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아龍兒박용철 순수와 오만을 혼돈하였던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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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순수와 오만을 혼돈하였던 천재
용아(龍兒) 박용철
1. 생애 - 정상주의 내지 수재의식 , 진로 변경에 따른 각오
용아 박용철(1904-1938)은 전남의 여유 있는 집안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4살 때 한자를 익혔고, 7살 때는 사촌누이가 한글을 가르쳐 주자 제자리에서 깨치고는 곧 신소설들을 읽어낸 수재였다. 『박용철 전집』말미에 붙인 박용철 아버님의 말.
총명하였고 학교에서도 정상급의 성적을 얻는 등 수재로서의 면모를 보였으며 특히 수리에 소질을 보였다. 배재고등보통학교에 다닐 때는 수학 선생님이 그의 질문을 두려워할 만큼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정상주의 내지 수재의식은 그의 일생에 두고 다른 사람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정신 성향을 빚어낸다. 즉, 시에 있어서도 최상의 성과를 올리기를 기했을 공산을 가지는 것이다.
그의 생애에서 또 하나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진로 변경에 따른 시에 대한 그의 각오이다. 본래 박용철은 수학 특히 기하에 흥미와 재능을 가진 이공계 지망 학도였다. 그런 그가 문학을 하게 되는 동기는 동경 유학 시절 아오야마 학원에서 만나 절친한 사이가 된 김영랑으로 알려져 있다. 문과로 전공이 바뀌고 난 다음 그는 비상한 열정과 각오로 시문학을 파고 든다.
일본에서 공부를 계속하다가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이내 자퇴한다. 16세에 결혼하였으나 부인에게 정을 붙이지 못하고 1929년 이혼하고 1931년 누이동생의 친구인 임정희와 재혼한다. 첫째부인에게 애정이 없었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것이 용아의 시세계에 있어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였으나, 재혼 이후의 문학작품을 보면 더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였고, 연가도 몇 편 수록되어 있다.
박용철이 등장한 1930년대는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던 사회상과 조응하여 한국 현대문학사에 있어서 프로 문학이 퇴조하고 시대의 중심사상이 모색되던 주조 탐색의 시기였다. 이때는 주로 새로운 문학론과 비평이 활발하게 시도되고 상호각축을 벌이는 양상을 낳는다. 김기림을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 시론, 임화를 중심으로 한 리얼리즘 시론, 박용철을 중심으로 한 낭만주의 시론 혹은 순수 시론이 그 예가 된다. 박용철은 시문학파의 주춧돌을 놓으며 시란 체험이 절정에 달한 순간을 최고의 언어로 표현한 것 『박용철 전집-평론집』, 깊은샘, 2004, p87.
이라고 정의하고 시를 쓸 때 예술성 이외의 것은 불순한 요소로 간주하면서도 기교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앞세웠다.
1930년을 전후로 <프로>문학에 대항하여 순수시 운동을 전개하면서 1930년 3월에 <<시문학>>을 발간하였고 이듬해인 1931년, 이동윤과 더불어 <<문예월간>>을 간행하여 해외문학을 소개하고 번역 작품을 수록하였다. 1933년 소형 순문예지 <<문학>>과 극예술연구회의 일원으로서 <<극예술>>을 자비로 발간하였다. 8년의 작품 활동 기간 동안 창작시 74편과 번역시 385편을 남기고, 1938년 숙환인 후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1930년 3월에 창간된 <<시문학>>지를 통해 문단에 등단한 이후, 8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비평가로서, 시인으로서, 번역가로서, 문예지 편집인으로서 한국 현대 문학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문학사에 끼친 그의 발자취는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1930년대 벽두 순수시 전문지<시문학>을 창간하고 정지용, 김영랑, 변영로, 신석정 등을 그 동인으로 맞아들임으로써 격조 높은 순수시의 집단이 형성되는 길을 열었다는 점. 둘째, 괴테. 실러. 릴케 등 독일계 시인들의 작품 및 키이츠. 테니슨. 브라우닝. 예이츠 등 영미계 시인들의 작품을 광범위에 걸쳐 수용, 소화하여 한국 근대시의 시야를 넓히는 데 공헌하였다는 점. 셋째, <시문학>을 비롯하여, <문예월간>,<문학> 등 순수 문예지를 발간하여 1930년대의 시인과 작가들에게 작품 발표의 무대를 제공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2. 박용철의 시론
1) 전기 시론 - 존재의 시학
참고문헌
*참고문헌*
『우리시대 시문학의 공간적 위상』,오늘의 문학사, 2007, 최원규, p274~281
『20세기 한국 시론 1』,글누림, 2006, 한국현대시학회, p83~104
『탄생 100주년 작가와 한국 문학의 재조명』, 푸른사상, 2005, 김봉군 외, p111~130
『한국 현대 시인 연구』,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김용직, p78~116
『한국 현대 시론사』, 고려원, 1993, 이승훈, p69~80
『시문학파 연구』,민족문화사, 1992, 유승우, p101~119
"박용철 시의 공간의식 연구", 1990, 김경복
박용철 시론 연구", 2000, 孫光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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