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문명속의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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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론
흔히들 중세를 종교의 시대 기독교의 시대라 한다. 그만큼 그 시대에는 종교 즉 기독교가 삶을 지배했으며 그 당시 지배층 또한 귀족과 더불어 성직자가 계급 피라미드의 맨 상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 기독교는 처음부터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박해와 초대교회 시절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처형을 당해야했던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으며 그러한 긴 과정 끝에 그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로마제국으로부터 인정받게 된다. 그러면 먼저 이러한 기독교의 공인 과정을 먼저 살펴보고 그 속에서 기독교가 그 당시 서양 문명과 어떠한 관계를 맺는지 살펴보자.
본론
1. 초기 기독교의 전파
기원후 2세기 동안 ‘로마의 평화’로 불리는 안정과 평화의 시기를 구가하였던 로마 제국은 3세기 동안 계속적인 군사적 패배, 재정적 파산과 정치적 분열 등으로 커다란 위기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종교적으로는 오히려 활력이 넘치는 시대로 수많은 종교들이 크게 성장하였다. 유대교의 한 분파로 시작하였던 기독교 역시 이 시기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여, 3세기 말에는 적어도 전 로마인의 10%가 믿는 종교로 발전하였다. 거기에는 노예나 여자 등 사회의 하층민뿐 아니라 황제의 애첩으로부터 원로원 귀족 등 각양각색의 로마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면 기독교가 로마의 전통종교 및 수많은 신흥종교들을 물리치고 이처럼 지배적인 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첫째로, 기독교는 현실세계의 어려움으로부터 개인을 구할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을 가지고 있음을 선전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즉, 기독교는 전쟁, 질병과 고난 등은 모두 악령에서 비롯된다고 파악하고, 또한 이에 대한 확실한 퇴치법을 가지고 있음을 과시하였다. 둘째로, 기독교는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맞아 혼란에 빠져 있던 로마인들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주었다. 기독교의 확산에 기여한 세 번째 요인은 박해에 맞서 기독교인이 보여준 용기였다. 로마의 관리들은 간헐적으로 기독교인을 체포하고, 그들의 성서를 파괴하며,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처형하였다. 그러나, 박해는 기독교의 매력을 감소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이의 성장에 기여하였다. 특히 처형이 공동체의 모든 사람이 목격하는 일종의 공개적 구경거리였던 세계에서 순교는 신이 제공하는 확실한 구원의 표시로 보였다.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도 바치는 순교자들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신의 압도적인 권능이 존재한다고 느끼게 만들어 그들을 기독교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기독교는 특정 계급이나 남자에게만 가입을 허락했던 다른 종교와는 달리, 유대인이나 그리스 인, 노예나 자유민,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문호를 개방하였다. 마지막으로 기독교 교회는 메시아의 율법을 받아들인 모든 구성원을 보호하고 고난에서 구해줄 수 있는 실질적 장치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기독교의 주교들은 그들의 사회적 정치적 배경을 이용하여 로마 정부로부터 세금 경감 혜택을 얻어내는 등 지역 주민의 보호자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또한, 기독교 교회는 신자들이 낸 기부금을 활용하여 빈민구제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하늘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면, 3세기의 기독교 교회야말로 하늘의 도움을 받을 자격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2. 기독교의 공인
콘스탄티누스의 전기를 쓴 카이사레아의 주교 에우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263~340년)에 의하면, 황제는 312년 서 로마 지역의 지배권을 건 밀비아 다리 전투를 앞두고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군기를 앞세우고 전투에 나서라는 꿈을 꾸었다. 그는 이 지시를 따랐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로마로 개선한 후, 그는 승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그의 전임자들처럼 카피톨에 마련된 제단으로 가서 전통적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고 그가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도와준 기독교의 신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황제의 궁으로 향하였다. 다음해 그는 “기독교인을 비롯한 모든 인민에 대하여, 누구든 마음대로 어떤 종교라도 선택하여 따를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한다.”고 선언하며 기독교를 공인하였다. 이는 기독교에 대해 이제까지 제국이 취했던 종교정책과는 전혀 상반된 것이었다.
로마는 다신교 사회로, 로마인들은 최상위의 신과 그 휘하에 있는 여러 신들이 존재하며, 존경과 감사를 표현하는 제례를 통해 신들을 가시적으로 숭배하면 그 대가로 신들은 그들을 지켜주고 돌보아줄 것이라 믿어왔다. 2~3세기 로마 제국에서 통용되던 주화에 “여러 신에 의한 배려”란 어구가 흔히 새겨져 있었던 것은 로마인들의 그러한 믿음을 잘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3세기의 위기를 겪으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였고, 기독교 등 여러 신비종교가 전통적 믿음을 대신하여 로마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로마의 전통적 믿음 자체가 곧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3세기 이후 급격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경험한 로마인들은, 비슷한 상황에 빠졌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위기가 종교적 전통의 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전통의 복귀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전통적 제례들을 철저히 전통적 신과 황제에 대한 숭배를 거부하는 행위를 지진, 기근이나 게르만족의 침입 등과 같이 신의 분노를 유발하는 범죄행위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인 문제가 황제의 관심사항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기독교가 로마 사회에서 이미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공인될 당시의 기독교는 흔히 알려진 바와는 달리 박해를 피해 지하에 숨어사는 몇몇 사람들이 믿던 종교가 아니라 전 로마 인구의 10% 이상을 신자로 거느린 종교로 성장해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것은 단순히 전쟁에서의 승리에 대한 보답으로서가 아니라 기독교 교회가 가진 현실적 능력과 가능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콘스탄티누스와 그의 후계자들은 공인 후 기독교 교회에 많은 특혜를 베풀고 권한을 부여하였다. 그들은 박해중 기독교인들이 입은 피해를 보상해주기 위하여 기독교 공동체에 막대한 재정적 지원과 특혜를 베풀었으며, 로마, 안디옥과 예루살렘 등에 ‘금과 모자이크와 대리석’으로 치장된 교회를 새로 신축하여 교회의 권위를 세워주었다. 그들은 또 주교들을 궁정의 신하로 등용하였으며, 그들에게 기독교인들 사이의 분쟁은 물론이요 그들과 비기독교인 사이의 분쟁을 관할하는 재판권을 수여하였다. 제국의 법정에서 민사 소송을 끌고 나가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신자들에게 신과 같은 판관으로 여겨졌던 주교의 법정에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이제 주교는 전 공동체의 해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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