 증강해 새로운 식민지를 획득하고자 했다. 결국 국제 분쟁이 생기고 파시즘이 등장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2차 대전이 끝나기도 전인 1944년, 미국은 전후 세계경제질서를 복구하기 위해 서유럽 전승국들과 함께 브레튼우즈에 모였다. 브레튼우즈 회의의 핵심은 세계통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즉, 세계무역에서의 기준 화폐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통 브레튼우즈 체제라고 한다. 결국 미국의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체제가 성립했다. 또 다른 나라의 돈을 달러를 바꿀 때 교환비율을 고정환율제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런 역할을 보조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이 만들어졌다. 즉, 무역수지의 불안으로 달러를 구하지 못하는 나라를 위해 달러를 빌려주는 기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세계적인 경제주도권 확립을 의미했다.
전후 유럽의 불안정은 노동계급과 사회주의운동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이를 우려한 미국은 전후 유럽을 지원하는 마샬프랜을 실시했다. 이것은 미국식 자본주의로 유럽을 재편하여 자본주의를 강화하고 미국의 주도권을 확고히 하려는 것이었다. 미국이 남한을 지원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1948년 중국혁명의 성공은 동아시아의 사회주의화의 위험을 강화시켰다. 따라서 미국은 패배한 일본의 재건을 지원하고 한국전쟁에 개입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의 자본주의를 강화하고자 했다. 한국전쟁을 통해 패전국 일본의 자본주의 체제는 복구되고 강화되었다.
이와 같이 케인즈주의는 1929년 이후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미국을 안정시키는 커다란 역할을 했다. 케인즈주의는 결국 미국의 자본주의를 성장시키고, 이를 통해 세계적 독점자본을 성장시켰다. 이는 또한 소련과의 막대한 군비경쟁의 토대가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세계에 대한 제국주의 지배질서를 강화하였다.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한국정치] 제6공화국
  • 그러나 이 직선제 개헌안에 따라 실시된 1987년 12월 16일 제 13대 대통령선거는 야권후보 단일화의 실패로 결국 4파전으로 치러졌다. 그리고 선거 결과는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 36.6%,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후보 28.0%,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후보 27.1%,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후보 8.1%로 야권의 패배로 끝났다. 결정적 패인은 역시 야권 분열(야권 대통령 후보 단일화의 실패)에 있었다. 후보 단일화의 실패는 망국적인 지역감정의 악화와 맞물려 지역주의적

  • 채움과비움 21 20 19 족보 통합본
  • 없는 질병으로 심한 고통을 겪고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비자연적인 방법으로 그 사람을 죽게 하는 행위12. 안락사와 존업사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알맞지 않은 것은?1)안락사의 사전적 의미는 편안하고 수월한 죽음 또는 자비로운 죽음으로 정의한다.2)네덜란드는 안락사를 법으로 허용하고 벨기에,룩셈부르크,미국 오레곤 주는 제한적 안락사를 허용한다.3)연명 치료의 무의미성을 판단하는 주체는 안락사는 환자의 판단에, 존엄사는

  • 커맨딩 하이츠 감상문
  • 끝이 난다. 감상평커맨딩 하이츠를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고 그보다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주류경제학이었던 고전학파의 경제학이 신자유주의 경제로 발전하는 것과 케인즈 경제학의 발전과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의 사상적 조류가 일정한 주기로 변화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재의 새로운 금융위기로 다시 케인즈주의 경제학이 대두하는 것을 보며 다시 한번 경제학의 큰 사상적 흐름이 변화될 수

  • 이상적인 복지국가
  • 그대로 개인이 돈을 지불해서 받는 교육이다. 돈 있는 사람들은 학교 시험을 위한 사교육을 많이 받을 것이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오로지 공교육에만 의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공교육만으로는 사교육으로 완전히 무장된 아이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잘 사는 집 아이들은 이미 학교시험을 위해서 시험선수가 될 준비를 끝마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속적으로 공교육이 강화되지 않고 사교육비가 증가되는 추

  • 문학과 인간탐구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나타난 인간상
  • 시지프스는 온 힘을 다해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렸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바위는 제 무게만큼의 속도로 굴러떨어져 버렸다. 시지프스는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했다. 왜냐하면 하데스가 바위가 늘 그 꼭대기에 있게 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시지프스는 하늘이 없는 공간, 측량할 길 없는 시간과 싸우면서 영원히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했다. http://blog.naver.com/hoon1996/140013317943 3. 시지프스 신화에서 나타나는 인간상끝없이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최근 판매 자료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