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연구주요저작강독 -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 서동만(5장,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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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
서동만
제5장에서는 국가사회주의와 당의 일원적 지도체제 확립에 관해서 다루고 있다. 연구 기간은 1958년부터 1961년까지이다. 첫째, 만주파의 권력 장악과 당의 일원적 지도체제에 대해서 알아본다. 둘째, 만주파의 당군 장악과 당군 일체화에 대해 알아 본다. 셋째, 사회주의대고조에서 자력갱생과 국방경제 병진 노선으로 가게 된 이우야 대하여 알아본다. 넷째, 공업부문에서 직업동맹 및 당사업체계의 전환에 대하여 알아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농촌당제도의 전환에 대하여 알아 본다.
만주파의 권력 장악과 당의 일원적 지도 체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제1차 당대표자대회와 숙청의 총괄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1958년 3월에는 당 제1차 대표자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표자회를 전후하여 프롤레타리아독재론이 공식화 되었고, 박금철, 리효순 등 갑산계 주도화에 반종파투쟁과 반혁명분자에 대한 투쟁이 정식으로 결합되었다. 당기구 확대와 세력관계의 변화 또한 감지되었다. 종래 당단체가 조직되지 않았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재판소, 검찰소, 내무성에 대한 당 통제를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부로 중앙당에 행정부가 신설되었다. 또한 제1차 대표자회가 개최되기 전인 1957년부터도 당내에서는 김일성과 갑산계의 비호 하에 김영주, 김도만은 강경파가 부상하고 있었으며 국내계는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제1차 대표자회가 개최되고 반년 후인 1958년 9월말에는 농업협동화와 개인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완료되었다. 이때 갑산계는 혁명전통 확립이라는 과제를 새로이 주도적으로 수행하였다. 1958년과 1959년경에는 전 사회, 국가에 대한 당 우위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원칙이 되었으며, 이후 당 우위 원칙을 제도화하는 과제만 남아있었다. 이 제도화는 군대 내에서 시작되어 당위원회에 의한 일원적 지도로서 정착하였고, 이윽고 농천으로 공장으로 확대되어나갔다. 당의 일원적 지도 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작업은 김일성이 스스로 선두에 서서 추진하였다. 특히 군대 내에서 당의 일원적 지도의 제도화는 연안계와 소련계의 숙청작업과 결부시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였다.
제4차 당대회에 대해서도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제4차 당대회는 1961년 4월에 개최되었다. 이 당대회는 모든 측면에서 김일성에게 ‘승리자의 대회’였다. 그는 이 당대회를 기점으로 단순한 권력자가 아니라, 당, 정부, 군, 경제, 이데올로기 등 북조선 체제 전체를 직접 구상하고 또한 실현하는 설계자가 되었다. 김일성에게만 승리의 대회는 아니었다. 만주파에 역시도 승리자의 대회였다. 만주파는 제4회 당대회를 계기로 당내 최대 다수로서 유일한 정파가 되었다. 만주파는 중앙위원과 후보위원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였으며, 연안계와 소련계는 소수만 남아 정파로서의 의미를 잏었다. 중앙위언 중 원래 군 출신을 합치면, 만주파 중아우이원의 전반 이상이 군인이었다. 즉, 여러 측면에서 제4차 당대회는 랜드마크적인 사건이었다. 김일성은 공식적으로 그야말로 절대적인 위치에 오르게 되었으며 만주파는 군을 장악하였다. 군의 만주파화 또는 당중아위원회의 만주파화는 당정군의 일체화를 나타내는 사건이었다.
