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의 논리와 비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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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희망인가, 절망인가
해체는 지금 막 시작되고 있는 해체이어야만 한다.
-남진우, {바벨탑의 언어}, p.99
모든 아방가드는 일어나는 당시에는 아무리 새롭다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전통의 일부로 수렴되고 마는 운명이어서...
-권택영,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p.11
1. 해체의 논리와 비논리
-왜 해체에 대해 말해야 하는가?
해체 시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듯 보인다. 그 이전 시대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80년대 시의 굵은 줄기 중의 하나로 해체시를 위치시키는데 독자들은 인색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난날 우리 시가 언어를 조탁하여 아름답게 대상을 묘사하고자 했던 묵시적 전통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고,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이었기에 더욱 독자들의 관심을 주목시킬 수 있었다. 여러 시인 비평가들이 앞 다투어 작품으로, 혹은 이론으로 해체시의 당위성을 이야기해왔다. 리얼리즘 계열의 평론가들은 나름대로의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 애써 해체시를 평가 절하시키려고 애썼다. 자의든 타의든 해체 시 자체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 존재를 검증받지 않을 수 없었고, 따라서 해체시를 둘러싼 말들이 무성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80년대는 지나갔다.
실제의 작품을 보더라도 80년대 초반 이성복, 황지우, 박남철 등에 의해 촉발된 해체 분위기는 80년대 후반에 들어 한 절정을 이루다 지금은 각개약진 식으로 다양해지기는 했으나 상당히 정숙해진 느낌이다. 모더니즘 혹은 요즘 많이 언급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기본 방향으로 잡고 있는 {현대시사상}에서 꾸준히 해체를 하나의 묶음으로 정착시키려고 애써왔고, {문학사상}에서도 근래 해체 시 특집을 기획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지금 우리를 둘러싼 해체의 분위기는 분명히 80년대의 그것이 아니다. 단언한다면, 80년대식 해체는 이제 끝났다. 아니 한걸음 양보한다면, 지금 끝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또 철지난 사랑타령처럼 해체시를 들먹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숲에 있을 땐 나무 하나하나의 모양을 세밀히 보지만 정작 숲 전체를 조감할 수 없다는 흔한 상식을 상기하자. 우리는 80년대와 함께 해체시의 숲을 통과해, 지금 숲이 끝난 곳에서 뒤돌아볼 여유를 갖게 되었다. 또 과거가 역사로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현재와 만나야한다는 교훈도 상기하자. 해체는 지금 완전히 분해 되지 않고 우리 주변을 떠돌아다닌다. 한 때 해체의 선봉에 섰던 황지우와 이성복이 이후 방향을 선회하긴 했지만, 그들의 선배 세대인 이승훈, 박의상, 박상배 등이 여전히 해체시를 만들고 있고, 그들의 후배세대인 장정일, 박상우, 황인숙, 최계선 등이 나름대로 실험을 거듭하고 있으며,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승자, 김영승, 김정란 등이 비록 성격은 다르지만 해체를 방법으로 차용하여 꾸준히 작품을 써오고 있다. 80년대가 끝난 지금 우리는 이들에게서 전 시대와는 다른 해체를 읽게되고, 그것이 90년대식 방법이 되기 위해서는 지난날의 해체를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해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의 대답은 명백한 것처럼 보인다. 언어를 뒤집고, 그림이나 도표를 인용하고, 과감한 패러디를 쓰고, 대상을 감추거나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혹은 글자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빈 공간으로 채우는, 한마디로 요약해 전통 시형을 파괴하고 새로움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해체이론은 이러한 정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더 이상 따지고 들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주로 해체시의 타당성, 다시 말해 해체시가 시로서 존재할 가치가 있는 가 아닌가에 집중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모더니즘의 입장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시의 영토를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리얼리즘 쪽의 논객들은, 시를 언어의 유희 즉 말장난 정도로 여겼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들의 첨예한 대결은 해체에만 국한된 대결이 아니라 문학 전반을 바라보는 견해의 차이, 더 나아가 이 세상을 해석하는 이데올로기나 가치관의 차이라는 점에서 전혀 접근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해체시의 바른 평가와 방향설정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이전의 해체를 둘러싼 어떤 해석이나 이론에도 기대지 않기로 한다.
