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결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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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결혼관
우리들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문화의 틀 속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이런 문화의 틀을 벗어나서 자신의 개성에 맞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전통은 점점 어른들의 것으로, 젊은 사람에게는 많은 사회적 구속이자 고리타분한 생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나는 유교의 결혼관을 통해서 전통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고자 한다. 그럼 우리가 비판하는 유교의 결혼관을 부분적으로 나누어서 알아보고자 한다.
1. 연애결혼 vs 중매결혼
<군자는 세 가지 경계할 바가 있다. 젊었을 때는 혈기가 잡히지 않았기에 여색을 경계하고, 장년이 되면 혈기가 바야흐로 굳세므로 다투는 것을 경계하고, 늙으면 혈기가 이미 쇠하였음으로 탐욕을 경계하라.> -공자 -
우리나라 속담엔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유교의 옛 가르침에서 일곱 살만 되면 남녀가 한자리에 같이 앉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남자와 여자가 7살부터 이성에 눈을 뜨게 되니 생각이 깊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만 너무 앞서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것들을 조선시대에는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그 결과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날 수가 없었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 세상에 장가가는 방법은 오직 중매결혼뿐이었다. 이 중매결혼도 현재의 중매결혼과는 많이 다르다. 남자와 여자가 주선을 받고 만나서 서로 맘에 들고 그렇게 결혼하는 것이 아닌 집안과 집안간의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문화가 근대로 넘어와 개인의 자유와 인격이 존중되고 남녀평등화 되면서 자유연애로 바뀌었다. 어릴적부터 자유롭게 사랑을 하고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직접 배우자를 선택하여 살 수 있게 된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혼률의 급상승이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거의 중매결혼을 하셨고 지금의 30대들은 거의가 연예결혼을 하였다. 하지만 할아버지 세대들의 이혼률은 거의 없는 반면 지금은 이혼을 수도 없이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개인주의에 빠진 배려심의 부족과 서로에 대한 믿음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남녀의 딱 정해진 역할이 없기 때문에 가정보다는 자기의 욕구를 중요시 하게 되면 그 가정은 기울어지는 것이다. (물론 사업과 같은 예외는 있다.) 그렇다면 또 한 생각해야 할 점은 옛날 집안에 의해 중매결혼을 했던 모든 여성들은 불행했을까? 내 생각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이해심과 배려심을 그 밑바탕에 두고 얼마만큼 더 좋은 쪽으로 서로 맞춰가며 만들어가는가 하는 것이라고 할 때 옛 우리 선조들은 상대를 선택해서 한 결혼은 아니었지만 서로를 인정하는 예와 의가 있었다. 운명 같은 사랑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배우자가 된 한 사람을 배려하고 믿었으며 정해진 환경이 비록 어렵다고 해도 그걸 피하지 않고 묵묵히 맞서서 그 안에서 좋은 아내, 훌륭한 어머니가 되고자 노력했던 옛 여인상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본받았으면 한다.
2. 부부유별 = 남자는 주인 여자는 노예??
<잠자리에서도 공자겠습니까.> -공자 아내-
그럼 결혼을 한 후 부부생활은 어땠을까? 많은 현대 사람들이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말이 유교관에 근거하여 남자는 우주만물을 형성하는 근원이며 여자는 그에 종속되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사실 유학사상은 남성과 여성을 근본적으로 차별하는 사상이 아니었다. 남성을 하늘 여성을 땅에 비유한 것도 여성이 남성에 종속되어 있는 존재라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의 영역이 다르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정권을 잡은 지배계층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여성을 비하시킨 다분히 정책적인 행위의 소산이다. 원래 유교사상 자체가 여성들에게 불합리한 사상이 아니라 일부 위정자들에 의해 와전되고 조작되어진 사상이란 뜻이다. 그럼 옛 시대 남녀가 각자 부여받았던 영역은 뭘까? 남자는 나라와 가문에 관련된 바깥일, 여자는 집안을 다스리고 평화롭게 하는 집안을 맡아 서로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았다. (현대에 여성들이 많은 직업을 꿈꾼다지만 아직까지 장래희망조사 1위는 현모양처!!) 혹 누군가가 “조선시대 남자들의 바깥일이라는 것이 글만 읽고 술만 먹고 돈 한 푼 집에 벌어다 주지 않고 여자만 죽도록 고생했다”라고 비난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각자의 인생에서 그 시대에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이다. 요즘은 개인의 개성에 맞는 자질로서 성공하여 부를 축적하면 그 사람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시대지만 직업의 귀천을 가리고 다양성이 적었던 조선시대의 양반 남자들은 나라와 임금을 위해서 뜻을 세우고 노력하여 관직에 나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사명이었다. 그것을 위해 한 평생을 바쳤으며 이루지 못하였을 땐 시대와 자신의 재능을 탓하며 많이 힘들어 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시대 탓만 하는 현대인들이 과연 옛 선조들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또 조선시대에 남자를 여자가 떠받들고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그 증거로 1998년 안동대학교 박물관 발굴팀이 발굴한 무덤에서 발견한 1586년 30세의 젊은 나이로 갑작스레 요절한 남편을 비통해하는 부인의 애절한 심경을 담은 편지가 나왔는데 이 편지의 내용 중 서로를 부르는 호칭을 보면 알 수 있듯 조선시대 남편과 아내는 서로 대등한 호칭을 사용하는, 존중하고 조심하는 관계였다. 황 교수는 16, 17세기 편지 분석을 통해 남편, 아내 모두 ‘자내’란 2인칭 대명사에 오늘날의 하소체 종결어미를 사용했다고 밝힌다. 하소체(~하시오)는 합쇼체(~하십시오)와 하게체(~하게)의 중간적 높임말로, 황 교수는 “쌍방이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호칭했다는 의미”라며 “이것은 균등상속제 등을 통해 구현됐던 남녀평등 관계가 언어에 반영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편지 내용)
“자네 항상 내게 이르되,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자네 먼저 가시는가?”
또한 여성들이 ‘칠거지악’을 들어 여성들이 남성의 소유물 같은 존재였다고 주장한다.칠거지악(七去之惡)이란 유교문화권에서 남편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이유이다. 글자 그대로는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잘못이라는 뜻이다. <공자가어>에 처음으로 이런 내용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일곱 가지 잘못은 다음과 같다
1.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음(不順父母) 2.아들이 없음(無子) 3.음탕함(不貞) 4.질투함(嫉妬) 5.나쁜 병이 있음(惡疾) 6.말이 많음(多言) 7.도둑질을 함(竊盜)
이 일곱 가지는 분명 여성을 차별화 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칠거지악만 말하고 말하지 않는 것이 ‘삼불거(三不去)’이다. 삼불거는 칠거지악에 해당하는 잘못을 지었더라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에는 내쫓지 못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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