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독재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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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박정희는 독재자인가
1. 독재란 무엇인가.
‘독재’란 매우 다의적으로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사전적 의미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민주적 체제를 갖지 않고 한 개인 또는 그를 둘러싼 소수자가 권력적, 자의적으로 국민을 지배하는 정치 형태’(http://www.naver.com,국어사전) 라고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재자 히틀러의 경우 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을 독재를 통해 2차 세계 대전의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탁월한 지도력과 웅변력을 갖춘 히틀러는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가혹한 정책으로 포로와 점령지 주민, 그리고 유대인을 강제노동에 동원하거나 강제수용소로 이송 또는 살해함으로써 반(反)나치 저항 운동을 전 유럽에 걸쳐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때문에 그 뒤에는 너무나 많은 희생양이 숨겨져 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히틀러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독재자’로 굳혀져 갔다.
2.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
한국에도 독재자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성장을 제1목표로 삼아 ‘경제개발5개년 계획(국민경제의 획기적인 발전을 도모하여 양적성장과 아울러 질적 발전과 국민생활의 향상에도 중점을 둔 5개년 단위의 경제계획.)’을 세워 한국의 경제를 부흥시켰다.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실시함으로써 경제성장률과 1인당 국민총생산(GNP)가 증가하였고 공업건설이 본격화됨에 따라 외자의존도가 높아졌다. 한편 착수 직전인 1971년 8월의 닉슨 쇼크에 의한 국제경제 질서의 혼란, 1973년 10월의 석유파동 등으로 어려운 고비에 처하게 되었으나, 외자도입의 급증, 수출 드라이브 정책, 중동 건설경기 등으로 난국을 극복하여 연평균 9.7%의 성장률을 유지하였다. 이 계획의 가장 큰 성과는 한국 경제의 고질적 문제였던 물가를 획기적으로 안정시킨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1986년부터 3저 현상의 유리한 국제환경변화를 맞아 경상수지의 흑자전환, 투자재원의 자립화로 경제의 질적 구조를 튼튼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또한 국토개발계획 실시하였다. 국토개발의 의의는 국토이용의 생산성 제고, 국토이용의 편익증진, 입지의 효율적 선택, 용도 간의 이용 결합에 관한 조정과 기능의 부여 등을 합리화 하는 데 있다. 왜냐하면 국토는 고정성, 불증성, 불변성, 수입불가성 등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토지가 가지는 고유한 개발 입지의 가치성과 국토의 공간적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국토개발정책은 국민생활과 생산 활동에 관한 종합적인 영역의 이용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정책이다. 국토개발정책으로 인해 공장이 많이 세워짐으로써 일자리가 늘어났고 수출량이 늘어 국민소득도 높아졌다. 또한 경제발전으로 물자 생산이 늘어나자 교통 시설을 늘려 이를 신속하게 운반하는 한편 국민들의 생활도 더욱 편리하게 되었다. 댐 건설로 농업용수는 물론 공업, 생활용수도 충분하게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댐은 홍수를 조절하고 전력을 생산하였으며 관광자원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http://www.516.co.kr,자료실,논문자료)
이 외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들을 계몽시키는 것에 앞장섰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교육을 권장하고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시골 백성들까지 모두 계몽시키려 하였다. 앞에서 말했듯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영웅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단순한 독재자로만 치부하기에는 그의 공적이 너무 크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자였다면 국민들의 교육에 힘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식민통치나 독재지배를 오래도록, 그리고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그 국민들이 반드시 무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영웅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3. 박정희 대통령 업적의 이면.
하지만 동전에도 양면이 있듯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에도 또 다른 이면이 있었다. 먼저 그는 친일파 장교 출신으로서 유신이라는 이름 하에 학생들을 군인 다루듯 하였다. 이 것은 일제시대 때 칼을 찬 선생님들에게 충성을 하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경제를 발전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경제발전도 그의 독재를 위한 허울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가 외국자본에 의존한 경제발전 까닭에 지금도 우리는 자본에 휘둘리고 있다. 또한 수뇌부들이나 기업가들만 잘살게 하는 경제 발전을 만들었다. 노동자들은 인간대접조차 못 받는 현실이었고 그로 인해 전태일과 같은 사람이 분신자살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것은 지금도 이어져 위의 상위권만 잘 살고 하위권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대접조차도 못 받는 경우가 있다.
또한 그는 내실을 다지면서 천천히 발전을 이룬 것이 아니라 빠른 속도로 발전을 이루어 나갔다. 물론 이것으로 인해 한강의 기적이라는 고속의 경제발전을 이룩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에 대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우리는 부풀어진 경제로 인해 IMF를 맞았고 지금도 경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의 가장 부적절한 행위인 인권탄압이 있다. 그 때 당시 국민들의 인권을 침해하였으며, 죄 없는 사람을 고문하여 죽였다. 또, 사기 친 사람을 몇 일만에 사형에 처했고 심지어 일본인들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고문과 학살을 자신의 민족들에게 시켰다. 이런 것으로 보았을 때 그는 국민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을 단순히 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해 혹은 나라의 기강을 잡기 위해 치른 희생양이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 있을까.
4. 독재자 박정희.
위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단순한 독재자로만 치부하기에는 그의 공적이 너무 크다고 했지만 다른 한편 그를 영웅이라 말하기에는 그가 저지른 만행들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적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희생양이 없었어도, 굳이 강력한 독재를 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할 수 있는 길은 많았다. 현명한 대통령이었다면 경제성장의 효율을 극대화로 하는 동시에 희생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언론의 통폐합을 주도하여 정부 편향적인 언론을 조직하였고 수많은 애국학생들을 사형장으로 몰아 죽인 독재자에 불과하다. 더구나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통치자는 현재시대에서 영웅이라 불리기 어렵다. 현재 시대에는 창의력과 다원성을 중요시 하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서 한 나라의 국민을 결단시키고, 국가 주도로 경제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며, 시대에 뒤 떨어진 일이다. 국가 주도의 경제 정책은 필연적으로 창의력 있는 각각의 개인들 보다 한 발 뒤쳐지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를 한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영웅으로써의 면모도 보이긴 했지만 그 것은 독재 안에 들어있는 일부분일 뿐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독재는 ‘소수자가 권력적, 자의적으로 국민을 지배하는 정치 형태’ 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권력을 남용하여 민주적이 아닌 강압적으로 국민을 지배하였다. 아무리 경제발전을 이루고 국토개발에 힘을 썼어도 결국 그 모든 것이 독재 하에 진행된 것임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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