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김옥균과 전봉준 비교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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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19세기의 조선
Ⅲ. 김옥균과 개화사상
Ⅳ. 갑신정변(甲申政變)
Ⅴ. 전봉준과 동학
Ⅵ.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
Ⅶ. 김옥균과 전봉준 비교와 평가
Ⅷ. 나오는 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들어가는 말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가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Study of History)』에서 말했듯이 인류는 끊임없이 ‘도전’과 ‘응전’을 반복하며 그 결과 문명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결정되어진다. 19세기 조선은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응전’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조선은 그 체제의 모순이 한계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서양과 일본 등 열강의 침입으로 인해 풍전등화의 상황에 처해있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조선에서는 이에 맞서 ‘응전’하는 움직임이 등장하였다.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개화파의 갑신정변과 전봉준의 동학농민운동이 그것이다. 전자는 위로부터 체제의 개혁을, 후자는 아래로부터 폐정을 개혁하고 외세를 물리치고자 하였다. 이들은 방법은 달랐을지 몰라도 조선을 위기상황으로부터 구하고자 하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었다.
이 발제문에서는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고자하였던 두 인물 김옥균과 전봉준에 대하여 다루었다. 우리는 김옥균과 전봉준의 생애와 사상을 각각 갑신정변과 동학농민 운동으로 설명하고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옥균과 전봉준을 그들의 업적과 사상을 바탕으로 비교, 평가하여 10조 나름의 결론을 내려보았다.



Ⅱ. 19세기의 조선

ⅰ. 내부 모순의 심화
19세기 조선은 정치·사회·경제적 모순과 외세의 침략 위험 등 변혁의 분위기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기강의 문란과 관료의 부정부패는 사회, 경제적 파탄을 초래하는 근원이 되기도 하였는데 국가의 수취세제인 삼정(三政)의 극심한 문란을 초래하면서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 이때 유교의 타락과 퇴색은 양반사회의 생활규범으로부터 변질되면서 백성들에게는 지배이념을 통한 임무수행이 불가능 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제우(崔濟愚, 1824~1864)는 동학을 탄생시키면서 조선사회의 대내외적 위기를 민중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정신 구원적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1863년 고종(高宗, 1852~1919)이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고종은 아직 12세의 소년이었기에 그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이 정치를 주도하게 되었다. 흥선대원군은 세도정치의 모순을 시정하고 부강한 왕조국가를 중흥시키려는 것이 개혁의 목표였다. 대원군은 양전사업 실시, 사창제(社倉制) 실시, 호포제(戶布制) 실시로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려 하였고, 경복궁 중건사업, 서원철폐, 비변사 기능 축소 등으로 세도정치를 바로잡고 중앙집권체제를 안정시키고 부국강병을 강화하는데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경복궁 중건사업으로 당백전(當百錢)이라는 화폐를 발행하면서 물가가 폭등하였고 과도한 인력을 동원으로 인한 백성들의 불만은 계속되었다.

ⅱ. 외세의 침입
조선 자체의 모순이 심화되는 가운데 19세기 중엽부터 근해에는 미국을 비롯한 서양 선박들이 자주 출몰하자 백성들은 혼란스러웠다. 아편전쟁에서 서양세력에 의해 청이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한 조선은 서양 선박들에 대한 경계심을 높였다. 흥선대원군은 프랑스와 미국의 통상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면서 쇄국정책을 폈지만 개화파의 통상론의 대두, 고종이 성장하게 되면서 실각하였다. 그 후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1895) 일족이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제 국정의 방향은 왕조의 기틀을 유지하면서 외국의 과학기술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정책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이것은 서양의 과학기술을 빌려 조선을 부강하게 하려는 동도서기(東道西器)적이고 온건한 개화 정책이었다. 이렇게 점진적인 개화정책을 추진하는 도중에 운요호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서 조선은 최초의 근대화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조약을 맺게 된다. 강화도조약 직후 정부의 개화정책으로 정치의 시야가 넓어지고 국방체제가 개선되고 있었으나 당시 정권을 장악한 민비 세력의 부패한 모습은 백성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쌀을 비롯한 곡물이 개항장을 통해 일본으로 대량 유출되면서 쌀값이 폭등하여 농민생활과 서울의 하층민의 경제적 압박이 가중되자 이들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개화정책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상황 속에서 조선에서는 현재까지의 개화정책보다 조금 급진적인 개혁을 꿈꾸는 움직임과 함께 심화되는 민생고를 견디지 못한 농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져갔다.


년도
사건
내용
1866
병인양요(丙寅洋擾)
병인박해를 구실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한 사건.
1868
오페르트 도굴사건
독일인 오페르트가 통상 요구를 거절당하자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한 사건.
1871
신미양요(辛未洋擾)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국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한 사건.
1876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일본과 맺은 조선 최초의 근대화 조약이자 불평등조약 (해안 측량권, 치외법권 허용).
1882
조·미 수호 통상 조약(朝·美 修好 通商 條約)
청의 알선으로 미국과 맺은 조약 (치외법권, 최혜국대우 규정).
1882
임오군란(壬午軍亂)
민씨 정권에 대한 도시 하층민의 불만과 별기군에 대한 차별로 인한 구식군인들의 불만으로 이들이 일으킨 난.
1882
조·청 상민 수륙무역 장정(朝·淸 常民 水陸貿易 章程)
임오군란을 계기로 맺은 조약으로 청상인의 내륙통상권, 연안 무역권 등을 허용함.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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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泰 久 ,「전봉준의 동학혁명 종교교육사상」한국종교교육학회, 2003
「전봉준 공초」『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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