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해역의 과거 조운 제도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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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동남 해역의 과거
- 조운 제도를 중심으로 -
서론
기숙사 옆 쪽 롱비치 쪽을 거닐 다보면 부산항의 모습이 항상 눈에 들어온다. 처음 학교에 와서 롱비치에서 술을 마시는데 그 아름다운 부산항의 야경에 매료되어서 술에 취했는지 야경에 취했는지를 모를 정도였다. 때문에 고민이 생기면 친구와 함께 캔 맥주에 새우깡 한 봉지를 안주 삼아 야경을 보다보면 어느 새 고민은 사라져 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부르는 밝은 햇살이 눈을 부시게 하던 일들이 많이 있었다. 이렇게 밤에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던 부산항이 낮에는 또 다른 모습 이었다.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배들이 분주하게 입·출항을 반복하고 저 멀리 부두에 희미하게 쌓인 컨테이너들의 모습이 보였다. 물동량이 세계 5위라는 부산항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면서 과연 과거에는 부산항이 속해있는 동남 해역의 모습은 과거에 어떠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동남해역이 역사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물류의 중심지적 역할을 하였으며, 과거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1. 동남 해역에는 어떤 해로들이 존재하는가?
동남해역은 원시시대부터 해로를 통하여 일본·중국 등으로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해로는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한려수도 등을 통하여 서남해역을 거쳐 황해 및 중국지역으로 이어지는 해로와 부산과 울산을 거쳐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는 해로가 있다. 그리고 부산, 거제, 울산 등에서 쓰시마나 잇키섬을 거쳐 일본 연안으로 연결되는 해로가 있다.
2. 역사 속에서의 동남 해역의 중요성
동남 해역은 기본적으로 이런 3가지 항로들을 통해서 각종 물자교류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물론 지금도 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역사 속에서의 동남 해역의 중요성에 대해 시대별로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고려 시대 이전의 동남해역의 교류에 대해서는 앞의 발표와 중복되는 부분은 제외시키고(일본과의 고대 교류), 왜인들이 해안을 비롯하여 양산 심지어 경주까지 공격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일본열도와 빈번한 접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각종 물자 교류가 이루어지던 동남해역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조운제도가 생기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더 부각되면서 한국의 해양문화사에서 뚜렷하게 부각되기 시작한다.
고려 시대 : 고려 시대 조운은 새로운 왕조의 지배력 강화와 더불어 틀을 갖추어 간다. 그 이유는 수취제도가 곧 지배력 강화의 근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종 때 지방관제 개편과 더불어 조운기구가 설치되었다. 약 60여 곳에 포(浦)가 설치되었는데, 경상도로부터 황해도 에 이르는 서남 연해지방과 한강 지역에 집중 되어 있었다. 이 포들은 조운선을 구비하고 조운의 거점으로 삼았다. 고려시대 조창은 단순한 창고가 아니라 일종의 행정구역이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조창의 예
- 석두창 : 고려시대 합포(지금의 경남 마산)에 설치됨. 경상도 동남부지방의 세곡을 수납하여, 남해안과 서해안의 해로를 이용하여, 예성강 입구의 경창(京倉)에 납부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초기에 폐기 되었다가, 영조 때 마산창이라는 이름으로 복구되었다.
이곳에는 적재량이 1천석인 초마선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 초까지 사용된 조운선(漕運船). 고려때는 초기부터 남도수군(南道水郡)과 내륙 등지에 조창(漕倉)을 두고 수로를 이용하여 세곡을 경창(京倉)으로 실어오도록 하였는데, 정종 때 각 조창에 필요한 조선의 수를 정하고, 바다를 통하여 조운을 하는 하양영풍안흥진성해릉부용장흥해룡통양석두 등 10개 조창에 1천석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을 각각 6척씩 배정하였음.
6척이 있었고, 이를 관리하며 조운을 주관하던 판관이 중앙에서 파견 나와 있었다.
그 외에도 마산은 여·몽 연합군이 일본 정벌에 나설 때 전초기지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당시 몽고군이 우물로 사용했던 몽고정 등이 남아 있다.
조선 시대 : 동남해역 중에서 합포는 조선 시대에는 경상도에서 세곡을 운반하는 가장 큰 포구였다. 이곳에서 경상도 남부 지방의 세곡을 모아 남해안과 서해안을 돌아 경창(京倉)으 운송하였다. 그 밖에도 진주(사천)의 가산창, 밀양의 삼랑창 등이 있다.
참고문헌
참고 문헌
해양수산부 , 『한국의 해양 문화』상 동남해역 , 경인 문화사 , 2002
박영서 외 , 『동아시아의 지역질서』, 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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