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武士정신의 탄생과 가마쿠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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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근대에 이르러서야 민족(民族) 또는 민족국가(民族國家)의 개념이 형성된 서구사회와는 달리 단일민족으로 오랫동안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해 온 한국, 일본, 중국 등의 동북아시아 역사 속에서 민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측면, 즉 그 민족이 가지고 있는 혼(魂) 또는 얼이라고 하는 민족정신의 뿌리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우리 나라와 역사적으로 특수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민족정신을 이해하고자 할 때 객관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제고되고 있다. 일본의 민족정신을 흔히 사무라이 정신(武士道 精神)이라고 한다. 이 사무라이(武士道) 정신에 대해서는 종래 지나치게 미화시키거나 간과하는 측면이 있었는데, 일본의 역사 속에서 무사도 정신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분석해 나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사무라이 정신의 형성배경을 간략히 살펴보고, 일본의 政治, 軍事, 經濟, 社會에 사무라이 정신이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본 론
1. 사무라이(武士) 정신의 탄생과 가마쿠라 시대
가. 역사적 배경
일본은 4세기 후반에 야마토(大和族)족에 의해 大和王祖를 세우면서 국가의 형태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 후 8세기 후반인 794년에 京都를 수도로 정하고 1,000년간의 헤이안(平安) 시대가 이어진다. 그러나 그 후 왕조는 미나모토(源)와 타이라(平) 두 무사가문의 세력경쟁으로 혼란한 정국을 야기하고 결국은 1185년 源가문의 승리로 天皇은 실질적으로 상실된다. 그리고 쇼군(大將)의 세습에 의한 7세기에 걸친 봉건통치의 시작을 알리면서 결국 12세기 후반 1192년 미나모토(源)가문의 수장인 요리모토(賴朝)가 오늘날의 동경 근처인 가마쿠라에 幕府를 열고 무신정권을 정립하여 사무라이(武士道)가 압도하는 시대를 정립한다. 그 후 무로마치 幕府를 이어 1590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일본 전국이 평정되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서 에도 (江戶)시대가 구축되면서 일본 특유의 쇄국정책이 256년간 이어진다. 그러나 18세기 말엽과 19세기 초엽에 문호개방 압력하에 1867년 에도시대는 封建體制를 종식하고 1868년 명치유신과 함께 통치권이 쇼군(大將)에서 천황의 손에 넘어간다.
나. 일본의 민족사상 형성배경
일본은 사상과 철학이 없고 상황론에 의해서 현실과 이익에 기초한 칼의 정신만 있는 나라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우리 나라는 샤머니즘에서 출발하여 불교문화를 거치고 조선시대에는 유교문화에 기초한 사상의 기조를 갖고 있다. 반면 일본은 샤머니즘에서 출발하여 샤머니즘과 불교문화가 결합된 상태에서 사상의 기조를 만들지 못하고 근대서양 문화가 들어와 근대국가를 이루었다. 임진왜란 후 잠시 퇴계 학문을 받아들여 유교문화를 일부 수용했지만 사상으로 정립하지 못한다. 도쿠가와(德川)시대의 어느 일본 유학자는 공자가 만약 군대를 이끌고 일본을 쳐들어 온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내가 공자의 목을 베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일본의 유학자가 진정한 의미에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18세기 이후 이른바 국학(國學)이 발달하면서 「니혼쇼키(日本書記)」, 「고지키(古키리스테고멘書記)」, 「만요슈(萬葉集)」등 소위 그들의 고전을 깊이 연구하면서 야마토 타마시(大和魂)를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야마토 타마시에 입각하여 임진왜란의 주범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시키고 신흥황후(神功皇后)의 신라정벌을 미화시키는 등 침략적 역사의식을 고취하였다.
18세기의 국학(國學)운동이 18세기말의 해방론으로 이어지고, 19세기 중엽에는 정한론(征韓論)으로 발전하였다. 일본의 근대 지성인들도 사무라이의 정복(征服)/ 지배(支配)의 사상에 기초하여 특히 한국(당시 조선)에 대해서는 침략을 정당화하였다.
이러한 역사의 변화 속에서 일본인들의 민족정신으로 자리를 잡은 사무라이 정신(武士道 精神)의 핵심은 상황주의적 사고의 바탕위에 충성, 희생, 신의, 염치, 예의, 결백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사무라이 정신을 일본사회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 많은 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일부는 미화되고 일부는 부정적인 면으로 편견을 야기시키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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