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글쓰기_나는 남자이며 여자이고, 나는 나이며 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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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이며 여자이고, 나는 나이며 너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선이 없이도, 차를 타고 가면서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편리한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바야흐로 사이버 세계와 현실 세계의 비중이 비슷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터넷의 등장은 지난 20세기동안 인문학 분야의 언어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김병욱 (2004),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 『디지털 시대의 신풍경』, 푸른사상, p. 16.
이 발전이라는 것은 순기능뿐만 아니라 역기능 또한 포함한다. 인쇄매체에 글을 올리려면 쉽지 않은 과정들을 거쳐야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은 그러한 방해 요소가 없다. 논리적 글쓰기의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의 글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김명근 (2005), 「인터넷 게시판의 가치」, 『인물과 사상』제33권, 개마고원, p. 29.
강의 자료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사이버 글쓰기의 특성인 익명성이 진지한 사고와 글쓰기를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이버 글쓰기의 문제점’, 논리적 글쓰기 강의자료.
이 글에서는 익명성에 기초한 사이버 글쓰기의 문제점들을 다른 작가들의 의견을 빌려 논하고자 한다.
나는 사이버 글쓰기의 가장 큰 문제점을 익명성으로 본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사이버 상의 의사소통이 올바른 판단 능력과 건전한 가치관을 가진 성인들 간의 대화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아직 이성적 판단력이 부족하고, 재미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까지 사이버 작문의 세계에 뛰어든 데에 있다. 익명성을 장점으로 채택한 사이버 공간은 저자들을 은폐시켜준다. 저자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저급한 글이던 논리적인 글이던 표면상으로는 모두 같은 권위를 지니게 된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텍스트를 비평하고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글의 좋고 나쁨의 판단 여부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주어진다. 지적 능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은 이러한 글들을 여과 없이 수용하게 된다. 실제 설문조사와 연구에 따르면 성적인 표현이나 무책임한 비속어가 청소년 사이에서 가장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권연진 (2004), 「사이버 공간의 채팅 언어」, 『디지털 시대의 신풍경』, pp. 38~39.
김병욱 교수는 모든 글쓰기는 게임이나 놀이와는 달리 글 쓰는 사람의 정신이 투영된다고 했다. 김병욱 (2004), op.cit. , p. 21.
덧붙여, 하워드 라인골드는 인간이 각양각색의 생각을 흡수하면서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또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하워드 라인 골드 · 셰리 터클 (2003), 『스크린 위의 삶』, 민음사, p. 397.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광우병 소 수입반대 촛불시위운동이 사이버 글쓰기의 단점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 촛불시위 운동은 인터넷 토론이 그 시발점이다. 온라인 여론이 오프라인으로 확대된 경우이다. 문제는 익명성의 사이버 토론이 반민주를 조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영재 (2008. 07. 15), 「‘토론광장’에 반민주 위험은 없나」, 시사저널,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46651.
실제로 인터넷 게시판을 돌아다니다 보면, 군중의 의견에 반대하는 글을 쓴 사람이 댓글을 통해 갖은 비난을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댓글을 쓴 사람의 정보는 확인이 불가능하거나 어렵다. 몇몇 필자는 이런 익명의 군중심리를 두려워한 나머지, 처음 글의 전개와는 달리 결론에서는 중립의 입장으로 기우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반대되는 의견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과 욕설은 자유로운 글쓰기를 방해한다. 이런 풍토가 지속된다면 결국에는 반민주 사회 조장은 현실이 될 것이다.
익명성의 가장 무서운 점은 사이버 상에서는 내가 누구든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디 오브라이언 (2001), 「몸으로 글쓰기」, 『사이버 공간과 공동체』, 나남출판, pp. 178~183.
사이버 상에서는 음성, 자세, 얼굴 표정 등의 단서가 없이 키보드의 타이핑으로만 타자의 정체 인식하게 된다. 어떻게 글을 쓰느냐에 따라서 나는 여자가 될 수도 있고 남자가 될 수도 있다. Ibid., pp. 184~193.
대화명을 바꾼다던지 주민등록번호를 생성하는 등의 간단한 방법으로 나는 네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한 사람이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는 여러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고, 반대로 다른 사람이 쓴 글이 나를 해칠 수 있다. 내가 내가 아닌게 되고, 타자가 타자가 아닌게 된다. 정체성의 혼란이 빚어진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념, 사상의 조작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익명성은 반민주 사회를 조장할 수도 있다. 사이버 상에서 내가 여러 사람이 되어 이념과 사상의 조작을 계획하는 것은 이제 소설에서만 나올 법한 내용이 아니다.
최근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주장과 악의적 글에 대한 처벌조항을 만들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보인다. 김용석 (2008.07.10), 「한나라 “악의적 글 방치 처벌조항 만들어야”」, 동아일보,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7100120.
그만큼 인터넷이 우리 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고, 익명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말이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고 했다. 음성과는 달리, 글은 과거부터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한 그 지속성이 유지된다. 그 효력을 무시할 수 없다. 내 생각에 사이버 글쓰기는 자유라는 틀을 가장한 방종이다. 익명의 사이버 글쓰기가 더 많은 피해를 낳기 전에 제도적 구속이 시급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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