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승 추 삼제秋三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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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희승
Ⅰ. 작가의 생애
일석(一石)은 1896년 6월 9일 경기도 광주군 의곡면 포일리 (현재의 의왕시 포일동) 양지편 마을에서 종식씨(宗植氏)의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일석은 5살 때에 모친을 따라 상경, 천자문을 배우고 부친에게서는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배웠다. 그리고 사숙에서 5년간 한문을 수학, 경서가지 마쳤다.
1908년(13살)에 결혼을 하고, 곧 상경하여 관립 한성외국어학교 영어부에 입학하여 신익화 정구영 등과 함께 공부하였다. 졸업 후 경성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하였다가 외국어학교에서 온 일어를 모르는 학생들에게 차별대우가 심해 3학년 1학기 때 6~7명의 학생들과 함께 자퇴하였다. 1912년 4월, 17세 되던 해 양정의숙 야간 전문학교 법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1913년 10월 양정의숙이 총독부 교육령에 다라 양정고등보통학교로 개편되는 바람에 동교를 자퇴하였다. 공부할 길도 막히고 가세도 기울어 전 가족이 고향으로 낙향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거들며 지내는 중, 휘문의숙에 다니던 친척이 내려와 교과서들을 빌려보게 되었다. 그 책들 중의 하나가 교재용 프린트물인 주시경의 《국어문법》이었다. 이 것이 계기가 되어 국어학을 해야겠다는 이념에 19세 되던 초봄 무작정 상경하여 학비를 벌면서 공부를 했다.
사립 중앙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방직주식회사에 서기로 취직해 학비 걱정을 조금은 덜게 되자, 그는 더욱 공부에 박차를 가해 30세 되던 1925년에는 경성제국대학 예과부 문과에 입학하였다. 5년후 1930년 졸업, 19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가 되고, 같은 해 조선어학회 간사 및 한글학회 이사에 취임하였다. 1940년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연구하였으며,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관련, 검거되어 일본이 망할 때까지 복역하고 8·15광복 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에 취임하였다. 1952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부원장에 취임하고 1954년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에 선임되었다.
195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이 되고, 1960년 정년퇴임 후에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되었으며 1963년 동아일보사 사장에 취임하였다. 1965년 대구대학 대학원장에 취임하였다가 1969년 성균관대학교로 옮겨 교수·대학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8년 학술원 부회장에 선임되고 1971년 단국대학교동양학 연구소장으로 추대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국민장을 받았고 학술원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 《국어대사전》《역대 국문학정화》《국문학 연구초》 등이 있고, 시집으로 《박꽃》《심장의 파편》, 수필집에 《벙어리 냉가슴》《소경의 잠꼬대》 등이 있다.
Ⅱ.현대시조
1. 현대시조의 특징
① 제목이 있음 : 고시조에서는 연시조의 경우 불과 몇몇 작품에만 제목이 붙어 있을 뿐 나머지 시조들은 제목이 없다. 그래서 통상 초장 몇 구절을 제목 삼아 부르고 있다. 그러나 현대시조는 내용을 축약(縮約)·암시할 수 있는 제목을 반드시 붙인다. 하나의 작품으로서 존중하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② 시형(詩形)의 배열을 의식함 : 고시조는 장(章)의 구분도 잘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각 장을 연달아 기술하였다. 그러나 현대시조는 그 배열이 연시조의 경우에 각 수를 따로 처리하며 초·중·종장을 구별해 씀으로써 시각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또한 장별로 배치하는 종래의 방법(장별배행)을 바꿔 구별로 배치하는 방법(구별배행)도 새로 창안해 냈다.
③ 연시조가 많음 : 고시조는 대부분이 평시조로 되어 있으나, 현대시조는 연시조가 많다. 그 이유는 현대의 복잡한 문명이나 깊은 사상을 드러내기에는 3장6구 45자 내외의 짧은 언어형식으로는 힘에 벅차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④ 낙구 형식의 처리 : 고시조는 대체로 종장의 첫머리에 허사(虛辭)인 어즈버, 아마도, 아희야, 하노라 등을 사용하였으나 현대시조는 낙구를 쓰지 않는다.
⑤ 율격과 표현 : 고시조의 음수율 존중에 얽매이지 않고 낱말이 지니는 의미나 호흡에서도 율격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음성상징어나 음상을 이용한 표현도 즐겨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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