해체를 언어형식의 파괴로 파악할 때 우리는 엄청난 오해에 휩싸인다. 일상의 우리 대화 속에는 문장으로 기술할 때 전혀 의미가 통하지 않을 수많은 언어의 단절이 숨어 있다. 말을 할 당시의 주변 환경, 상대방의 태도, 공통으로 갖고 있는 인식의 틀 등으로 인해 우리는 완전한 문장이 아니어도 상대의 말을 이해하고 거기에 마찬가지로 반응한다. 이것을 글자로 옮겼을 때 거기에는 엄청난 언어파괴 현상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의 대화를 두고 해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한편 오늘의 시들이 갖고 있는 문자적 속성은 시에 숙명적인 제약을 가져다주었다. 인쇄되지 않은 시는 시로 인정되지 않는 모순 속에 살고 있으면서 그것을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시집이나 문학잡지를 통해 시를 읽는데 익숙해진 탓이리라. 그러나 엄격히 말해 시행을 이루는 글자들은 언어의 보조수단에 지나지 않는 아주 제한적인 약속일뿐이다. 상식적인 이야기이면서도 우리가 흔히 잊어버리는 사실, 따라서 주의력을 환기하고 생각해 보야 야 할 점이 바로 이것이다. 다시 말해 시는 글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는 글자로 옮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미지의 엄청난 수렁을 갖고 있다. 해체 시에서 다루는 도형이나 그림, 낯선 기호나 표식은 모두 그러한 언어의 일종이며 시인의 의도를 드러내는 장치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해체라고 불렀던 것은 바로 이 언어의 해체가 아니라 글자의 해체였던 것이다.
해체를 언어의 해체가 아니라 글자의 해체로 이해한다는 사실은 지금까지의 해체시 자체가 그런 면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자의 해체는 언어가 내용과 형식으로 구성된다고 할 때 형식의 해체로 국한된다는 뜻이며, 이점은 해체의 특징이자 곧 한계이기도 하다. 내용이란 시인의 세계관 또는 가치관일 것인데, 그들의 시에 이 내용이 파괴되지 않고 남아, 독자를 향해 여전히 충실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완전한 해체, 즉 내용까지를 해체하여 텅 빈 세계를 보여주기엔 해체시인들의 욕심이 허용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하여는 실제의 작품을 검토한 후 그 구체적 증거들을 찾아보는 것이 옳을 것 같아 일단 유보하기로 하고, 먼저 해체시가 나타나게 된 경위와 이유를 살피기로 하자.
해체가 80년대 시의 한 특징이긴 하지만 그 시대만의 것은 물론 아니다. 30년대의 모더니스트들, 특히 이상이라든지, 50년대의 후기 모더니스트, 즉 김구용 조향 박인환 등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해체의 시를 썼다. 모더니즘에서 벗어난 김수영에게서조차 그런 해체의 흔적은 얼마든지 발견된다. 70년대에도 이승훈이나 김광규 등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리고 본인들이 인정하든 아니든, 해체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왜 해체 시는 80년대에 유독 두드러져 나온 것일까. 해체시인들의 개인적인 상상력을 논외로 친다면, 여기에는 몇 가지 대답으로서의 가설을 세울 만 하다. 첫째는 전통적 시형식의 폐쇄성에 대한 반발로 새로움을 찾으려는 노력이 그렇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60년대 4.19가 미완의 혁명으로 마무리되고 군사정권이 장기화되면서 우리 시는 리얼리즘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순수/참여의 소모적 논쟁을 겪기도 했고, 일부 현실비판 작가들이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현실에서 움츠러든 문학은 현실을 도피하고 언어의 아름다움이란 미명 아래서 시들시들 메말라 갔다. 유신 이래 이런 경향은 더욱 깊어져 당연히 새로움에 대한 갈증도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일부 반영이론 측의 시인들은 폐쇄된 공간에서 자유를 찾기 위한 염원이 지나쳐 문학을 이념의 충실한 매개물로 생각하고 현실을 그리는 데만 전념했을 뿐, 문학이 지녀야 할 정서 환기력에는 무관심하였다. 역시 새롭고 강렬한 방법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80년대에도 군사독재는 계속되었지만 광주의 봄을 겪고 난 우리의 의식은 훨씬 자유롭게 꿈꿀 여유를 얻게 되었고, 이것이 목마름과 잘 연결되어 새로운 시 형태를 낳게 하였다. 초기 황지우의 시에 살짝 감추어져 있기는 하지만,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는 이데올로기는 이런 배경에서 생겨난 당연한 결과이다. 이런 점에서도 해체시를 두고 리얼리즘/모더니즘의 계파논쟁을 벌였던 지난날의 입씨름은 무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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