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작품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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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들어가면서…
1. 현진건의 생애
1900년 경북 대구 출생. 아호는 빙허.
1912년 일본 동경 성성 중학교 입학.
1915년 이순득과 결혼
1917년 동경 성성 중학교 졸업. 동경 독일어 전수 학원 이수 후 귀국, 이상화 이상백 백기 만등과 함께 작문지 『거화』 시도.
1918년 중국 상해에서 독립 운동을 하고 있던 형을 찾아가 호강대학 독일어 전문부 입학.
1919년 상해에서 귀국.
1920년 『개벽』 11월 호에 처녀작 단편「희생화」 발표. 두 번째 작품인 「빈처」를
발표하여 문단의 성가를 얻음.
1921년 홍사용나도향박종화박영희 등과 함께 『백조』동인에 참가.
1922년 이상화를 『백조』동인으로 추천. 『시대일보』입사. 단편「타락자」,「유린」 발표
1923년 육당 최남선 주재의 『동명』 편집 동인. 단편 「할머니의 죽음」발표.
1926년 단편「고향(원제: 그의 얼굴)」발표, 단편집 『조선의 얼굴』을 「글벗집」에서 발행.
1923년 『동아일보』 사회부장 재직시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사진에 서
일장기를 삭제하여 보도한 사건으로 구속 기소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
1937년 출옥. 『동아일보』 사회부장직을 사임하고 언론계를 떠남.
1939년 장편『적도』을 「동아일보」에 연재. 이어 『무영탑』연재.
1940년 장편 『적도』출간. 장편 『무영탑』완성.
장편『흑치상지』를 『동아일보』에 연 재.
1942년 장편 『무영탑』출간
1943년 실직 이후 폐결핵이 악화되어 음력 3월 21일에 사망.
2. 시대배경
1910년부터 시작된 일본이 토지조사를 통해 국토를 수탈
▽
우리 민족의 경제적 몰락과 궁핍화
▽
1919년 3·1운동이 실패로 끝남
▽
일본의 ‘문화 통치’로 전환
(친일파를 육성하여 민족분열과 경제 수탈 및 민족 정신을 말살하고자 함)
▽
<조선 일보>와 <동아 일보>가 창간되고 <창조>, <백조>, <개벽> 등동인지와 종합지가 간행되어 문학의 저변이 확대되었고 전문 문학인의 등장으로 문학적 기반이 확립됨
*
(목적은 친일파를 육성하여 민족분열과 경제 수탈 및 민족 정신을 말살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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