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상소문 사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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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말

2. 상소문이란
1) 상소문이란?

3. 퇴계의 무오사직소(戊午辭職疏)
1) 퇴계 이황의 생애
① 출생
② 초년기
③ 중년기
④ 만년기
⑤ 사망
⑥ 관료와 공직자로서의 모습
2) 퇴계의 무오사직소(1558년)

4. 남명 조식의 을묘사직소
1) 남명 조식의 생애와 사상
① 생애
② 사상
2) 남명의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 – 일명 丹城疏5.
① 배경
② 을묘사직소 내용(1555년)
<단성소 요약>

5. 결론
1) 퇴계와 남명의 의(義)를 추구하려는 의지
2) 시대를 초월한 인재상

※ 단성소 전문 해석
본문내용
2) 퇴계의 무오사직소(1558년)

I. 왕이 사람을 쓰는 도 – 현우예양(賢愚禮讓)의 이치
1. 일의 경중에 따라 큰 일은 재능이 큰 자에게, 작은 일은 재능이 작은 자에게 맡겨야 하며, 크고 작은 일에 모두 합당치 않을 경우 물리치는 것이 등용의 도.
2. 옛 성현의 말
i. 맹자: “가까운 신하들이 모두 ‘그 사람 어진 사람이올시다.’ 하더라도 등용해선 안되고, 여러 대부들이 모두 ‘어진 사람이올시다.’ 하더라도 아직 안되고, 온 국민이 ‘어진 사람이올시다.’ 하면 잘 살펴보아서 어진 사람임을 안 연후에 등용하소서.”
ii. 주희: “사대부가 사양하고, 받고, 나아가고, 물러가는 데 있어서 도리에 합당하고 합당하지 못한 것은 곧 풍속의 성쇠에 관계되므로 더욱 살피지 않을 수 없다.”
iii. 망령되이 함부로 관직을 받을 수 없음.

II. 퇴계 자신의 상황
1. 병들어 직무를 감당할 수 없는 상태
2. 지금 상황에서 관직에 나가는 것은 벼슬을 탐하고 임금을 속이는 죄를 범하는 것임.

III. 자신의 사직 의향에 대한 세상의 반응
1. 세상을 깔보고 제멋대로 편하려고만 하는 것 아니냐?
2. 사양하는 체 겉으로 꾸며 이름을 구하는 것 아니냐?
3. 임금을 명을 지체하여 신하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
4. 어리석고 낮은 인물이 망령되이 옛 성현의 의리를 핑계하는 것 아니냐?
참고문헌
네이버 백과 사전
조선시대의 선비 정신과 선비 학자들의 활동(16세기 선비들을 중심으로), 신병주, 서울대 규장각
퇴계집(민족문화추진회, 1968)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김영사, 짐 콜린스)
오정수 퇴계 이황 공부방 http://my.dreamwiz.com/ohjs7
http://www.yeongnam.com/ynwn_svc/plsql/subdisp1?v_date=20040113&v_code=14&v_seqn=2
http://blog.naver.com/abcsohn.do?Redirect=Log&logNo=60013476174
http://blog.naver.com/tcasuk.do?Redirect=Log&logNo=40002757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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