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주의 表現主義 Expressionismus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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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표현주의 表現主義 (Expressionismus)
표현주의는 20세 초 인상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예술운동으로 어원은 프랑스어 엑스프레시옹(Expression)이다. 이 용어는 1901년 파리의 독립파 살롱의 전시회 카탈로그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독일에서는 1911년에 열린 베를린 분리파 Berliner Sezession의 제 22 회 전시회 카탈로그에 실렸다. 표현주의의 태동은 1880년대의 프랑스에서 그 싹이 보이기 시작하였으나 명확한 하나의 사조로 자리잡게 된 것은 1905년경의 독일에서부터이다. 표현주의 운동은 프랑스의 야수주의에서 시작되어, 다른 나라에서도 거의 동시에 전개되었으나 특히 독일을 중심으로 발전함으로써 오늘날 표현주의라고 할 경우 일반적으로 독일 표현주의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표현주의의 시대적 배경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전후하여 전 유럽에 퍼져 있던 고조된 위기감이 표현주의 생성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독일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경제 부흥과 막강한 군사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독일의 급속한 발전의 이면에는 정신적, 물질적 위기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즉 경제 부흥의 이면에는 이윤의 분배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절규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새로운 강국으로 등장한 통일 독일에는 유럽 열강과의 대립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신적, 물질적 위기감이 마침내 제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정치적 파국을 불러 왔고, 이는 표현주의 생성 배경이 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소련의 10월 혁명, 독일의 11월 혁명 등으로 대내외적으로 위기와 혼란이 가중되면서 표현주의는 미학적, 철학적 경향을 띤 문학 운동에서 정치성을 강조하는 문학운동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측면 이외에 입체파 운동과 미래파 운동 등이 표현주의 생성 배경을 이루며, 표현주의를 이끌어 간 작가들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세계관을 확립한 시민 계급의 젊은 지식인들이었다.
표현주의의 예술적 배경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표현주의라는 개념은 회화에서 사용되었던 개념이다. 이 개념은 인상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써 새로운 회화양식을 일컫기 위해 생겨났다. 독일에서는 입체파나 야수파의 회화구성에 나타나는 왜곡이 주관적 정서표현에 있어서의 왜곡으로 파악되었으며, 원시적·토착적인 요소와 바로크에 이어지는 정신이 강조되었다. 정신사적으로 보면 자연주의·인상주의·상징주의 등의 사조를 극복하려는 운동으로 볼 수 있다
독일에서의 표현주의의 시발은 1905년 드레스덴에서 결성된 키르히너 Ernst Ludwig Kirchner의 주동 하에 결성된 다리(Die Brcke) (여기에 놀데 Emil Nolde, 아미트 Cuno Amiet 등이 속함)와 1911년 뮌헨의 탄하우저(Tannhauser) 화랑에서 열린 전시회의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초기 작품 제목을 따서 불리게된 청기사(Der blaue Reiter)(여기에 마케 August Macke, 클레 Paul Klee, 아르프 Hans Arp 등이 속함) 로 볼 수 있다. 또 이들 두 그룹에 의해서 표현주의 회화의 중심이 프랑스에서 독일로 옮겨지게 되었다. 표현주의는 회화에서 문학으로 전이되면서 독일이 주도한 전형적인 문예사조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표현주의의 개념
표현주의는 자연주의의 물질적 현실 모사와 인상주의의 외적이고 감각적인 인상 모사에 대한 반대 운동으로 등장한 문예사조이다.
표현주의는 변화된 세계 속에서 삶을 위협당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올바른 길을 찾아 주며, 정신을 구속하는 전통양식을 파괴하여 정신을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기계 문명의 위력 앞에서 그리고 권력욕의 위험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시도하는 문학 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문학 운동을 실천하려는 표현주의자들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한 기계 문명에 반감을 표하였다. 이러한 기계 문명에 자긍심을 표하는 시민 정신에 반기를 들고 인간 개혁을 추구하면서, 추상성을 지향하고, 형식의 원칙에 구애받지 않으려고 하며, 전형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쏟으며, 환희와 절망에 탐닉하여 사물을 과장되고 괴기하게 표현하였다.
그러나 표현주의 문학 운동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비현실적인 이념적 이상 때문에 표현주의의 개념 규정은 매우 어려우며, 아직까지 불확정된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독일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들도 자신이 표현주의 작가인지를 알지 못하고 창작 활동을 하였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조창섭 :「독일 현대 문학」,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3년
볼프강 보이틴 외 :「독일문학사」, 삼영사, 1988년
네이버, 야후, 구글 검색.
