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청산] 친일파의 활동과 해방후 진로 및 반민특위와 의열투쟁의 친일파 처단 활동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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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일본의 현재와 신대동아공영론

Ⅲ. 친일파의 종류

Ⅳ. 반민특위의 활동
1. 검거 1호 박흥식
2. 33인 중의 최린
3. 사형구형 1호 김태석
4. 사형선고 1호 김덕기

Ⅴ. 친일파의 해방 이후의 진로
1. 해방 직후의 친일파 처단 공방
2. 제1 공화국과 친일세력
3. 독립운동가로 둔갑한 친일파

Ⅵ. 친일파 이완용과 송병준

Ⅶ. 이토 암살과 한일합병

Ⅷ. 친일파 처단과 의열투쟁의 전개
1. 전반기(1919~1925)
2. 후반기(1926~1935)

Ⅸ. 결론
본문내용
현재 나라 안팎으로 일어나고 있는 두 가지 사실은 과거사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되새김질하게 한다. 그 한 가지는 80년대 이후 일본이 과거 아시아 침략 행위를 합리화하면서 공공연히 신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며 신군국주의 로의 재무장을 서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한 가지는 나라 안에 강제 징용, 징병, 정신대 문제와 같이 일제가 남긴 피멍이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는데 어이 없게도 매국노 이완용의 증손자가 나라를 팔아 축적한 할아버지의 재산을 돌려 달라고 재판을 척구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못된 과거 역사를 청산하지 않고는 안정된 현실도 밝은 미래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평범한 역사의 진리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친일 친일파 문제는, 지금 우리의 민족이 당면한 민족사 발전을 가름하는 전환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일본이 1905년 총칼을 앞세워 40여년 동안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겉으로는 ꡒ백인종의 침략에 맞서 황인종(한, 중, 일)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ꡓ는 이른바 대동아 공영권 을 내세우고 그것이 조선을 위한 일이라고 뇌까렸지만 그것은 그 뒤의 역사가 말해주듯 새빨간 거짓말 이였다. 일본은 이러한 사탕발림으로 자신의 침략과 수탈을 합리화한 뒤 이에 저항하는 무수한 애국 지사를 학살하고 숱한 인적, 물적 자산을 빼앗아 갔다. 친일이란 이러한 식민지 정책에 어떤 식으로든 협조 기여하는 행위를 말하며, 친일파란 그런 행위를 한자를 말한다. 한마디로 민족과 역사보다는 개인의 안녕과 영달에만 매달려 온 민족 반역 행위요 민족 반역자를 말한다.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친일 행적을 하는 사람들이 집단화되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들의 친일 행위를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이 그밀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일반 대중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 각 부문의 지도적 인사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이 역사와 민족 앞에 할 책임과 의무가 막중했던 만큼 그들의 친일 행위가 보통 사람들이 저지른 행위와 같을 수 없었다. 8.15 해방 이후의 역사에서 볼 때 떨쳐 버릴 수 없는 또 한 부류의 친일파는 1930년대 이후 일제통치에 직접 참여하여 제 도포를 억압하고 착취하던 조선인 식민관료, 만주와 중국에서 항일 독립군을 때려잡던 조선인 출신의 일본군 (만주군), 나라 안팎의 항일 운동가를 염탐하던, 밀정일제 경찰을 대신하여 고문을 일삼던 조선인 악질 경찰, 항일운동가를 일제의 법으로 다스리던 조선인 판사와 검사들 식민지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제 세상을 만난듯 날뛰던 자들이다. 이들은 해방뒤 아무런 비판없이 미군정에 남한단독 정부에 그대로 눌러앉아 그 뒤 남한사회의 주역이 되었다. 일제 40여년동안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수많은 민족배반자와 그들이 저지른 죄악을 이루다 말할 수 없는데도 이를 책임지는 자, 처벌받는 자는 한 명도 없었으니 해방된 조국의 앞날도 그야말로 가시밭길이 아닐 수 없었다. 친일파를 처단하여 해방된 조국 건설에 대한 그들의 참여를 박탈하는 일은 진정으로 민주적이며, 자주적인 국가발전의 기틀을 닦는 자랑스런 민족의 과제였던 것이다. 친일파에 대한 인적청산의 실패는 이데올로기, 정치, 사회, 학문, 문화등 사회 곳곳에 도사린 일제의 더러운 찌꺼기의 청산도 불가능하게 하였다. 친일파 그들은 지금 어디에 1960년 4월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은 몰락하였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의 붕괴는 곧바로 친일파의 몰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친일파가 미군정 이후, 친일반공을 앞세우며 사회 각 부분에 내린 뿌리와 가지는 너무도 튼튼하고 무성하였다. 4월혁명으로 이승만정권 당시, 독재의 보루였던 친일경찰의 힘이 무너지자, 그 자리를 차지한 세력은 친일반공을 명분으로 혁명을 가장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였다. 그들의 뿌리는 일제 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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