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문 - 루소의 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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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11 / 201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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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어지럽다. 혼란스럽다. 사람들은 오늘날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렇게 말한 사람들은 얼마나 바르고 올곧길래. 단지 그렇게 생각한 것 뿐이었다.
에밀을 읽고, 감상문을 써야 했다. 적당히 그를 찬양하고 당신이 옳습니다. 짧게 끝내면 될 일 이었다. 루소를 얕봤다. 그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졸음이 쏟아지는 두께와 지루한 어조부터가 그랬다.
솔직히, 진지하게 읽기 시작한건 아니었다. 그랬는데, 오기가 생겼다. 정말 수면제라도 부어 넣은 듯, 눈꺼풀은 내려왔고 잠의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감상문의 방향은 정해졌다. 비판하기로, 내 얄팍한 지식으로 한 비판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지만.
초기 미국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건방지고 예의가 없어 걱정이 크다.”
웃음이 나올 법만도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는 진지해 질 수 밖에 없다. 어느 세대나 자신의 다음 세대는 그들만 못하다고 , 건방지고, 오냐오냐 받들어져 위아래를 모른다고. 루소나 인디언이나, 요즘의 부모님들이나,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책의 표지에는 ‘인간 교육의 혁명서’-에밀 이라고 써져 있었다. 당연히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가 정말 교육에 혁명을 일으켰다면, 소의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오늘날은 애초에 없었을테니까.
일단, 루소가 전제한 내용에 대해 살펴보자. 에밀은 루소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아이이다. 그에게 루소가 생각하는 ‘옳은 교육’을 시킨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루소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세상에는 변수가 있다는 것. 그가 아무리 훌륭한 이론을 들이대도 에밀에게는 시련이 있을 것이고, 완벽한 인간이 되지 못하게끔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나는 루소가 살던 18세기의 유럽과 21세기의 한국을 비교해보고 싶다. 말하지 않아도 오늘날의 교육을 알 것이다. 반복되는 교육. 나누어진 공교육과 사교육-학교, 학원, 과외....... 에밀이 아무리 ‘교육의 혁명서’라고 외치고 다녀도 현실에 적용할 수 없는 제도가 한국의 곳곳에 심어져 있다. 씁쓸하지만, 에밀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론을 방대한 분량으로 엮어 펼친 루소가 정작 자신의 아이는 고아원에 맡겨 버렸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교과 수업 중에도 들었지만, 루소가 양육의 자격이 없는 부모는 가치가 없다며 자신의 아이조차 고아원에 보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아이를 올바르게 교육할 수 없다는 부모의 입장을 취하고, 인간으로서, 부모로서 행해야 했던 최소한의 의무마저 저버리고 자신의 이론에 심취했던 그를 이해 할 수 없다. 그가 무지한 세상 사람들에게 깨우쳐 주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면, 차라리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나은 ‘혁명’이 아니었을까.
아래부터는 책에 나온 몇 가지 의미심장한 구절을 적고 그 밑에 해석을 다는 식으로 감상문을 구성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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