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전의 전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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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전의 전설
영국군의 측방역습을 격퇴한 제 7기갑사단
롬멜은 진정한 솔선수범을 해왔다. 그는 병사들과 함께 항상 최전선에 머물렀다. 대전차 저지진지가 적 전차에 의해 유린되는 무시무시한 광경이 벌어지고 위기일발의 순간이 닥쳐도 그가 있는 곳에는 어떠한 공황도 발생하지 않았다. 사단장이 스스로 위험한 지역에 꿋꿋하게 서있는데 감히 부하들이 달리 행동할 수 없었다. 인접 부대의 방어선이 적 전차부대에 의해 돌파당했을 때도 롬멜이 있던 방어선만은 굳건하여, 전차들을 후속하려던 영국군 보병부대를 격멸할 수 있었다. 사실 이때 롬멜은 운명의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롬멜은 항상 적의 총탄에 노출되어 있었다. 롬멜의 지휘 기법은 매우 훌륭한 장점을 갖고 있었다. 연합군 지휘관들 대부분이 치열한 격전지에서 수 km 떨어진 곳에 위치했던 반면, 그는 최전방에서 번개같이 상황을 파악하고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지휘했다. 그는 네 가지 조치를 취해 사태를 반전시키는데 성공했다.
① 먼저, 그는 대전차포와 경대공포로 전방 저지선을 구축했다. 이로써 마틸다 전차는 막아내지 못했어도 수 대의 경전차는 제압할 수 있었다.
② 롬멜이 사단 참모들에게 보낸 수차례의 무전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종심상에 포병과 대공포로 구성된 제2저지선을 편성하라고 지시했다. 영국군이 메르카텔과 틸루아에 연한 개활지에서 독일군 진지를 향해 정면 돌파를 시도했을 때, 몇 분 안에 무려 영국군 전차 24대가 괴멸당했다. 이때 이 저지선에 배치된 8.8cm 대공포의 활약이 돋보였다.
③18:00 시가 조금 지난 시각, 2시간 전에 제7기갑사단이 요청한 제1,8비행단의 최초 항공기 편대들이 이 지역에 상공에 도착했다. 이 시점에 이미 영국군의 공세는 저지당했다. 독일군 전투기들은 퇴각하는 적 전차들을 폭격하기 시작했고 20:30분 까지 300회의 슈투카 공세가 실시되었다.
④롬멜은 그사이에 후퇴하는 영국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북부로 진군하던 제25전차연대에 급히 회군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이들은 갑자기 뒤장의 남쪽에서 영국군의 우측방 방호를 위해 투입된 프랑스군 전차부대와 조우했다. 독일군 전차들은 극심한 피해를 입은 치열한 전투 끝에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그 직후 뒤장과 와를뤼 사이에 구축된 영국군 대전차 방어선을 돌파해야 했다. 어둠 속에서 독일군 전차들이 전장에 도착했을 때는 영국군 전차들이 이미 도망쳐버린 후였다. 유명한 아라스 전차전의 승패는 독일군 전차부대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결정 났다.
5월 21일, 제7기갑사단은 서부전역에서 가장 혹독한 피해를 입었다. 피해 규모는 바스 강 도하를 포함해 개전 후 4일 동안 입은 피해를 것과 비슷했다. 피해상황은 사망 89명, 부상 116명, 실종 173명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실종자 중에서 낙오병 90명은 곧 자신의 부대로 복귀했다. 나는 이 것들을 보고 느낀 것이 있었다. 지휘자는 무조건 뒤에 숨어서 지시만 하는 것이 아닌, 병사들과 전방에 함께 하면서 모든 상황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며, 바로바로 즉각 대처를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지휘자라고 생각 되었다. 나 또한 지휘자가 된다면 전방에 병사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생각을 들게 해주었다.
