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공연, 연기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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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공연, 연기양상
1590∼1591년 《헨리 6세 2부·3부》, 1591∼1592년 《헨리 6세 1부》, 1592∼1593년 《리처드 3세》 《실수의 희극》, 1593∼154년 《타이터스·앤드로니커스》 《말괄량이 길들이기》, 1594∼1595년 《베로나의 두 신사》 《사랑의 헛수고》 《로미오와 줄리엣》, 1595∼1596년 《리처드 2세》 《한여름밤의 꿈》, 1596∼1597년 《존왕》 《베니스의 상인》, 1597∼1598년 《헨리 4세 1부·2부》, 1598∼1599년 《헛소동》 《헨리 5세》, 1599∼1600년 《줄리어스 카이사르》 《뜻대로 하세요》 《십이야(夜)》, 1600∼1601년 《햄릿》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1601∼1602년 《토로일러스와 크레시다》, 1602∼1603년 《끝이 좋으면 다 좋아》, 1604∼1605년 《자에는 자로》 《오셀로》, 1605∼1606년 《리어왕》 《맥베스》, 1606∼1607년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1607∼1608년 《코리오레이너스》 《아테네의 타이먼》, 1608∼1609년 《페리클리즈》, 1609∼1610년 《심벨린》, 1610∼1611년 《겨울 이야기》, 1611∼1612년 《폭풍우》, 1612∼1613년 《헨리 8세》 등이다.
이상의 작품 연표에서 나타나듯이 그의 습작기에 쓴 것은 영국사극과 희극이다. 영국사극은 모두 10편을 썼으나 그 중 8편은 중세 후기, 주로 영국·프랑스 양국간의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으로 불리는 두 왕가(王家) 사이의 권력투쟁의 과정을 극화한 것이다. 따라서 집필 연도순과는 관계없이 《리처드 2세》 《헨리 4세 1부·2부》 및 《헨리 5세》를 묶어서 1398∼1420년까지의 4부작으로, 《헨리 6세 1부·2부·3부》 《리처드 3세》를 묶어서 1422∼1485년까지의 4부작으로 각기 생각할 수 있다.
이들 작품을 일괄해서 볼 때, 헨리 7세 및 헨리 8세에 의해 정치적 통일을 위한 기반조성이 이룩되었고,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근세국가로서 크게 도약하는 역사적 시점에서 본 관점이 이들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봉건적 질서가 내부붕괴를 일으키면서 골육상쟁이 유발하는 처참한 피의 역사가 선명하게 표출되어 있고, 유혈과 찬탈의 연쇄적 과정이 젊은 극작가의 눈에 생생하게 비춰지고 있다. 한편, 초기 희극 《실수연발 Comedy of Errors》과 《말괄량이 길들이기 The Taming of the Shrew》는 각기 라틴 희극 및 이탈리아 르네상스 희극에서 내용과 수법을 빌려온 것으로 젊은 극작가의 습작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에서도 이미 자신이 배울 것과 새로 보태야 할 것을 명확하게 하고 있으며, 뒤이을 자신의 희극세계의 구축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1594∼1600년에 걸쳐 창작된 일련의 희극, 《베로나의 두 신사》 《사랑의 헛수고》 《한여름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헛소동》 《뜻대로 하세요》 《십이야(夜)》 등은 흔히 낭만희극이라 불리며, 사랑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서정적 분위기와 재담(才談)·익살·해학 등 희극 고유의 요소를 두루 섭렵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그리고 젊은 남녀 사이의 사랑이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행복한 결말(결혼)에 이르는 낭만희극의 정석(定石)을 보여 주면서도 그는 사랑의 풍요함과 사랑의 병, 그리고 변신(變身)의 능력에서부터 사랑의 변덕스러움·장난, 그 파괴적 힘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 중세에서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의 유럽 문화의 전통에 따르는 것이지만, 이를 작품을 통해 인간성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셰익스피어의 창조적 결과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세계가 확대와 깊이를 더한 것은 역사극과 낭만희극을 쓰고 난 뒤, 비극 작품을 쓰면서부터이다. 대체로 1600∼1608년까지의 이 시기에 그는 대표작인 4대비극을 중심으로 로마 역사에서 소재를 얻은 3편의 로마 사극, 그리고 희극의 형식을 취했으면서도 이전의 정통희극과는 달리 암울한 색조가 짙은 이른바 문제희극(問題喜劇) 3편도 써냈다. 본격적인 비극작품을 쓰기 전에 이미 초기에 쓴 2편의 비극, 즉 《티투스 안드로니쿠스》와 《로미오와 줄리엣》을 썼으나 이 작품의 명성과 인기에도 불구하고 1660년 이후에 쓰인 4대비극을 능가할 수가 없었다.
