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군도 - 일제강점기에 대한 나의 생각, 그리고 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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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남양군도
- 일제강점기에 대한 나의 생각, 그리고 그후
남양군도,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부터 태평양 전쟁 때까지 일본 제국의 지배 하에 있던 미크로네시아의 섬들을 말한다. 그 범위는 괌 섬(미국령)을 제외한 마리아나 제도, 팔라우 제도, 캐롤라인 제도, 마셜 제도였다. 이 섬들은 1899년부터 독일 제국의 식민지였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인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일본의 위임통치령(국제 연맹이 통치를 위탁한 지역)이 되었다.
책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이 책은 남양군도에서 일어난 일들을 조사하고 서술되어 진 책이다. 그 주된 내용은 그곳을 일본이 점령함으로써 한국인 노동자들이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치루고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벗어나지 못하게 된 이유는 많겠지만 그중 대부분이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할뿐더러 고국에 대한 그리움 혹은 바램이 남아있어야 된다. 하지만 오랬동안 그곳에서 살게 되면서 그 이후의 세대는 고국으로 돌아갈 이유마저 사라지면서 그곳에 터를 잡고 힘겨운 생활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일본은 남방경영론의 주요 대상 지역이었던 ‘남양군도’를 통해 동남아와 중국 남부 지역으로 진출하려는 교두보를 삼음과 동시에 사탕수수와 카사바 재배를 통한 경제적 이익을 최대화 하고자 했다. 30년간의 점령기간 동안 오키나와와 일본 본토의 일본인이 다수 이주하여 남양청의 보호아래 생활했고, 이 지역을 조선인들의 노동력으로 그곳을 이용하였다. 이곳은 많은 사상자를 낳았지만 너무나 멀고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라 해방과 함께 잊혀졌다.
책을 읽고서 남양군도에 대해서 조금 조사해 보았다. 그중 가장 눈에 띄던 사건이 트락크 섬의 내용이었다. 일제는 강제 징용한 조선인 노동자 8000여 명을 끌고가 혹사를 시키다가 싸이판이 함락되고 식량 공급이 안되자 조선 징용자에겐 식량을 안주고 일을 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하루라도 빨리 진지구축이 시급한지라 식량은 안 주고 혹독한 일만 시켜 굶어 죽는 조선 징용자들이 속출 하였다고 한다. 미군의 공습이 시작되자 징용자들은 나무뿌리, 풀잎, 쥐, 뱀, 벌레 등등 닥치는 대로 먹으며산과 들의 풀이란 풀도 전부 뜯어 먹으며 배고픔을 달랬지만 굶어 죽는 이들이 허다 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일본군은 자기들 먹을 식량이 떨어지니 징용자들에게 총칼을 들이대며 농작물을 훔쳐오라고 시켰다고 한다. 후에 살아 남은 강제 징용자들은 미군이 상륙하여 준 식량으로 겨우 목숨을 이었다고 한다. 끌려간 8000명중 5000명 가량은 사망하고 나머지 3천명 가량을 트락크를 떠나 부산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대학생이 되어서 가장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 일본의 강제 점령 후 생긴 우리나라의 변화 그리고 한국인들의 고통일 것이다. 이 책도 그중 하나인 것인데 지금까지는 몰랐던 다른 세계를 본듯한 느낌이다. 왜냐하면 전혀 몰랐던 군도에서도 우리 한국인들이 강제 노역을 당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남양군도가 어딘지 아시느냐 라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아무도 모를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일본이 강제로 점령을 하여 전쟁의 교두보로 삼기위해 우리 조선인이 총알받이를 했다는 것, 많은 여성들이 정신대로 강제 징용되어 끌려갔다는 것이다. 또한 요즘에 이슈가 되었던 하시마섬의 강제 노역등이 대부분일 것이다. 내 자신이 많이 한심하다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일본에 대해 강한 부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 조선인들이 피해를 입고 힘들었던 지역들에 대해 알고 있지 않은 점 때문이다. 나름 많은 곳을 알고 있었다라고 생각했지만, 또다른 곳이 나온 것이다. 너무나도 멍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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