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공산주의 이후의 민주주의 소비에트 공산주의 이후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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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89년, 1990년에 중동부 유럽을 휩쓴 정치체제의 변동은 세계를 뒤흔든 사태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만들어진 민주적 자본주의 세계와 국가사회주의 세계간의 첨예한 분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기 세계 정치의 지배적 요인이었다고 추측되는, 초강대국 사이의 격렬한 대결 양식이 거의 단숨에 변형되었다. 이전 공산주의 블록의 상황에서 보거나 더 보편적으로 국제 질서 측면에서 보아 이것이 혁명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면, 혁명적 변화라고 할 만한 것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1989년~90년의 사태를 부르는데 혁명이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겠지만, 그 사태의 뿌리는 시간적으로 훨씬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먼저, 의미 있는 정치적 변화는 1980년대 초 폴란드에서, 그리고 조금 뒤에 헝가리에서 시작되었다. 1989년~90년 극적 사태가 일어나기 이전에 폴란드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선거에서 패배했고, 헝가리에서는 일당 지배 원리가 폐기되었다. 더욱이 1989년 6월 3~4일에 야만적으로 진압된 중국 천안문 광장의 대규모 학생 봉기는,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변화는 그 속도가 완만하고 조절되는 경우에만 용인될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 사태였다.
1980년대 말 중동부 유럽의 느리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뒷받침한 것은 고르바초프에 의해 소련에서 시작된 개혁 과정, 즉 페레스트로이카였다. 크렘린의 전략적 사고의 전환 그것이 아마, 소비에트 블록의 경제 및 시민사외에서 공산주의 권력이 점진적으로 침식된 것과 더불어, 1989년~90년 혁명의 근인이었을 것이다. 특히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시나트라 독트린으로 대체한 소련의 결정은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국가사회주의 정체들의 생존 능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적군이나 바르샤바 조약이 개입할 위협을 제거함으로써, 도한 대중 시위 진압을 위한 무력 사용의 재가를 거부함으로써 시나트라 독트린은 동유럽 공산주의에 대한 지원을 사실상 중단시켰다.
1989년~90년 국가사회주의 사회들의 정당화 위기의 근원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특히 세 가지의 일련의 압력을 들 수 있는데, 이들 요인은 크렘린에서 전략적 사고의 전환이 일어났던 이유뿐만 아니라 변화가 왜 그 방향으로 전개되었는지를 규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첫째 : 소비에트 경제가 세계경제 체제에 통합되지 못했다. 이는 소비에트 경제를 단기적으로는 보호해 주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소비에트 경제를 특히 기술과 혁신 면에서 취약하고 경쟁력 없는 상태에 머물게 했다. 가장 상태가 좋았던 시기에도 융통성 없고 비교적 경직적이었던 중앙 관리 경제는, 수입 기술이나 해외의 자금원 투자원에 점점 더 의존적이 됨에 따라, 더 나은 경제성과를 낼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둘째 : 이런 상황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에 냉전 격화에 따른 새로운 지정학적 압력에 의해 더욱 악화되었다. 어느 때보다 정교한 무기 체계의 역할이 커진 새로운 군비 경쟁은 재정적 기술적 관리적 수단에 있어 소련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냉전의 비용은 양측 모두에게 근원적으로 참기 어렵게 되었지만, 특히 소련 경제를 고갈시킴으로써 경제조직과 하부구조를 붕괴시키기에 이르렀다.
-셋째 : 그 이전 수십 년 동안에 소비에트 블록 내에서는 중대한 갈등과 균열이 발생했고, 이는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지에서 불만을 억제하기 위한 대규모 탄압을 가져왔다. 이런 탄압이 단기적으로는 저항을 통제하는 데 효과가 있었지만, 저항과 사회운동 및 자율적인 시민사회 조직이 발생하는 것을 영원히 저지할 수는 없었다.
