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연구주요저작강독 -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 1945~1961, 서동만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3.29 / 2015.03.29
  • 6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1,0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 1945~1961
서동만
이 책은 기존 연구에 대한 반성을 통해 북조선사회주의를 변화의 측면에서 규정하고, 북조선 사회의 근저에 있는 국가사회주의체제를 북조선체제론의 기초에 두는 것을 기본시각으로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1945년부터 61년에 걸쳐, 북조선 사회주의의 제도적 형성과정을 몇 개의 부문별로 역사적으로 추적하였다. 저자는 북조선 사회주의체제가 1961년 제4차 당 대회를 전후하여 확립되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1945년부터 61년을 전후로 한 시기까지의 전 기간에 걸쳐 사회주의체제의 성립과정을 몇 개의 단계로 나누어 각 단계를 그 제도적 형성의 측면에서 취급하였다. 각 단계마다 권력중심부의 정치구조 이외에, 군사부문, 공장, 농촌의 통치 구조를 분석, 종합함과 동시에 전 기간에 걸쳐서 체제의 형성과정을 각 부문별로도 정리하였다.
이 책은 1945년부터 1961-62년까지 기간을 다섯 시기로 나누어 단계적으로 파악하면서, 동시에 매 단계를 부문별로 나눠 서술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정치적 세력관계의 변화과정을 기본 축으로 하면서, 당과 정부의 관계, 당과 군대의 관계, 공업부문의 관리체제, 농업부문의 농업생산체제 및 농촌지역의 통치체제 등 네 개 부문으로 나눠 분석한다.
제1장에서는 해방과 인민위원회라는 제목으로 해방 직후인 1945년부터 1946년까지의 시기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이 장에서는 해방직후 북조선에 일어난 변화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이 다양한 변화는 초기에 생겨난 다양한 단체들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 이후 한반도의 전 지역에는 커다란 공권력의 공백상태를 가져왔다. 미소 양군이 진주하기 이전에 그 공백을 메운 것은 각 지역에서 밑으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자치조직이었다. 이들은 주로 치안 확보와 일본인재산 접수를 활동 목표로 두었다. 이 자치조직이 생겨난 이후에 미소 양군이 남북조선에 진주하게 되었고, 남북조선의 정치지형은 미소 양군 점령정책의 규정을 받아 크게 변해 간다. 북조선 점령에 따른 소련군최고사령부의 7개 항목 지시 중, 첫째는 북조선 영토 내에 소비에트 및 그 밖의 소비에트정권의 기관을 수립하지 않고, 또한 소비에트 질서를 도입하지 않을 것과, 둘째 북조선에 반일적인 민주주의정당, 단체가 광범한 연합에 기초를 둔 부르조아민주주의정권을 확립할 것과, 셋째, 적군이 점령한 조선 각지역에 반일적인 민주주의 단체, 정당이 형성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원조할 것과, 일곱째 북조선의 민간행정의 지휘는 연해주군관할구역군사평의회가 수행할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1945년 10월 8~10일 평야에서 치스챠코프의 제안으로 열린 5도인민위원회연합회의가 열렸고, 이 회의를 전후하여 북조선 지역의 방향을 좌우하는 중대한 회합이 진행되었다. 북조선 지역에 정권의 기초를 만든다는 정책이 결정된 이상, 그 작업의 일환으로 북조선 지역 독자의 당조직을 형성하도록 조건을 조성하는 것은 소련군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정책이었다. 당시 소련은 북조선 지역 독자의 공산당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서울의 당과 관계없이 북조선에 공산당의 남북분립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져야한다고 판단하였고, 10월 13일 서북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에서 조선공산당 북부조선분국이 공식적으로 결성되었다. 대회에서는 “정치노선 확립 조직확대 강화에 관한 결정서”가 채택되었다. 결정서는 조선해방의 두 개의 특수성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기본과업은 토지문제라고 규정하였다. 다만 외래의 힘에 의해서 민족해방은 획득하였지만, 통일한 주권은 아직 수립되어 있지 않다며, 통일된 조선인민공화국을 수립함으로써만 우리들의 과업을 해결할 수가 있다고 밝혔다.
11월 19일에는 북조선5도행정국이 발족하여 10개의 국이 조직되었고, 이 중 공산주의자가 5국의 반을 점하고 있는 사태였다. 11월 20일~25일 서울에서 전국인민위원회대표자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선언 수준에 머물러 있던 조선인민공화국이 전국적 차원에서 지방인민위원회를 통할하는 통일적 조직체로 인정될지 어떨지를 확인하는 의미르 가지고 있었다.
12월 초에는 소련에서 당, 행정 관계 전문가인 허가이를 포함한 조선인 그룹이 추가로 북조선에 도착하였다. 당시 소작료 3.7제 투쟁으로 인한 시위가 끊임없이 일어났고, 그 중 신의주사건은 북조선 정세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당시 공산당의 당세나 내부 상태를 보면, 기본적으로 각 도,시,군에 당위원회가 조직되어 있었지만, 공장이나 제조소 및 농촌의 면에는 세포가 조직되어 있지 않았다. 정확한 당원통계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지방당조직의 자율성도 강하였다. 이러한 분국의 상태는 공산당의 도, 군, 면인민위원회에 대한 영향력이 약한 것, 공산당조직이 노동조합을 충분히통제할 수 없는 것, 기타 정당이나 사회단체와의 통일전선사업에서 문제가 생기고 잇는 것 등 여러 가지에 그 원인이 있다고 간주하고 있다.
북조선 지역은 풍부한 지하자원과 수력자원 등 자연적 조건이 좋았기 때문에 1930년대 일제에 의해 중화학공업기지로 집중적으로 개발되어 왔다. 해방 직후 공업지대의 공장운영은 소련군과 각 지역 인민위원회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리고 각 지역에서는 공장위원회가 생겼다. 소련군은 일본인재산을 ‘적산’이라고 규정해 법적으로 접수하는 후속조치를 취하고, 실제의 관리권한은 인민위원회에 위임하였다. 또한 해방 후 전국 각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노동조합의 조직이 추진되었다.
한편, 1945년의 큰 문제 중 하나로 식량공급의 어려움이 있었다. 북조선의 식량사정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었으며, 남조선 역시 식량부족 사태에 직면하면서 한반도가 식량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다. 특히 북조선의 경우 점령 소련군이 주둔지인 각도에서 자체적으로 식량조달을 하고 있었던 것이 크게 작요하였다.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 미국과 소련은 협상을 하였으나, 소련군이 미국 측이 식량 제공을 할 여유가 없음을 알게 되자 미국과의 협상을 중단하였다. 북조선5도행정국이 만주 지역에서 식량을 구입하기 시작함에 따라 남북 간 식량을 통한 경제적 연계는 단절되어 갔다.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북한연구주요저작강독 -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 1945~1961(제3장, 제4장) - 사회주의적 개조
  • 북조선의 지도부에게는 두려워할 만한 사태였다. 더구나 ‘남조선 해방’의 기치하에 혁명을 수행한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개시한 전쟁이었던 만큼, 거꾸로 일시적이기는 해도 순식간에 일방적인 반혁명의 상황에 직면한 것은 큰 충격이었다. 서동만,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 1945~1961』, 선인, 2005, pp.467~468.『한국공산주의운동사Ⅱ』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북한주민의 상당수가 공산당에 저항하게 됨에 따라 1950~51년의 시기는 공산주

