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통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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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5.8. 신라 한문학의 성숙
5.8.1. 신문왕과 설총
백제와 고구려를 아우른 신라는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다스리는 기간 동안에 통일국가다운 면모를 갖추었다. 뛰어난 기상을 자랑하던 영웅의 시대는 가고, 유학의 지식을 활용해 행정실무에 종사하는 문신을 특히 육두품 신분에서 양성하고 발탁해야 할 단계에 이르러 한문학의 발전이 촉진되었다.
682년(신문왕 2)에 국할에서 논어(論語), 효경(孝經), 주역(周易), 예기(禮記), 모시(毛詩), 춘추좌전(春秋左傳), 상서(尙書), 문선(文選) 등을 교재로 해서 경전 이해와 문장 수련에 아울러 힘쓰도록 하는 교육을 실시했다. 788년(원성왕 4)에는 독서삼품과를 두어 국학을 거친 인재를 관직에 등용하는 제도를 더욱 정비했다. 독서삼품과는 과거제에 근접된 제도였지만, 인재등용을 개방하는 구실을 한 것은 아니다. 진골귀족이 아니라면 행정실무에 종사하는 기술자 이상의 지위를 차지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골품제의 엄격한 원칙이었다. 골품제는 철폐될 수 없고, 본격적인 과거제가 끝내 시행되지 않았던 것이 신라사회의 근본적인 한계였다.
유학이 불교를 대신해서 지배적인 이념의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었다. 진골귀족은 유학을 정치의 이념이 아닌 수단으로 삼았다. 실무를 담당하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의 문학을 스스로 개척하고자 했다.
설총(660년경~730년경)은 아버지인 원효가 육두품이어서 육두품 신분을 물려받았다. 원효는 천지만물의 근본이치를 밝히고 정신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원리까지 제시했지만, 설총은 한문 학습의 방법을 개발하고 국정 수행에 필요한 실용적인 지식을 공급하는 임무를 맡을 따름이었다. 설총은 문신으로 필요한 능력을 갖추어 진출하면서 적절하게 처세하는데 필요한 지혜가 있었다. 그리고 구결(口訣)을 창안하여 방언으로 유학의 경전을 풀이하는 법을 가르쳤다. <삼국사기>에서 남쪽 지방에는 더러 설총이 지었다는 비명(碑銘)이 있는데 문자가 결락되어 읽을 수 없고 뜻이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화왕계>(花王戒) 또는 <풍왕서>(諷王書)라고 하는 것은 설총이 지었다고 한다. <동문선>에는 <풍왕서>보다 먼저 김후직(金后稷)의 <상진평왕서>(上眞平王書)를 내놓았다. <화왕계>에서는 행색이 초라하지만 영달한 위치에 있지 않아 정신이 고결한 선비가 바른 도리를 알고 있으니 받아들여 국정 수행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최초로 폈다. 후대의 유학자들은 당당하게 전개하는 지론을 우언을 사용해 은근하게 나타내면서 시대 전환을 예고했다. 고려 이후에는 신하가 임금의 잘못을 말하는 주의를 글로 써서 제출하는 관례가 확립되었다. 그런 글은 논설로 이루어져 있고 우의를 사용하지 않았다.
5.8.2. 전성기에 이룬 작품
성덕왕 때부터 경덕왕 때까지 8세기 동안 신라는 전성기에 이르렀다. 당나라와의 관계가 원활하게 되어 대외적인 안정을 얻었으며, 국내 변란도 일어나지 않았다. 국왕을 정점으로 하고 진골귀족이 주요 국사를 관장하며 육두품 출신의 인재도 필요에 따라서 등용하는 정치 형태가 조화를 찾았다. 신라 문화를 담당한 여러 집단이 각기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번영을 함께 누렸던 자취가 건축과 조각에서 확인된다. 서적은 남아 있지 않아 문학에 관해서는 알기 어려운 사정을 금석문이 해결해준다.
그 무렵의 문인으로 이름난 인물은 김대문(金大問)이었다. 그는 <고승전>(高僧傳), <화랑세기>(郞世紀), <악본>(樂本), <한산기>(漢山記), <계림잡전>(鷄林雜傳)등 많은 저서가 있지만 지금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저술할 때 많이 사용되었다. 김대문은 신라문화만 집중적으로 다루고, 국왕 중심의 역사가 아닌 진골귀족의 역사를 중요시하고, 유학을 받아들이기 전부터 있었던 전통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전제왕권에 불만을 가진 진골귀족의 입장에서 당나라로부터 전래된 문화와 맞서는 신라 자체의 전통을 찾아내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에 이룩한 서책은 다 없어졌으나 금석문은 원문 그대로 남아있다. 719년(성덕왕 18)에 김지성(金志誠)이 절을 짓고 불상 둘을 봉안하는 글을 썼다. <감산사미타조상기>(甘山寺彌陀造像記)와 <감산사미륵조상기>(甘山寺彌勒造像記)라고 일컬어진다. 육두품 신분으로도 죽은 부모를 위해 불상을 세우고 조상기를 쓰는 경제적 여건을 갖추었다는 사실과 함께 조상기 본문에 나타나 있는 사연이 주목된다. <미륵조상기>에는 태평성대에 나서 영예로운 벼슬을 두루 역임했다 하고 지략이라고는 없으면서 시대를 바로잡는 임무를 맡았다가 형벌을 당하는 것을 겨우 면하고 이제는 물러나고자한다고 했다. 불상 조상기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해서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유가·불가·도가를 한데 아우르면서 도가를 으뜸으로 여겼다. 이름과 지위를 잊고 물러나 전원에 은거하면서 적막을 희구하고 아득한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했다. 신라문학의 폭을 말해주고, 후대에 두고두고 되풀이 될 전례를 마련했다.
신라 전성기의 문학이 이처럼 복합적인 문화요소를 아우르면서 품위와 수준을 자랑하는 특징을 <성덕대왕신종명>(聖德大王神鐘銘)이 더 잘 보여준다. 혜공왕이 711년(혜공왕 7)에 완성하였고 예술과 기술 양면에서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격식을 제대로 갖추었으며, 분량 또한 상당하다. 서(序)에서는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들의 한계를 넘어서야 “일승의 원음”이라고 하는 궁극의 진리가 있다 하고, 그 경지를 깨닫게 하려고 종을 매달아 소리를 듣게 한다고 했다. 신종의 주인인 대왕의 통치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여러 상징소를 겹겹으로 모아들여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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