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학 번역] 플라톤의 국가론 원서 번역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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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플라톤과 『국가』
플라톤은 BC427년 경 태어났고, BC347년, 약 80세의 나이로 아테네에서 죽었다. 그리스는 당시 여러 개의 작고 독자적인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 중 아테네는 가장 강하고 부유한 도시국가였다. 아테네의 힘과 부는 상업과 무역에 기반하고 있었다. BC480년 시라미스 대 해전에서 페르시아에게 승리 한 이후, 아테네는 그 지역의 가장 두드러진 해상 권력이 된다. 페리클레스의 지도력 아래 5세기 중반, 아테네는 정치적, 문화적, 지적 중심부로서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다.
하지만 플라톤이 태어나기 직전에 아테네는 가파르게 하락하기 시작한다. 아테네는 그 지역 주권을 놓고 벌인 긴 전투, 펠로폰네시안 전쟁에 휘말려든다. 군사적 패배가 연발한 후, 이 전쟁은 마침내 BC404년 아테네의 몰락과 스파르타에 의한 정복으로 끝맺는다. 패배의 여파는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한다. 쿠데타와 그 역이 연속되었다. 민주정, 과두정, 참주정이 빠른 순서로 서로를 뒤따라왔다.
플라톤은 이 불안정과 몰락의 시대 안에서 자라났다. 그의 초기 생애에 대한 몇 안되는 정보에 의하면, 그의 부모는 둘 다 중요한 정치적 관계에 있는, 부유하고 힘 있는 귀족 집안 출신이었다. 플라톤에게 정치에 입문해야만 한다고 생각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만약 자서전격인 일곱 번째 편지가 믿을만한 것이라면, 그는 그렇게 하기를 무척 바랐었으나, 몇몇 사실들이 그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일곱 번째 편지는 진위가 의심스럽지만, 최소한 그의 생애에 관한 주된 세부항목이 꽤나 정확히 기록되어 있고, 플라톤의 시대와 무척 가까운 시대에서 전해 내려온다.
내가 젊었을 때, 나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성인이 되자마자 정치 생활에 종사하기를 기대했었다. 국가 업무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그러했다. 사람들은 현행 헌법에 불만족스러워했고, 혁명은 일어났다.(BC404년에 일어 난 30참주의 독재혁명) … 그들 중 몇몇은 내 친족이나 아는 사람이었고, 그들은 내게 나와 잘 맞는 일일 것이라며 당장 함께 하자고 초대했다. 무척 자연스럽게, 어린 내 눈에는 이 정부가 부패한 정치에서 올바른 정치에로의 변화를 가져 올 것처럼 보였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아주 예민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이전의 정치 체제가 (되려) 황금시대로 보이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곱 번째 편지 324.
그 ‘30참주’는 곧 무너졌지만 그 시각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젊은이로서, 플라톤은 40년 정도 선배인 스승 겸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았다. 소크라테스는 걸출한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아무 저작도 남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이 미친 영향은 다른 어떤 서구 사상에도 뒤지지 않는다. 우리가 그의 성격과 사상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것들은 그의 제자나 동기들의 글들을 통해서이다. 소크라테스는 수많은 플라톤의 대화편들의 주인공인데, 대화편에서 그는 요지부동한 도덕적 고결성을 가진 인물의 역할을 한다. 또 역사가 겸 작가인 크세노폰의 작품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희곡 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에서 풍자되기도 한다.
BC399년,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며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진다. 플라톤에게 이것은 아테네 정치가 부패한 상태라는, 어리석고 소름 끼치는 징후였다.
내가 정치하는 사람들과 법률 들을 살펴봤을 때, 정치를 하면서 그 고결함을 유지해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더 관찰하고 나이를 먹어 가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 그래서 처음에는 정치에 대한 열의로 충만해 있던 나조차도, 결국에는 모든 것의 혼돈스러운 광경에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일들이나 정치 전반에 관련해서 어떻게 하면 더 낫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공무에 참여 할 제대로 된 시기를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일곱 번째 편지 325-6.
아테네에서 이러한 시기는 결코 오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 플라톤은 비록 좀 더 적극적인 정치 방법에 관한 생각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점점 더 글을 쓰고 철학하는 쪽으로 바뀌어갔다.
결국 나는 현존하는 모든 국가는 나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다행히 생긴 기적적인 개혁이 아니라면 그들의 제정은 치료 불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바른 철학을 찬양한다면 정치건 개인이건 바르게 되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단언하게 되었다. 따라서 바르고 진실 된 철학자가 정치적 힘을 갖거나 나라의 지도자가 어떤 섭리로 인해 진정한 철학자가 된다면 인류의 문제는 다시 찾아보기 힘들게 될 것이다. 일곱 번째 편지 326.
이것이 『국가』의 정치에 관한 중심 명제이다. 그의 정치적 사상을 실제에 주입해보고 싶은 바람으로 말미암아, 플라톤은 시칠리아에 있는 그리스의 식민지인 시라쿠스에 통치자의 초대로 세 번 방문한다. 하지만 그 바람들은 아무런 결과를 낳지 못하고 플라톤은 달아나지 않을 수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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