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성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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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는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이라는 혼인 형태가 유행하였다. 남귀여가혼이란, 혼인 후 남자가 여자 집에 머물러 생활하는 혼인 형태이다. 이러한 남귀여가혼 아래에서는 여성의 권한이 강하게 나타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조선 초기 유교적인 사회윤리의 실천을 모색하는 위정자들에게 남귀여가혼은 “양(陽)이 음(陰)을 따르는” 불합리한 제도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조선초기에는 이를 친영제도(親迎制度)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태종은 혼인제도의 개혁에 대해 적극적이었으며, 세종 17년 3월에 파원군(坡原君) 윤평(尹坪)과 숙신옹주(淑愼翁主)와의 혼인이 최초로 친영제도로 거행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친영제도로 혼인형태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대부들 사이에서 조차 친영례를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친영례는 조선 건국 후 150년이 지난 명종 조에 이르러서 비로소 조선사회의 혼인제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반친영(半親迎)이라는 이름으로 이전의 남귀여가혼과 성격을 절충하고 있는데, 반친영제도는 혼례는 여전히 여자 집에서 하며 다만 혼례 후 남자가 여자 집에 머무는 기간을 2~3일로 대폭 줄인 형태의 혼인제도이다. 이러한 반친영조차도 그 당시 사회에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조선후기가 되어서야 조선사회에 완전하게 뿌리내렸다.
혼인제도의 변천을 통해 주목해야 할 점은 혼인제도가 단지 제도의 변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한 다른 제도, 즉 상례, 제례, 재산상속, 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혼인 제도를 중심으로 한 여러 제도의 변화에 따라 여성들의 생활도 변화되었다.
2) 상복제의 변화와 여성
혼인제도의 변화에 따라 혼인을 매개로 하여 발생하는 상복제도에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 고려시대 말에서 조선시대 초기까지도 외조부모에 대한 상복은 친조부모에 대한 상복과 같았다. 고려의 오복제(五服制)에서는 외조부모에 대한 상복이 친조부모의 상복과 같은 자최주년(최周年)으로 되어있다. 또, 처부모에 대한 복상은 처부에 대해 대공(大功), 처모에 대해 소공(小功)으로 했으며, 그 상대인 사위에 대해서는 소공이었다. 이는 『가례』나『경국대전』에 비하여 한두 등급 이상 높은 것이다. 그 후 고려 공양왕 5년에 조선왕조 건립의 주역들이 행한 상복제의 개정이 있었는데, 이때의 개정안에서도 외조부모와 처부모에 대해서만은 상제를 줄이지 못했다. 당시의 시속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외조부모와 처부모에 대한 복상제가『가례』나『경국대전』의 규정과 같은 소공, 시마로 바뀌게 된다. 그렇지만 그 후에도 외조부모에 대한 소공복제가 불편하다는 논의가 있었고, 외조부모와 처부모의 상에 휴가기간을 늘리고 원하는 시기에 그 휴가를 얻게 해달라는 건의가 자주 있었음을 통하여 조정에서 정한 새로운 상제가 아직까지 보편화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초기까지의 상제에서 외조부모와 처부모에 대한 상례를 후히 한 것은 남귀여가 혼인풍속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상례에 나타난 외조부모와 처부모에 대한 예우는 당대 사람들의 유대관계가 단지 남계 중심의 종법사상에 지배된 것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유교적인 예제와 윤리규범이 심화되기 전에 보여 졌던 이 같은 양상은, 조선전기 여성들이 제사상속 및 재산상속에서 상당한 권리를 갖고 또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3) 여성들의 제사 참여
조선 초기 실록 기사에는 무자(無子)의 기록이 상당히 많다. 즉 죽은 사람에게 아들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태조가 왕위에 있던 7년간 실록의 어느 기록에도 양자가 거론된 적이 없으며, 단지 수양자(收養子)나 시양자(侍養子)에 대한 재산 분배를 언급한 예가 있을 뿐이다. 태종 조에 와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들이 없어 가계계승이 안 되는 것을 염려하거나 양자를 들여야 함을 강조한 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여자 쪽 집안의 사람을 양자로 들이는 경우도 있으며, 또 여자 집안은 아니라고 해도 양자 문제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세종 24년 8월 태종정란(太宗靖亂)때 공이 있었던 지중추원사 김덕생의 추증 문제가 거론되는데, 이때 입후 봉사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었다.
지금 세속에서는 비록 봉사할 아들이 없더라도 여손(女孫)이 있으면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자식을 빌어 후사로 삼지는 아니하니 이것은 사람의 정리가 본디 그러한 것입니다. 덕생(德生)이 죽은 지 이미 여러 해되었으니 추보(追報)를 의논케 하시는 것만 해도 특전입니다. 토지를 덕생의 외손에게 주어 제사 지내게 하신다면 그 자손이 반드시 마음을 다하여 봉사할 것이요 따라서 귀신 또한 감격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덕생의 아우 우생(祐生)의 차자(次子)로 후사를 삼게 한다면, 이는 입후된 자가 아들이 되어 노비와 토지를 가지고 덕생의 외손과 다툴 것이니 정리가 순하지 못할 듯합니다. 이것이 어찌 덕생의 본심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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