표현주의 영화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 표현주의의 경향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표현주의 회화’라고 할 수 있다. 촬영과 편집에 기반하는 프랑스 인상주의 양식과는 대조적으로 독일 표현주의는 미장센에 크게 의존하는데, 표현적 의도에 따라 형태는 비현실적으로 왜곡되고 과장되었으며, 배우는 자주 진한 분장을 하고 갑작스럽게 느리게 또는 불규칙하게 움직인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장센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전체 구성을 위하여 회화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인물은 단지 세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시각적 요소를 이룬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표현주의적 양식화는 광인의 왜곡된 시각을 전달해 주는 기능, 즉 주인공의 시각이 투영된 세계를 의미했다. 하지만 표현주의가 하나의 양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자 영화감독들은 표현주의적 양식을 더 이상 광인의 서사적 시점으로서 동기부여를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1922)>와 같은 공포영화나 공상적인 이야기들, 또는 프리츠 랑의 <니벨룽겐(1924)>같은 대하 서사극에서 양식화된 기능을 하였다. 사실 표현주의 영화에는 세트 디자이너의 영향력이 아주 컸는데, 당시 독일 스튜디오의 디자이너들은 주연배우보다 더 많은 액수의 급료를 받았으며 그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또한 독일 표현주의 영화인들의 가장 뛰어난 공헌 중에 하나는 보다 본격적으로 카메라 움직임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연극적인 동작을 기록하는 객관적 수준에 머물러 있던 카메라는 주관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달리거나 비틀거리고 환각에 의해 어지러워하거나 고통스러워 할 수 있게 해방되었다. 이는 대상을 취급하는 방법에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전에는 결코 다룰 수 없었던 주제나 인물에의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
특수 조명에 대한 공헌도 간과할 수 없다. 첫째 로우 키(low-key) 조명의 새로운 유행을 들 수 있다. 촛불로 밝혀진 방, 어두컴컴한 계단, 밤거리, 캬바레 그리고 독일 영화의 야행성 인간들 등으로 인해 스크린은 갑자기 어두워졌다. 두번째는 키 라이트(key light)의 사용이었다. 키 라이트는 대개 장면 안의 광원으로부터 나타나는 세트상의 가장 밝은 빛인데, 표현주의 영화인들은 한 쇼트 내에서 조명을 덜 받는 것들 가운데 하나의 밝은 부분이 존재하게 되면 그것이 관심의 중심부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또 프레임 전반에 걸쳐 균형잡힌 다양한 조명의 집약이 이루어 진다면 미학적으로 훨씬 더 만족스럽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스크린 위로 시선을 이끌고, 주요 요소들을 돋보이게 하고 덜 중요한 것들에 의해 강화시켜 주는 질서정연한 구성에 들어맞는 조명 배치를 통해 그것을 만족 시키는 방법을 익혔다.
원래 프리츠 랑 감독이 연출하기로 했던 이 영화는 (나이트 메어)의 효시라고나 할까. 물론 (나이트 메어)의 잘 짜여진 시나리오와 이야기구조의다중성에 비하면 단순한 수준이지만 꿈과 현실을 혼동시키는 사건의 전개는 묘한 뉘앙스의 공포를 충분히 맛보게 한다.
특히 이 영화에서 두드러진 것은 세트의 활용이다. 밀폐된 공간을 추상적기호물들과 병치해서 설치한 세트의 구성은 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잘이끌어내고 있다. 몽유병 환자의 살인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순수한 공포영화에 가깝다.
영화사를 통틀어 1920년대만큼 영화매체의 독자성을 밝히기 위한 실험이 활발했던 시기는 없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러시아의 형식주의, 독일의 표현주의가 그 시기 영화의 대표적인 경향들인데, 그들의 공통 분모는 현실을 재현한다는 영화매체의 속성에 도전해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낯설게 바라보도록 영상의 내재적 의미를 탐구하고자 한 점이다.
1919년에 제작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모태가 된 작품으로서 그 서사와 시각적 특성은 당대의 가장 실험적 양상의 하나로 꼽힐 뿐 아니라 이후 수년간 지속된 표현주의 영화 경향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주인공이 칼리가리라는 연쇄 살인범을 회상하면서 얘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에 따르면, 칼리가리는 몽유병자에게 최면을 걸어 자신의 친구를 죽이고 여자 친구를 유괴한다. 그의 추적으로 칼리가리는 18세기에 있었던 대리 살인을 재현하고자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정신병원의 원장임이 밝혀진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해준 주인공이 사실은 정신병원의 환자이며, 칼리가리는 그를 담당한 의사라는 것이 드러난다. 주인공은 병실로 끌려가며 소리치고, 의사 칼리가리는 그제야 그의 병증을 이해했다고 말한다.
이 마지막 부분은 관객을 당황하게 만든다. 관객은 지금까지 보고 들은 것이 미친 자가 꾸며낸 망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며, 동시에 그가 정말 미쳤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이 관객의 의구심을 누른다.
영화의 장면은 현실감과는 거리가 멀다. 형태와 색채를 통한 왜곡, 구성의 부조화 같은 당대 표현주의 회화의 특성이 세트 곳곳에 그대로 살아 있다. 평면적으로 그려진 세트에는 원근감이 과장되어 있고, 사물의 형태는 각지거나 왜곡되어 있다. 인물 또한 분장이나 의상을 통해 그 세트의 일부처럼 기능한다. 조명은 명암의 대조가 극단적으로 드러나도록 조절되고 있으며, 연기도 극히 기교화되어 있다.
이런 극히 양식화된 장면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상세계를 창조한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서 공간의 표현이란 곧 정신의 표현이다. 즉, 영화 속의 공간에 합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과대망상증으로 가득 찬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 광인의 이야기가 시각화되어 표현주의 영화의 모태가 된 데는 헤르만 바름 같은 세트 디자이너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제작자 에리히 포머의 역할이 컸다. 칼리가리가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미친 악당이던 원래 각본을 뒤집어 주인공을 광인으로 설정한 것도 그였으며,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미국 영화와 경쟁하기 위해 표현주의 회화기법을 영화에 끌어들인 것도 그의 결정이었다.
포머의 그런 결정은 이 영화를 해석하는 데 흥미 있는 변수가 된다. 원래 각본의 의도는 개인이 폭정적 권력을 등에 업고 자유를 남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는 폭정적 권력이 어쩌면 개인들에게 유익할지도 모른다고 시사한다. 이는 당시 독일인들의 의식 저편에 있는 불안과 공포심을 암시한 것이며, 칼리가리라는 인물을 통해서 히틀러의 등극을 예시했다는, 이 영화의 의미를 명확히 해 준다.
-주진숙 중앙대 교수·영화평론가, <세계 영화 100>(한겨레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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