2. 경제적정치적 자유주의의 승리인가?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나 일본의 경제적 도전 등에 따라 1970년대 말에 워싱턴 정책 결정자들의 머리 위에는 우울하고 의기소침한 분위기가 확연히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는 1980년대에 나온 여러 학술 출판물에 의해 강화되었다. 이 책들은 미국의 힘의 쇠퇴를 관찰기록하고 그것이 세계 정치 및 정치 경제에 미치는 의미를 고찰하고 있다. 또한 그것은 경제적 경쟁국들에 의해 침식당한 미국의 생산능력 및 세입 조달 능력과 군사력 간의 부조응이 확대됨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힘의 쇠퇴가 서구의 안보와 안정에 미칠 결과 및 미국의 미래에 대해 경보를 울렸다. 이런 생각들이 1980년대 말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극적인 퇴락에 대한 평가에 의해 어떻게 상쇄될지를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직 미국무부 정책기획실 차장이었던 후쿠야마는 서구의 승리뿐만 아니라 그의 표현대로 ‘역사의 종언 그 자체 즉, 인류의 이념적 진보의 종착지 그리고 인류의 종국적 통치 형태로서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보편화’ 를 축하했다. 후쿠야마의 주장에는 상당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그의 핵심주장 세계 이념 시장에서 정치적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경쟁자는 현재 없다 이 분명 반박하기 어렵다는 것을 대부분 인정하는 것 같았다. 그의 명제는 네 가지로 구성된다.
-첫째 : 역사의 동력으로서 이념 갈등에 대한 강조다. 후쿠야마는, 헤겔로부터 어떤 영감을 빌려와, 역사는 의식 혹은 이데올로기의 연속적 단계 즉, 사회질서의 기본 원리에 대한 특정의 견해를 구체화한 정치적 신념 체계의 연속 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연속적 단계는, 군주정이나 귀족정을 뒷받침했던 것과 같은 부분적이고 특수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로부터 좀 더 보편적 호소력을 지닌 이데올로기로 나아가는 인류 발전의 진보적목적적 행로를 나타낸다. 후쿠야마의 판단에 의하면, 현대 시기에 우리는 이런 발전의 최종 단계에 도달했다.
-둘째 : 역사의 종언에 도달하게 된 것은 이데올로기 갈등이 사실상 종식되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최종적으로 승리한 이데올로기다. 이런 주장의 중심에는, ‘자유민주주의의 정통성과 실행 가능성에 대한 뚜렷한 합의가 세계적으로 발전해 온 것에 대한 관찰이 자리하고 있다’고 후쿠야마는 적고 있다. 20세기에 자유주의의 주된 경쟁자였던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파산했거나 파산 중에 있다. 이슬람 같은 종교운동이나 지금 동유럽에서 발견되는 민족주의 운동 등을 비롯한 현재의 도전자들은 단지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이데올로기만을 표출하고 있다. 즉, 그것들은, 다른 이데올로기의 지원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신조를 지지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적 신념 체계나 민족주의적 신념 체계 가운데 어느 것도 장기적으로 보아 자유주의에 대한 일관되고 포괄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며, 따라서 ‘보편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 경제조직 원리인 시장 원리와 함께 자유민주주의만이 ‘진정 세계 역사에서 중요한’발전을 나타낸다.
-셋째 : 역사의 종언이 모든 갈등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갈등은 다양한 원인에서 발생할 수 있고 실제로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다양한 이데올로기의 지지자들, 민족주의적종교적 집단, 그리고 역사 이전이나 역사에 얽매여 있는 사람이나 집단들, 즉 자유세계의 ‘외부’에 남아있는 자들이나 ‘내부 국외자’로 남아있는 자들 등이 갈등의 근원이 된다. 나아가 세계가 점점 양분될 위험, 특히 ‘역사 이후’의 자유 사회에 속하는 자들과 전통적이고 근대화되지 못한 세계에 속한 나머지 자들로 양분될 위험이 존재한다. 이런 양분은 분명 격렬하고 폭력적인 투쟁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투쟁이 자유주의를 대체하거나 교체할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 정의에 대한 새로운 체계적 사상을 가져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후쿠야마는 주장한다.
-넷째 : ‘역사의 종언’에 대한 후쿠야마의 입장이 전적으로 분명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우울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인류 상상력의 대담한 도약이나 숭고한 신념들의 영웅적 투쟁은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정치는 시장이 행하는 조정 과정의 연장이 될 것이다. 이상주의는, 소비자 만족을 위한 기술적 문제의 해결이나 경제적 관리 등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요약하면 후쿠야마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몇몇 핵심 명제들을 상기키시면서, 한때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서로 투쟁했던 과감하고 영웅적이기까지 한 인간 해방의 ‘거대 서사들’은 고갈되었다고 단언했다. 그의 논조에는 서운하고 애석해 하는 분위기가 감지되지만, 그렇다고 자유주의에 대해 전반적으로 낙관적인 그의 단언이 약화되지는 않는다. 오늘날 ‘완전히 보편적이거나 자벌적인’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데올로기적 합의가 ‘지난 세기의 어느 때보다도 높은 정도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혁명’과 ‘자본주의 혁명’은 명확한 역사 발전 유형의 최종 단계다.
하지만 후쿠야마의 주장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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