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이야기와 밀양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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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이야기와 밀양사이
목차
Ⅰ. 영화와 소설의 비교
Ⅱ. 벌레이야기와 같은 밀양이야기
Ⅲ. 벌레이야기와 다른 밀양이야기
Ⅵ. 참된 용서의 의미
Ⅰ. 영화와 소설의 비교
원작소설과 영화의 차이. 아날로그식 문자와 영상매체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와 문학 모두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주제를 전달하지만 같은 스토리를 풀어내는 것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된다. 영상은, 음향과 그 밖의 많은 특수효과등을 이용해 관객에게 쉽게 읽혀진다. 능동적인 관객보다는 수동적인 관객의 입장이 되기 쉽다. 영화를 보는 내내 빠르게 넘어가는 화면 덕분에 관객은 영화의 스토리를 사색할 시간이 없다. 반면에 문학, 즉 소설은 소설을 읽는 독자의 상상과 판단이 작품 전체를 해석하게 만든다. 따라서 능동적인 독자의 태도를 필요로 하게 된다. 해석의 관점에 있어서는 영화보다는 문학이 더 긍정적일테지만, 활자로 메시지를 전하던 시대에서 영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시대로 변한 지금, 문학보다는 영화가 더 대중성을 띄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원작 소설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볼때 많은 이들이 항상 생각하는 것은 소설안에서 느끼고 보았던 내용이 축약되거나 많이 생략되어서,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소설을 볼땐 자신(독자)의 상상력으로 소설안의 세계를 표현하여 이해하지만, 영화는 정해진 배우와, 배경, 그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이라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때문에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면 항상 원작보다 못하다는 평을 받게 된다.
Ⅱ. 벌레이야기와 같은 밀양이야기
플롯이나 구체적 설정을 비교한다면 영화 <밀양>이 원작소설 <벌레 이야기>에서 빌려 온 것은 많지 않다. 주인공의 사연과 주변 인물의 묘사, 그리고 밀양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영화가 온전히 창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 두 작품은 일단 같은 질문을 던진다. 신이 인간을, 혹은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삶이란 내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타인의 악의로, 우연한 사고로, 때론 운명의 장난으로 산산히 깨지기 쉽고, 일단 깨지고 나면 도저히 붙지 않아 전능한 무엇 없이는 회복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벌레 이야기>속 알암이 엄마와 <밀양>속 이신애 또한 같은 질문에 마주치게 된다. 삶의 구심점으로 의지하고 살았던 존재의 강탈과 상실은 인물에게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과 자기 숨이 끊어지는 고통의 순간을 선사한다. 이렇게 아파하던 신애 1) 편의상 <밀양> 속 이신애로 통합.
가 동네 사람들의 적극적인 포교 혹은 유난에 힘입어 잠시나마 종교에 귀의하게 되면서 작품은 이때부터 용서와 구원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제 신애에게는 아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내지 잃었다는 슬픔 뿐 아니라 아들을 죽게 한 사람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과 거기서 비롯되는 또 다른 차원의 불안감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신애는 가슴 속에서 꺽꺽거리며 끓어오르던 슬픔을 처음으로 완전히 뱉어내면서 신의 존재를 믿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기용서의 증거를 찾기 위해 선택한 유괴범과의 대면은 가혹한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 선택했던 종교적 기반의 붕괴를 가져온다. 신의 포용력은 신애 뿐 아니라 신애가 아직 용서하지 못한 유괴범에게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제는 세상을 넘어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요.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집사님 말씀대로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고 있었어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 있어요?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주님께선 내게서 그걸 빼앗아가버리신 거예요. 나는 주님에게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그를 다시 용서합니까.] <벌레이야기> p 90.
이런 절망적 자각 앞에 신애는 종교적 절대자에 대한 반항을 해보지만 이는 그 앞에선 무력하고 하찮을 뿐이다. <벌레이야기>와 <밀양>은 가해자가 오히려 하늘의 용서를 받고 평화롭게 살아가지만 피해자는 (가해자가 이미 용서를 받았다기에) 용서할 수도 없고, 그 아픔과 절망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무기력한 [벌레]같은 인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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