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을 통해서 바라본 911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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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제국’을 통해서 바라본 ‘9.11 사태’
Ⅰ. 묵은 숙제를 꺼내들다
2001년 9월11일. 당시 나는 국방부 소속으로 한 후방 군부대에서 2년2개월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일병 계급을 달고 기름냄새가 가득한 전차부대에서 그나마 기름때가 덜묻은 행정서류를 매만지던 시절이다. 나는 ‘상황병’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상황실에서 밤새도록 근무를 서며 상황실장과 함께 부대상황을 점검하는 일이다.
상황병의 좋은 점은 부대내에서 금기영역(?)인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밤새 깨어있던 차에 쏟아지는 졸음을 쫒으며 졸린 눈을 비비고 잠시 인터넷 뉴스창을 띄운 2001년 9월12일 오전. 눈에 들어오는 미국 세계무역센터가 불타는 사진. 졸려서 정신이 없던건지, 군 용어로 개념이 없던건지 왜 그냥 그 사진을 스윽 스치고 ‘연애’섹션으로 마우스질을 해댔는지 지금도 실소가 나온다.
여튼 내가 스쳤던 사진은 지금까지 한국의 인민들이 아프간 파병에 따른 피해공포를 떨어야하는데 결정적 단초를 제공한 ‘9.11 사태’였다. 갑자기 9.11 사태를 꺼내든 이유. 솔직히 9.11테러에 대해 지금까지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물론 모든 사회현상의 해석에 결론은 없다. 내가 말하는 ‘결론’의 부재는 9.11을 해석할만한 적합한 시각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9.11사태 이후 미국의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각종 미디어의 생산물과 한편에서 쏟아내는 음모론까지. 9.11을 해석한 수 많은 담론 속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범위와 수준은 어디까지 일까 지금도 고민이고 숙제다.
『제국』을 읽고 난 후 조심스레 묵은 숙제를 꺼내봤다. ‘제국’에서 왜 9.11의 환영이 비췄는지 모르겠지만, 왜 책장마다 비행기가 무역센터를 뚫고 지나가는 장면이 겹치는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지금도 방에서 콕 박혀 메신저를 하는지 게임을 하는지 나올줄 모르는 빈 라덴의 얼굴이 오버랩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 안토니오 네그리 선생님이 ‘이번주 발표주제는 9.11이다. 네 그리 하도록 해라’라고 계시를 내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서툴지만 ‘제국’을 통해 9.11사태를 해석해보고자 한다.
Ⅱ. 제국과 제국의 충돌
9.11사태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한 장의 사진. ‘이미지’를 통해 우선 분석해보자. 나는 지금까지 9.11 사태가 아랍권 테러집단이 미국을 겨냥한 사건이라고 ‘착각’해왔다. 이미지를 자세히 보니 ‘제국’과 ‘제국’이 충돌한 것이었다. 무역센터와 충돌한 여객기 내에 승객이 미국인만 있을리 없다. 여객기는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있다. ‘여객기’란 보편적 이동수단을 통해 다인종이 소통하는 이른바 내외부 경계가 없는 제국‘적 구조다. 세계무역센터 또한 마찬가지다. 다인종과 다국적 자본이 결집된 ‘제국’의 축소판이다.
도저히 만날 수 없을 것 같던 두 ‘제국’의 만남은 한 테러집단에 의해 매개된다. 사실 9.11사태에 흥미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결과의 잔혹성과 더불어 상상밖의 창조적인 재난상황을 ‘연출’했다는 점이다. ‘제국’이, 그것도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던, 동질성이 있어보였던 제국끼리의 충돌은 이성적 판단에 앞서 그동안 맛보지 못한 극한 본능적인 폭력에 따른 쾌감을 은밀히 욕망하게 한다.
『제국』은 “대항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간 조건의 국지적이고 특별한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며, 또한 끊임없이 새로운 신체와 새로운 삶을 구축하기 위해 시도해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폭력적인 야만적 이행”이라고 언급한다. 이어 “새로운 야만인들은 긍정적인 폭력을 가지고 파괴하며 그들 자신의 구체적인 실존을 통해서 삶의 새로운 경로들을 추적한다”며 “전통적인 경계들을 무시하면서 창조적이고 불확실한 지대 한가운데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테러도 탈근대화적으로 진행된다. 변증법적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알카에다 테러집단은 전통적인 경계를 무시하며 창조적인 방법으로 그야말로 불확실한 지대 한 가운데에 진입해 야만적 폭력을 이행했다. 그동안 패권을 쥐고 있던 미국의 주요 자본이 스며든 여객기와 무역센터끼리의 자기 충돌. 9.11은 서로 충돌할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던 대중의 경계선이 무너진 상징인 것이다.
Ⅲ. 제국의 동력
그렇다고 9.11을 대항적 성격으로 읽을 수만 없다. 9.11은 그동안 ‘음모론’에 시달려왔다. 이른바 미국의 자작극이란 얘기다. 『제국』을 읽고나니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 9.11사태가 미국의 패권과 ‘제국’을 강화하는 동력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9.11 이후 이어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세계를 재편하는 메커니즘에 따라 해석가능하다.
9.11의 구실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미국이 조성한 세계시장에 재편됐고, 각 국은 제국을 위한 또 하나의 자본 생산기지가 됐다. 여기에 전 지구를 가로지르는 훈육 생산체제와 훈육사회를 확산시키는 기반이 됐고, 국제 관계 틀을 미국 쪽으로 강하게 구축하는 결정적 사건이 됐다.
더구나 제국이 만들어진 원동력인 ‘네트워크’를 통해 일사천리로 각 국에 배달된 9.11사태의 참상은 제국의 훈육 시스템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제국의 네트워크에 속한 각 국은 9.11 사태에 따라 스스로 훈육 시스템을 강화했다. 자본의 재생산을 위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미국에 적극 협조하는 한편 각 국의 초국적 기업들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자본의 둥지를 틀 수 있게 됐다.
9.11사태의 결론은 미국을 향해 수렴되기 시작했고, 제국은 전 지구적 시장 및 훈육사회 구축을 위한 새로운 동력을 제대로 얻게 됐다고 보여진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의 네트워크는 더욱 탄탄하게 구축됐다. 알카에다 또한 네트워크 안에 포섭됐다. 이러다보니 빈라덴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결탁설이 지지를 얻을 수 밖에 없다. 빈라덴도 결국 네트워크 안의 한 단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국을 강화시킨 한 대중으로서 크게 활약했기 때문이다. 결국 9.11사태는 자본의 굶주린 ‘피의 욕망’을 해소한 수단이 됐다. 9.11사태를 저항성격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제국』에서 언급됐다시피 투사들은 창조적으로 제국의 명령에 대항한다. 연출된 이미지는 ‘창조’적이었을지 모르나 대중에게 전해지는 메시지는 창조적이지 못한 것 같다. 과연 그들의 기획은 성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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