연합군의 시각에서 본 아라스 역습
연합군의 역습작전 계획 실시와 과정을 살펴보면, 독일군 기갑부대의 돌파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한 영국과 프랑스군 지휘부의 무능함에 당황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상황을 역전시킬 절호의 기회가 다시 한번 찾아왔음에도 이를 이용하지 못했다. 독일군 기갑부대가 대서양 해안으로 진격하면 할수록 이들의 노출된 측방은 더욱더 신장되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비선형 전투지휘의 약점은, 독립작전을 수행하는 기갑부대의 쐐기가 서족으로 진출할 때 그들과 후속부대 간에 진공 상태와 같은 간격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기갑부대에 의해 점령된 지역을 확보하고 평정하는 데 소수의 차량화보병사단은 역부족이었고, 이들보다 훨씬 후방에 있던 순수 보병사단들은 며칠 동안 걸어야 그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아라스 일대에서는 폭40km 정도의 회랑이 형성되었고 그 양측방으로 협공이 가능했다. 윈스턴 처칠은 이미 5월 19일에 상황을 파악하고서 가믈랭에게 전보를 보냈는데, 그는 독일군의 기갑부대를 거북이의 머리에 비유했다. “거북이가 등딱지 밖으로 머리를 길게 내놓고 있군요. 이들의 몸통이 우리의 연합방어선까지 도달하려면 며칠은 더 있어야 할 거요. 지금 이 길게 뻗은 대가릴를 남북 양쪽에서 강력하게 타격한다면 놀라운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포위를 역포위’하는 방책을 구사한다면 패전의 위기에 빠진 연합군이 손쉽게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만일 적시에 공자인 독일군의 약점을 이용했다면 오히려 독일군이 ‘뒹케르크’에 빠질 가능성이 컸다. 독일군의 병참선이 차단된다면 기갑부대는 대서양 해안에서 진퇴양난에 처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연합군의 약점을 이미 간파한 힐더 장군은 그 정도의 위험은 충분히 감수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연합군의 지도부가 역습은커녕 그것을 위한 작전술적 차원의 대부대를 신속하고 충분히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시도가 두 차례 시행된 적이 있었는데, 한 번은 프랑스군, 다른 한번은 영국군이 시도했다. 아이언사이드는 배강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의도를 상세히 알려주는 한편, 비요트 장군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대해서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아라스 북부의 랑스에 있는 자신의 사령부에서 제 1군 사령관 블랑샤르와 함께 비요트 장군을 만났다. 체구가 대단히 컸던 아이언사이드는, 그가 나중에 인정했듯이, 자제력을 잃고 비요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결국 비요트는 역습잔전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실 비요트, 적어도 블랑샤르는 조국의 운명이 걸린 이 연합작전을 지휘할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제5군단장 알트메어 장군에게 작전의 전권을 위임했다. 그러나 그도 이 임무를 부여받았을 때 사기가 떨어질 대로 어져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영국 원정군에 파견되어있던 프랑스 제1군의 연락장교 보트랭 소령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녹초가 된 알트메어 장군은 상심한 표정으로 내 야전침대에 털썩 주저 안더니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가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자신의 부대는 이미 끝장났고, 이 명령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자신이 그 책임을 지고 대대 선두에 서서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군단을 더 이상 희생시키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이미 병력 절반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또 하나의 사건은 의사소통 과정에서 생긴 오해였다. 아이언사이드는 무슨 일이 있어도 ‘5월 2일’에 공격을 실시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블랑샤르는 알트메어에게 하달한 명령문에 5월 21일부터 공세를 시직한다고 기제했다. 그래서 알트메어는 자신의 군단이 5월22일에나 준비가 완료될 것이라고 상부에 보고했다. 리에 대령이 썼듯이 한편의 드라마같은 프랑스-영국군 연합작전의 실패는 이 몇 마디 단어 때문이었다. 그 결과 영국군은 5월21일에 거의 단독으로 공격작전에 돌입해야 했다. 오해의 사슬을 거기서 끝나지 않고 프랭클린이 전술적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작전술 차원의 승리를 이루려 했던 아이언사이드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자신의 측방에서 프랑스군이 병진 대형으로 공격작전을 실시하게 될 것이라는 통보도 받지 못했다. 이에 그는 자신의 모든 전력을 집중해 역습에 투입하지 않고 제 5,50보병사단의 주력을 아라스 일대에 구축된 방어진지에 보내 순수 방어작전을 시행하고, 일부는 후방에 예비대로 배비하기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연합군의 사활이 걸린 결정적인 전투인 역습작전에는 남겨진 단 2개의 증강된 보병대대만이 참가하게 되었다. 한편 이 작전을 위해 진군한 영국군 2개 전차대대마저도 다수의 장비들이 갑자기 고장나느 바람에 전력이 크게 부족했다. 전차부대 내에서분만 아니라 보병부대들과도 무전 소통이 불가능했다. 특히 우익에 위치했던 부대들은 부대 이동을 개시하자마자 큰 혼란에 빠졌다. 로열 전차연대의 제7대대는 방향을 잃고 엉뚱한 도로로 진출했고 보병과의 연락마저 두절되었다. 결국 아라스에서의 역습은 영국군의 총 88대의 전차들 중 고작 28대만이 온전히 철수하는 재앙으로 끝났다.
나는 이 사례를 보면서 군인에게는 정말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전시에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되는 것이다. 철수 또는 진군 작전을 듣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말이 안 되는 것이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롬멜의 참신한 리더정신을 배울 수 있게 되었고, 전쟁시에는 군사력만이 승패를 가리는게 아니라 의사소통도 충분히 승패를 좌우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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