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은 쿠데타 가아 닌진 정 한혁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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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5.16은 쿠데타가 아닌 진정한 혁명이다-
박정희는 원래 만주군관 학교 출신이고요. 거기서 수석 졸업을 해서 일본 육사에 편입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만주지역에서도 박정희를 두고, 일본인을 이긴 조선인이라 하여 조선의 자랑으로 여겼죠. 무슨 친일파니 매국노니.. 그따위 평가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고, 자부심 넘치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손기정 선수 아시죠? 일본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가서 일본에 금메달을 안겨주잖아요. 그래도 조선인들은 조선인이 왜놈들 보다 잘나서 조선인의 기상을 보여줬다고 떠받을었죠. 박정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박정희는 일본군으로 잘못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일본군이 아닌 만주군 하급장교로서 근무했으며 그의 비중은 크지 않았습니다.(만주국은 일본국과는 좀 다른 나라였죠. 뭐~ 괴뢰국이라고 표현하기는 하지만, 겉으로는 오족협화의 기치를 내세운 그런 나라였습니다.)
먼저 독립군 토벌 광복군 토벌이니 뭐니 하는 건 전부 근거 없는 날조이고요. 천황 혈서 충성맹세 같은 것도 아무 근거 없는 낭설입니다. 특히 창씨개명을 했다는 것도 당시 야당이었던 김대중측에서 날조한 것으로 드러났고, 김대중의 창씨개명이 도요다 다이쥬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러한 정치공작도 쏙 하고 들어가버렸지요. 당시의 창씨개명은 조선인 80% 이상이 한 것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부친도 했었던 것이고요. 별로 친일이니 매국의 증표가 될 수는 없지요.
그리고 5.16은 정변이 아니라, 명백한 혁명이고요. 당시 윤보선, 장면 정부는 무능과 부패의 절정을 달렸는데.. 박정희가 빈농의 아들인 것에 반해 윤보선은 친일명문벌열가문 출신이었고요. 장면도 역시 김구 선생의 지시로 반민특위가 작성한 친일파 살생부 268인 중에 한명으로 등재된 악질 친일파였죠. (박정희 해당없슴)
4.19로 자유당 정부가 무너진 이후 장면 내각이 출범하는데... 비참한 민생은 내팽계치고 10번도 더 개각이 이뤄지죠. 이유는 바로 장관 자리 하나씩 해 먹으면 가문의 영광이요, 국가에서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처럼 코드정치다, 보은인사다.. 하면서 전부 다 해 처먹었죠... 박정희가 5.16 혁명을 일으켜,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을 심판합니다. 5.16으로 인하여 장면, 윤보선을 중심으로 한 진짜 친일파 정권이 무너지게 된거죠. 그런데 왜 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이냐고요?
당시 4.19에 참여한 서울대 학생회가 5.16 지지성명을 발표하죠. 그리고 장준하 선생께서 5.16은 4.19 정신을 이었다며 칭찬하게 되죠. 이처럼 학생, 대중, 지식인 너나 할 것 없이 5.16을 혁명으로 규정하고, 4.19 정신의 계승이라 칭송했습니다. 군사정변??? 5.16때 아무도 안 죽었습니다. 대규모 교전도 없었죠. 그래서 5.16을 무혈혁명이라고 합니다. 즉 구국의 결단으로 이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일어난 것이죠. 그런데 불순한 무리들은 5.16을 폄하하며..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고 하는데.. 이후 혁명공약을 내걸어 모두 완수하고, 민정이양을 거쳐 직접 선거로 대통령직에 당선됩니다. 당시 서민이었던 박정희와, 친일벌열가문의 후예인 윤보선이 경합을 벌이는데.. 간발의 차이로 박정희가 당선되게 되죠. 즉 국민들이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박정희의 정통성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통치설은 터무니 없는 억지이며 반박정희 세력이 퍼뜨리는 유언비어입니다. 여기에 대해선 박대통령의 유가족인 박근혜씨의 증언을 올립니다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임종조차 못했던 자식으로서 비통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아버지께서 여한없이 눈을 감으셨으리라는 점은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믿음에 변화가 없습니다."
▶여한이 없으리란 뜻은 무엇입니까?
"아버지는 그 무렵 국가를 위한 자신의 설계를 거의 다 이루었다는 생각을 하셨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날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의 끝은 우리 겨레의 5천년 한을 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어떻게든 경제자립과 자주국방을 이루어 가난과 외침에 시달려온 민족의 한을 풀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 당시 미국의 조직적인 방해를 무릅쓰고 핵개발을 추진 중이었으며, 우리가 핵을 개발함으로써 전쟁 억지력이 생겨 북의 위협을 의식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78년 9월26일 우리 힘으로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성공하여 세계 일곱번째의 보유국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셨고, 그날 쓰신 일기를 보면 “자주국방과 조국근대화작업이 완성단계로 접어들었다. 흥분과 기쁨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 당시 최규하 총리를 후계자로 생각하셨던 것은 확실하다고 믿습니다. 저에게 여러 번 “최총리가 하면 잘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분의 경력과 성실함을 높이 평가하시곤 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다면 81년까지는 핵개발과 정부이양이 이루어졌을 것이고, 오늘 우리나라는 혼란없이 선진국 대열에 섰을 것입니다."
-- 후진국에서 경제건설과 민주화가 양립가능했겠는가? --
(산업화에 민주화를 동시 추진, 성공한 예는 없다)
이론적 차원에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양립하지 못할 이유는 없으며 실제로 산업화의 성숙단계에 도달한 대부분의 서구국가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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