만주파의 당군 장악과 당군 일체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것들을 살펴보야아 한다. 우선 군내의 연안계 및 소련계가 숙청되었다. 군내 숙청작업은 중국군이 철수함에 따라, 조중 연합사령부체제로부터 인민군의 인적, 제도적 틀을 만들어 내는 것과 연관되어 진행되었다. 이 숙청작업은 단순한 숙청작업이 아니었다. 소련식 군내 정치사업방식 (군사단일제)에 대한 비판과 반혁명폭동음모가 꾀해졌다는 혐의 하에 진행되었다. 이러한 군내 연안계와 소련계 숙청은 만주파 군인들에게 상승의 기회를 주었다. 이로써 김일성은 완전히 독자적으로 군을 통제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그야말로 일거양득의 경우가 아닐 수 없다. 농업협동화가 완료된 시점인 1958년 9월말로 부터해서 숙청은 지방 당이나 인민위원회로 확대되었고, 이와 함께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이 민족해방투쟁의 전통성을 대표하도록 하기 위한 정지작업이 펼쳐졌다. 전국적으로 토착 좌익운동 출신인 당, 인민위원회 간부가 상당수 숙청되었다.
또한, 당군관계의 전환과 인민군당위원회 설치를 살펴보아야 한다. 1958년부터 개시된 인민군 내 당군제도의 개편작업은 많은 혼란을 수반하면서 1960년 9월경 인민군당위원회에 의한 일원적 통제제도로서 정착되어 갔다. 군대에서 최고조직은 당위원회가 되었으며, 총정치국은 군내 당조직을 지도하는 당중앙위원회의 조직부에 비유되었고, 군대 내 당위언회는 집단적인 군사정치적 영도기관으로 정의되었다. 이는 제4회 당대회에서 개정된 당 규약에 조선인민구 내 당조직에 관한 규정이 마련되었다. 1962년 12월 군사부문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 당군사위원회가 설치되었고, 4대군사노선이 제시되었다. 또한 뒤에 자세히 다룰 경제건설과 군사력 강화의 병진정책 역시 이때 채택되었다. 이러한 정책의 변화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외적으로는 남한에서의 군사 쿠데타 발생과 군사 정권 수립, 한일국교정상화 움직임, 종소대립의 표면화와 쿠바 미사일 위기 등의 이슈가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625전쟁 이래 군의 비대화, 만주파의 당군 장약에 따른 당군 일체화라는 이슈가 있었다.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지는 큼지막한 이슈들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대외적 내부적 상황에서 정책을 전환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이 시점에서 북조선은 인민군 창군이념의 일부로 출발한 항일무장투쟁의 전통을 유일한 창군 이념이자 유일한 로동당 창당 이념으로, 나아가 건국 이념으로 정식화하였다. 즉, 군사부문에서의 민족주의가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곧 만주파의 군 장악과 당군 일체화가 시작되었다.
사회주의대고조에서 자력갱생과 국방병진으로의 변환에 대하여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숙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집단혁신운동에서 천리마운동으로의 변화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앞에서 알게 된 일원적 지도 체제로의 전개에서 시작 된 제도화는 대체로 중국식을 참고로 하였지만, 천리마운동 같은 대중운동뿐 아니라 청산리방식, 대안의 사업체계, 새로운 농업지도체계 등에서도 북조선 독자의 모델을 강력히 추구하였다. 물론 이 시기에 독자성이라고 해도 소련형 국가 사회주의라는 기본 틀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1958년 3월 제1차 5개년 계획이 확정되고 나서 중공업중시에 기초를 둔 초고도 성장노선은 보다 더 강화되었다. 대중의 열의를 동원하는 방식도 발전하여 1958년의 집단적 혁신운동에서 1959년 3월의 천리마작업반운동으로 한층 더 비약하였다. 공업 생산 목표는 터무니 없을 정도로 높은 수치가 목표가 되었다. 하지만 이에도 불구하고 제1차 5개년 계획의 공업 생산 목표는 2년 반 앞당긴 1959년 상반기에 이미 달성되었다고 발표되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폭주 그 자체인 목표 설정이었고, 이가 달성했다는 발표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무리한 목표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런 계획에 비난을 제시할 세력은 당시엔 남아 있지 않았다. 앞에서 부터 지속적으로 보아왔듯이 끊임 없는 숙청의 결과일 것이다. 5개년 계획은 결국 수정되었으나, 이는 발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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