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여론 안철수의 서울시장 출마 불출마 안철수 현상에 대한 시각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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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압도적 선두였던 후보가 지지율이 자신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군소후보’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상식 밖의 일이 벌어졌다. 지난 3일 실시한 중앙일보-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지지율은 39.5%였고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3.0%에 불과했다. 기존 정치권의 관행으론 안 원장이 박 상임이사에게 후보를 넘겨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안 원장은 4일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 상임이사가 원하시면 그쪽으로 밀어드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군불을 지피더니 결국 6일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했다.
 안 원장은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몇 가지의 다른 해석이 나온다.
안 원장 스스로는 박 상임이사가 만들었던 ‘아름다운 재단’의 이사를 자청해 맡을 정도로 박 상임이사와 친분이 있는 사이임을 강조하고 있다. 박 상임이사가 자신보다 여론 지지율은 낮지만 서울시장으로선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 양보한 것이란 취지의 얘기도 했다. 안 원장의 지인인 ‘시골의사’ 박경철씨는 “안 원장은 ‘정치권 코드’로 생각하면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며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검토할 때도 당선 가능성은 별로 따지지 않았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만 생각해 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안 원장의 ‘선의(善意)’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안 원장이 내년 대선 출마를 위해 서울시장 출마를 접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훨씬 우세하다. 소위 ‘대선 안철수-서울시장 박원순’이란 역할 분담론이다. 안 원장은 회견에서 “박 상임이사와 대선출마를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 시장 문제만으로도 고심하고 있어서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안 원장은 4일 인터뷰에서 “현 집권세력이 한국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한다”며 자신의 정파성을 뚜렷이 드러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서울시장에 나설 마음도 없는데 그런 소리를 왜 했겠나. 대선 출마를 위한 포석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4년째 대선 주자 지지율 선두를 달려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측은 민감한 반응을 나타냈다. 친박계 이성헌 의원은 “안 원장이 결국 소셜네트워크형의 인터넷 정당을 만들어 대선 행보를 시작할 것으로 본다”며 “서울시장 출마설은 결국 박 상임이사를 밀어주기 위한 쇼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최경환 의원은 "안 원장은 종잡을 수 없는 사람 같다. 황당하다”고 말했다. 구상찬 의원은 “안 원장은 정치권에 들어옴으로써 온갖 진흙탕에 빠지게 될 것이며 ‘박근혜 대항마’는 고사하고 대선 전에 중도 하차할 가능성이 크다”고 폄하했다.
 하지만 안 원장이 각광을 받은 이유가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극심한 불신감이 배경이기 때문에 진보진영이 ‘박근혜=구 정치 vs 안철수=새 정치’의 구도를 만들 경우 파괴력이 만만찮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안 원장은 이번 불출마로 인해 오히려 바로 대권주자로 자리 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안 원장이 진보진영 주자로 등장해 ‘박근혜 대세론’에 대응하게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여론조사기관들은 조만간 안 원장을 포함시킨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그 조사에서 안 원장이 전국적으로도 높은 지지율을 얻는 것으로 나온다면 ‘안철수 카드’는 서울시장 보선이 아니라 대선 국면에서 거론되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
밖의 도전과 내부의 응전. 9월의 정치를 규정하는 양대 기둥은 안철수와 박근혜이다. 정치무대 등장 6일 만에 ‘박근혜 대세론’을 흔들고, 생업(서울대 기술융합과학대학원장)으로 돌아간 뒤에도 숱한 논쟁을 낳고 있는 안철수 현상이 한 축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3년째 대선레이스를 이끌어 온 현실 정치는 균열과 소용돌이가 생겼다. 그 반전의 선상에 박원순과 이석연이 있는 것이다. “모세혈관(정당 조직)에 피가 흐르지 않으면 심장(대선후보)이 뛸 수 없다”면서도 “안철수 현상이 유익하다”는 친박계 홍사덕 의원의 말에는 긴장과 전의가 같이 흐르고 있다.
안철수 현상은 이렇듯 서울시장 선거와 대선을 질적으로 바꿔버렸다. 내 삶의 문제에 답을 주지 않는 정치에 대한 분노와 갈증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등록금 빚과 취업 이력서 쓰기에 지친 20대의 열광, 전세난과 보육 걱정이 큰 30대의 공분, 사교육비와 노후가 불안한 40대의 시선이 안철수에게 모인 것이다. 촛불집회-용산참사-희망버스에서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맺힌 안철수 현상이다. 시장의 실패가 국가의 역할을 되묻고, 시민사회가 직접 정치에 뛰어드는 막다른 지점에 이른 것이다.
2009년 10월부터 전국 27개 지역을 순회한 청춘콘서트에서 안철수는 시대의 멍울과 절망이 집약된 20대와 벽 없이, 거리 없이, 입장료 없이 눈을 맞췄다. 콘서트를 마치면서 그는 “우리가 20대에게 해준 게 뭐가 있나? 미안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낮고 힘든 곳’에서의 소통과 공감이 9월의 안철수 현상을 낳았다. 안철수가 세상의 죽비소리가 된 것은 거기까지다.
갈증은 이어진다. 안철수가 총선이나 대선에 나올까? 안철수 현상의 끝은 뭘까? 마음 저 끝에 물음이 쌓이지만, 이내 부질없음도 느낀다. 세상 속으로, 정치 속으로 돌아올지 모를 사람을 예단하는 공허함이고, 하루하루 녹록지 않은 현실의 압박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나로부터, 여러 사람의 대화와 논쟁에서 안철수와 대중의 분노·갈증·자각이 모인 안철수 현상이 분리되고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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