그의 대표적인 4대 비극 중 가장 먼저 쓴 《햄릿 Hamlet》은 하나의 복수비극으로, 주인공인 왕자의 인간상은 사색과 행동, 진실과 허위, 양심과 결단, 신념과 회의 등의 틈바구니에서 삶을 초극해 보려는 한 인물의 모습이 영원한 수수께끼처럼 제시되고 있다. 두 번째 작품 《오셀로 Othello》는 흑인장군인 주인공의 아내에 대한 애정이 악역 이아고(Iago)의 간계(奸計)에 의해 무참히 허물어지는 과정을 그린 비극이나 심리적 갈등보다는 인간적 신뢰가 돋보이는 작품의 하나이다. 세 번째 작품 《리어왕 King Lear》도 늙은 왕의 세 딸에 대한 애정의 시험이라는 설화적(說話的) 모티프를 바탕으로 깔고 있으나 혈육간의 유대의 파괴가 우주적 질서의 붕괴로 확대되는 과정을 그린 비극이다.
인간성의 선·악의 문제가 이처럼 근원적 차원에서 다뤄진 작품은 좀처럼 찾기 힘들며, 또한 삶이 원초적으로 비극을 내포하고 있음을 조명(照明)한 경우도 드물다. 마지막 작품인 《맥베스 Macbeth》에서도 권력의 야망에 이끌린 한 무장(武將)의 왕위찬탈과 그것이 초래하는 비극적 결말을 볼 수 있다. 여기서도 정치적 욕망의 경위가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영혼의 절대적 붕괴라는 명제를 집중적으로 다뤘기 때문에 주인공 맥베스는 악인이면서도 우리에게 공포와 더불어 공감을 자아내게 해준다.
4대비극은 셰익스피어극의 절정이자 세계문학의 금자탑(金字塔)으로서 이 시기에 씌어진 로마 사극도 비슷하게 비극적 내용을 담고 있다. 《줄리어스 카이사르 Julius Caesar》는 이상주의자 브루투스와 현실정치가 안토니우스의 대결을 통하여 브루투스의 패배에서 얼핏 햄릿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 모든 것을 표출하였다는 의미에서 셰익스피어는 뛰어난 자기완결적(目己完結的)인 작가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의 극자가였던 B.존슨은 “당대뿐 아니라 만세(萬世)를 통해 통용되는 작가”라고 말하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는 뛰어난 시인·극작가로서 인정을 받아 왔다. 그러나 셰익스피어 숭앙(崇仰)이 절정에 도달한 것은 19세기 초 낭만파 시인·비평가들이 그를 재평가함으로써 그의 작품에 대한 해석과 비평도 깊이를 더했다. S.T.콜리지, C.램, W.해즐릿 등이 바로 이에 기여했던 대표적 문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룩해 놓은 낭만적 셰익스피어상(像)은 20세기에 들어와 크게 수정되기에 이르렀으며 학문적·비평적 연구의 큰 성과와 더불어 그를 16세기의 극작가이자 동시에 20세기에 사는(때로는 동시대 작가처럼 보고자 하는) 작가로 보는 경향이 일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작품해석이 다양하게 전개될 뿐 아니라 고전의 ‘살아 있는’ 모델로서 셰익스피어를 대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한편, 작품이 영어로 씌어져 있음에도 셰익스피어가 영국인의 전유물(專有物)이 아니라는 인식은 이미 19세기 이후에 두드러졌다. 세계 각국에서 자국어(自國語)로 번역 출간하여 읽는 셰익스피어에 못지 않게 또한 무대 위에서도 보는 셰익스피어가 세계 곳곳에서 상연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셰익스피어가 한국에 알려진 것은 개화기(開化期) 초에서부터였으나 그 때는 단편적인 소개에 지나지 않았으며, 본격적인 소개는 1923년 현철(玄哲)에 의한 《햄릿》의 완역(完譯) 출판이 시초이다. 1920년대에는 이 밖에도 셰익스피어 소개가 있었으나 모두 단편적이었으며, 1930년대에 와서 극예술협회에 의한 《베니스의 상인》 공연이 있었고, 이것도 법정장면만을 다룬 부분적인 소개였다. 이 밖에 학교극으로서 셰익스피어가 상연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셰익스피어가 소개된 것은 해방 후인 6*25전쟁 이전에 김동석의 《셰익스피어 연구》, 설정식의 《햄릿》 번역이 나왔고, 1950년대에 들어와 각 대학의 셰익스피어 강의가 보편화되었으며, 세계문학출판이 활기를 띠면서부터 학문적 연구·번역·공연 등이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1953년 이후 수년간에 걸친 극단 신협(新協)에 의한 일련의 셰익스피어극 공연은 공연내용과 관객동원이 다같이 수준 이상의 평을 받았으며, 강단에서는 최재서(崔載瑞)의 업적이 크다. 이어, 1960년대에 들어와 셰익스피어 공연은 본격화되었고, 19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 기념행사에서 큰 성과를 올렸다. 이에 앞서 1963년에 한국 셰익스피어협회가 결성되고 회장에 권중휘(權重輝)가 취임했으며, 1964년에는 김재남(金在枏)이 개인 전역(全譯)으로 셰익스피어 전집을 출간했다. 동시에 정음사(正音社)판 셰익스피어 전집이 여러 역자에 의해 출간되었다. 또한, 1968년부터 셰익스피어 협회편으로 그의 주요작품 15편의 주석본(註釋本)이 나와 한국 셰익스피어 학계의 수준을 돋보이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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