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 1930년대 조선학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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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 차


Ⅰ. 서론

Ⅱ. 조선학운동의 배경과 전개
(1) 1930년대의 정세
(2) 신채호와 최남선
(3) 다산서세기념사업과 조선학운동의 전개

Ⅲ. 주요 인물들의 역사인식과 조선학 개념논쟁
(1) 민족주의자
- 정인보
- 문일평
- 안재홍
(2) 맑스주의자
- 백남운
- 최익현
(3) 조선학 개념논쟁

Ⅳ. 결론

Ⅴ. 참고문헌

Ⅵ.질문과 답변

본문내용
(1) 1930년대 정세
1920년대까지 상대적으로 안정된 발전을 이루어오던 일본 자본주의는 1927년의 금융공황에 이어 1929년 세계대공황, 1930년 농업공황 등을 차례로 직면하면서 초래된 정치, 경제적 위기를 모면하고자 대륙침략전쟁을 도발하였고, 식민지 수탈을 강화하였다. 이 여파는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지향해온 각 정치세력에게 1930년을 전후한 시기에 조성된 복잡한 국내외 정세에 대응하여 나름대로의 인식과 정책을 견지하게 하였다. 이것은 운동계, 사상계, 학계에도 그대로 반영되었고, 특히 학계를 중심으로 볼 때 이러한 동향은 조선에 대한 일제의 수탈증대와 ‘황민화’를 논리화하는 학문적 기반의 강화를 의미하였다. 그것은 두 측면에서 전개되었는데, 조선에 대한 식민지 수탈정책의 사상적, 학문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는 일제 관학의 발달과 그 일환으로 관학이 주체가 되어 정책적으로 추진한 식민주의적 조선연구의 강화였다.
일제는 1920년대 중반부터 이를 제도적으로 추진하고 지원하기 위한 관학 연구조직을 체계화하였는데, 1925년 조선사편수회의 설치와 그 결과물인 『조선사(朝鮮史)』(1932)의 편찬이 대표적이었다. 또한, 총독부의 지원 하에 청구학회, 경성제대 조선경제연구소 등 일본인 관학자의 조선사연구 조직이 체계화되어 한말에서 일제하에 이르는 조선의 사회경제 전반에 대한 방대한 연구를 추진하였다. 그 핵심내용은 조선인을 회유하고 ‘황국신민화’의 학문적 기초를 마련하는 동시에, 종전의 조선을 정체된 사회로, 일제하의 조선을 발전하는 사회로 검증해 내고자 하였다. 이렇게 노골화되는 일제의 지배이데올로기의 공세는 군국주의체제로의 강화와 더불어 민족의 정통성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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