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인간 주체의 탄생과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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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근대적 인간 주체의 탄생과 분열
1.
「요한시집」은 이야기 맨 앞에 토끼 우화를 배치함으로써 우화 속의 토끼를 누혜와 대응되는 존재로, 토끼 우화를 누혜가 처한 역사적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게 한다.
처음에 토끼는 일곱 가지 색만이 존재하는 동굴 속에서 ‘도무지 불행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다. 그것은 세계(동굴)와 내가 완벽하게 일치한 상태, 존재에 대한 어떤 회의도 들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토끼는 어느 날부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그러던 그가 그 일곱 가지의 고운 빛이 실은 천장 가까이에 있는 조그만 창문 같은 데로 흘러드는 것이라는 것을 겨우 깨닫기는, 자기도 모르게 어딘지 몸이 간지러워지는 것 같으면서 그저 까닭 모르게 무엇이 그립고 아쉬워만 지는 시절에 들어서였습니다. 말하자면 이 깊은 땅 속에도 사춘기(思春期)는 찾아온 것이었고, 밖으로 향했던 그의 마음이 내면으로 돌이켜진 것입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고운 빛을 흘러들게 하는 저 바깥 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운 곳일까…….
이를테면 그것은 하나의 개안(開眼)이라고 할까. 혁명(革命)이었습니다. 이때까지 그렇게 탐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던 그 돌집이 그로부터 갑자기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비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에덴동산에는 올빼미가 울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바깥 세계로 나갈 구멍은 역시 없었습니다. 두드려도 보고 울면서 몸으로 떠밀어도 보았으나 끄떡도 하지 않는 돌바위였습니다. 차디찬 감옥의 벽이었습니다. 갇혀 있는 자기의 위치를 깨달아야 했을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곳에서 살게 되었던가. 텍스트는「요한시집」(《장용학 문학 전집》, 국학자료원, 2001)을 참고했음.
(195~196쪽)
토끼의 개안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것은 필연적으로 ‘밖으로 향했던 마음이 내면으로 돌이켜진 것’, 즉 자신의 존재성에 대한 질문으로 향한다. 토끼가 바깥세계를 알았다는 것은 ‘세계=나’인 완전한 세계에서 벗어나 나와는 분리되어 있는 외부세계를 인식한 것이며, 그 외부세계와의 관계성 속에서 ‘나’를 자각했다는 점에서 이전까지의 자기와는 다른 자기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토끼는 세계와 완전히 일치된 내가 아니라, ‘갇혀 있는 자기의 위치를’ 깨달았다. 즉 객관적인 시선에서 자기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과 내가 분리되지 않은, 존재에 대한 회의가 없는 세계라는 점에서 동굴 안이 중세적이라면, 바깥 세계의 빛에 대한 동경과 자기 존재성에 대한 자각,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토끼가 감행하게 되는 동굴 밖으로의 탈출은 곧 근대로의 나아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토끼는 ‘암흑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주어짐의 세계에서 선택함의 세계로 ‘토끼에게 자유는 욕망의 역동으로 인한 선택함의 행위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통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본능적 행위라기보다 빛을 인지한 감성을 통해 발생한 욕망의 성취이다.’
-박창원,〈장용학 소설에 나타난 모더니티 연구〉,《장용학 문학전집 7》, 국학자료원, 2001, 299쪽
‘빛/어둠’의 이항 대립의 구별 인식은 오히려 현실 즉 자신의 일상이 어둠이라는 각성을 불러일으킨다. 토끼는 각성을 통해 ‘욕망의 동인’을 인지하고 실천의 의지를 확고히 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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