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유부인의 감독 및 배우를 통한 현대문화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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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의 현대문화
영화 자유부인의 감독 및 배우를
통한 현대문화 이해
1. 개요
1954년 가을부터 8개월간 ‘서울신문’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연재소설을 삼성영화사에서 영화화한 자유부인은 “당신이 장태연 교수라면 과실을 범한 아내에 대해서 어떠한 결정을 지으시겠습니까?” 라는 포스터의 타이틀로 당시 서울 개봉 기준으로 10만8천명 의 관객을 동원하였고, 제작비 2천 3백만 원으로 약 7천만 원의 수익을 거둔 큰 흥행을 거둔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소설 <자유부인>은 휴전 직후인 1954년 1월 1일부터 8월 6일까지 215회에 걸쳐 서울신문에 연재된 작품으로 연재하는 동안 서울신문 판매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다가 연재가 종결되면서 5만부 이상이 일시에 격감했는데, 이는 당시 <자유부인>이 누린 관심과 인기를 짐작하게 한다. 특히 <자유부인>은 당시 대학교수 부인의 성 윤리와 작품의 상업성을 둘러싸고 작가와 대학교수, 문학평론가, 변호사가 가세하여 논쟁을 일으키며 센세이셔널한 사회적 파장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리하여<자유부인>은 단행본으로 출간되자마자 14만 부가 팔려 우리나라 출판 사상 처음으로 10만 부의 판매량을 넘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여러 번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 등 많은 화제와 유명세를 낳기도 하였다.
워낙 인기소설의 영화화라는 것이 화제가 됐지만 키스나 포옹 장면의 표현수위 때문에 생긴 논란으로 관객들의 궁금증은 더욱 증폭됐다. <자유부인>은 오선영과 대학생 춘호의 키스 장면, 오선영과 한사장과의 포옹 장면 등이 문제가 되어 상영 전날까지 검열에 통과하지 못했고, 당시 검열을 담당했던 문교부에 의해 네 군데 백 피트 가량을 잘라낸 다음 상영 허가를 받았다. ‘남녀간의 포옹추태, 댄스 신, 키스 신 따위가 민족도의 관념상 수치를 극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도덕적 심리로서 그것을 용허할 수 없다’는 것이 검열사유였다.
2. 작가 / 감독 소개
정비석(鄭飛石, 1911년 5월 21일 ~ 1991년 10월 19일)
정비석은 평북 의주 출생으로 1932년 일본 니혼(日本)대학 문과를 중퇴하였다. 1935년 동아일보에 시 「여인의 상」, 「저 언덕길」등을 발표했다. 그가 소설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36년 단편 소설 「졸곡제(卒哭祭)」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되었고, 1937년에는 단편 소설 「성황당(城隍堂」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부터이다.
1954년 소설 <자유부인(自由夫人, Madame Freedom)>을 발표하며 대중소설 작가로서 위치를 굳혔다.
한형모(韓瀅模, 1917년 4월 29일~1999년 9월 22일)
평안북도 영변군 출신이다. 광복 후 1949년 여순 14연대 반란사건을 영화화한 반공주의 영화 《성벽을 뚫고》을 발표하여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였고, 《운명의 손》(1954), 《자유부인》(1956) 등에서 당시로서는 과감한 애정 표현을 묘사해 1950년대를 대표하는 흥행 감독이 되었다. 《운명의 손》은 한국 영화 최초의 키스 신이 들어간 영화로 기록되었고, 유부녀의 외도를 다루어 사회적인 논란과 화제를 몰고 온 정비석의 소설을 영화화한 《자유부인》은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청춘 쌍곡선》(1956), 《순애보》(1957) 도 잘 알려진 대표작이며, 마지막 작품은 가수 이미자의 삶을 그린 남정임 주연의 《엘레지의 여왕》(1967)이었다.
3. 주인공 배우 소개
박암(1924~1989)
박암은 지적인 이미지로 50 여년간 한국영화계를 말없이 지킨 인물이다. 1924년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서 출생한 박암은 1948년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했으나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1951년 피난 중에 극단 ‘신협’에 입단한다. 1년 후 대구 자유극장이 제작한 영화 <태양의 거리>로 스크린에 데뷔하면서 그는 평생동안 영화배우의 길을 걷게된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고 하지만, 전공인 치과의사를 포기하고 영화배우로 전업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1956년에 주연을 맡은 영화 <자유부인>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박암은 그의 지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당시 지식층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는다. 그리고 톱스타의 대열에 오르지만, 1950년대 후반에 등장한 신영균, 최무룡, 신성일, 남궁원 등의 배우들이 부각되면서 인기가 오래 가지는 못했다. 이 시기 그는 김지미의 데뷔작 <황혼열차>와 <여성전선>, <초설>, <자유결혼>등 흥행에 성공했던 멜로드라마들을 남겼으며 여성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김정림(1922년~?)
당시 26세의 나이로 한형모 감독이 신인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안 친구의 남편이 김정림을 한 감독에게 소개한 것이다. 양장과 한복이 다 어울리는 신인 여배우를 찾고 있었던 한 감독은 눈매가 맵싸하니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김정림을 보고는 단번에 오선영 역으로 낙점했다. 평양 술 도매상 집 딸로 태어난 김정림은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 해방 후 서울에 있는 언니를 찾아 단신 월남했다. 언니가 경영하는 다방에서 일을 하는 한편 스탠드 바에도 나가며 생활을 하던 김정림은 가정 있는 남자와 만나 살림을 꾸리며 딸 둘도 낳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나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도 여전히 다방 마담 노릇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이때 사업에 실패한 남편은 일본으로 건너가 버렸다.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던 김정림은 <자유부인> 한 편으로 일약 스타가 됐다. 1957년에는 <속 자유부인>에 출연해 ‘김정림=오선영’이라는 등식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4. 주인공 ‘오선영’을 중심으로 한 중요인물 소개
영화의 주인공인 ‘오선영’
주인공 오선영은 한국 근대의 흔들리는 경계들 사이에서 모든 불안정성의 상징이 되고 있다. 현모양처에서 신여성으로 정체성을 변화시켜 양품점에서 일하게 된 그녀는 그때부터 동창모임 ‘화교회’를 통해 점점 헤어 나올 수 없는 길로 빠진다. 양품점 한사장과의 불륜과 옆집 남자 대학생과의 연애로 결국 로맨스가 아닌 추악한 불륜으로 나락하고 만 것이다.
전형적인 고지식한 엘리트 이미지를 풍겨주시는 오선영의 남편 ‘장태연’
직업은 대학교수, 이 영화의 메시지를 몸소 대변하는 가부장적 남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선영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는 또 다른 남자, ‘한 사장’
선영이 일하는 양품점의 사장(유부남).
오선영의 소위 ‘절친’이라고 할 수 있는 ‘최윤주’
오선영을 자유의 세계로 이끄는 원조 자유부인 격.
오선영에게 매우 저돌적인 구애를 펼치는 바람둥이 청년 ‘신춘호’
오선영의 친정 조카 오명옥과 결혼할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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