  • 북한연구주요저작강독 -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 1945~1961(제5장, 종장) - 국가사회주의, 일원적 지도 체제
  • 서동만,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 1945~1961』, 선인, 2005,pp.867~868.1961년 12월 도당위원회의 경제 부서를 보강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지면서 각 공장에 대한 ‘담당지도원제’가 마련되었다. 도내 공장, 기업소의 생산과제 수행에 대해 도당위원회가 책임지게 된 것이다. 이후 바로 공장관리체제를 전면 개편하기 위한 조치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종래 지배에 의한 유일관리제는 “사회주의경제의 본질과 모순”되는 “자본주의의 잔재”라고 규정

  • 북한연구주요저작강독 -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 - 1945 ~ 1961(3,4장) - 김일성 단독체제, 남조선혁명
  • 있으나 주요한 보직에 남로계 인사가 진입한 것은 숙청의 정도가 어느 정도였을지 의문을 품게 된다. 남로계 인사 중 살아남은 자들은 어떠한 기준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연구해 보고 싶다.3) 허가이가 창설했다고 하는 제1, 2, 3 비서직은 현재 김정은이 가지고 잇는 직책인 제1비서직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 궁금하다. 같은 노동당 내 제1비서라는 직함이지만 그 권한에 대한 차이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한 정확한 차이점을 알고 싶다.

  • 비교사회주의체제론 - 천리마작업반운동을 통해 본 북한 인민의 사회적 존재 양상 - 김보근과 강호제 연구의 비교 검토를 중심으로
  • 연구는 많지 않은 편이다. 대개 1950~60년대의 북한의 정치경제적 변화과정을 다루는 연구 안에서 한 꼭지 정도로 취급되어 왔다. 김연철, 『북한의 산업화와 경제정책』, 역사비평사, 2001; 이태섭, 『김일성 리더십 연구』, 들녘, 2001; 서동만, 『북조선사회주의체체성립사 1945~1961』, 선인, 2005.그런 점에서 볼 때 경제학 분야에서 나온 김보근의 박사학위논문과 과학기술사 분야에서 나온 강호제의 연구는 천리마작업반운동 연구를 진일보시킨 주요한

  • 북조선사회주의 체제성립사 1945~1961(3장~4장) - 김일성의 중공업우선 노선 및 농업집단화 착수 방침
  • 북조선사회주의 체제성립사 1945~1961(3장~4장)□ 강독한 저작의 주요내용 및 논지 요약제3장 6․25전쟁과 전시체제(1950~1953)1. 6․25전쟁과 정치세력관계의 변화6․25전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통치영역을 확대함으로써 한반도 전역의 ‘완정(完整)’을 목표로 한 내전으로 북조선의 38선 이남에 대한 전면공격으로 시작되었으며, 이 시기 북한은 1950년 6월 26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정령 ‘군사위원회 조직에 관하여’를 채택하여 공화국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최근 판매 자료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