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칸트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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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저는 플라톤 칸트 아리스토텔레스중 아리스토텔레스의 관해서 쓰기로 정했습니다. 그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제가 생각하는 미학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
먼저 모방에 관한 관점을 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마음에 듭니다. 교수님이 주신 자료를 보면 ‘모방은 있는 그대로의 copy가아니라 존재하는 것보다 더욱 추하거나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란 말이 나옵니다.
저는 먼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란 말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모방을 하지 않고는 창조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모방의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드라마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의 미적 가치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핵심적 요소입니다. 미리 말하자면, 모방을 정확하게 번역하기는 힘이듭니다. 모방의 의미는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예술적인 표현행위를 보고 현재 표현되고 있는 것을 자기의 이전 경험과 연관시켜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술로부터 우리가 얻는 즐거움은 우리의 인식 능력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인지는 인식의 한기능입니다. 우리의 지식은 예술이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 안에 드러내주는 것에 의해서 강화되고 확장됩니다. 즉 예술은 우리의 경험과 의식을 넓혀주며 우리를 보다 인간답게 만들어 줍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모방과 모사의 구분이d입니다.
모방은 책에서는 모사로 해석하였는데, 모방과 모상은 다릅니다. 모방은 인간의 모양을 그리거나, 한 사람이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인 체 가장하는 경우에 쓰일 수 있는데, 관객으로 하여금 모방된 사람을 상기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사는 동일한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보다 정확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그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만들어진 것이라는 느낌을 못 갖게 함으로써 그 모사가 진짜라고 믿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생각을 따르자면, 막대기나 알파벳 철자는 소크라테스를 결코 ‘모방’할 수 없고 소크라테스를 ‘표상’할 뿐이다. 오이디푸스의 ‘모사’는 복제인간처럼 모든 측면에서 소크라테스와 동일할 것이다. 모방은 유사성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관객은 예술 작품이 의도하는 경험 속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나 관객이 알아차릴 정도의 차이는 충분히 남아 있습니다. 예술은 예술가와 관객과 예술 작품이라는 세 가지 방식의 관계를 일관되게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창조적인 욕구에 따라 나의 조각과 나의 음악 혹은 나의 시를 만들어내며, 또한 그것들은 당신과 관련됩니다. 이러한 작품들에 대한 당신의 반응은 그것을 당시 자신과 나에게 다시 관련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 연관성은 확실하고 본질적입니다. 모방은 모든 예술이 역설적이기를 요구합니다. 어떤 예술도 텅 빈 공간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관객이 항상 있어야 하고, 관객이 없다면(비록 관객이 예술가 자신인 경우에도) 예술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특히 드라마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창작자는 관객으로 하여금 실재를 모방하는 공연에 참여해서 결국은 대리 경험이긴 하지만 실재 자체에 참여하도록 이끕니다. 실재 세계를 관찰하는 과학자는 주관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재가 아닌) 드라마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그럴 듯한 대사에 속아 넘어가고 교묘하게 조정당하여 주관적으로 개입하게 되면서 자발적으로 드라마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그들은 역설적으로 극작가와 배우들이 의도한 방식이나 혹은 그와 다른 방식으로 조정되면서 개입하게 됩니다.
이렇게 모방에 관한 설명은 끝을 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에 대해 고찰해 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분원리에 의하면 모방의 매재, 대상, 양식에 의거합니다. 이들에게 공통되는 요소는 모방의 매재인 소리이며, 이는 율동(rhythm), 언어, 해음(tune)의 셋으로 이루어지며, 이 셋이 어떻게 결합되느냐에 따라 여러 분야로 분류됩니다. 율동, 언어, 해음이라는 세 요소는 전부 시간적 계기를 가지고 있어 시간예술을 형성하여 회화나 조각과 같은 공간미술과 구별됩니다.시(창작예술)와 학문을 구별하는 것은 운율의 유무가 아니라 모방의 유무에 있습니다. 또한, 모방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우며, 인간이 모방의 작품을 즐기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장합니다. 실재세계에서는 쳐다보기가 괴로운 것도 그것의 예술적 재현 물들은 우리가 보면서 즐거워 할 수 있다는 점을 그는 지적합니다. Poetics 1148 a 10-19
그러나 그는 이 사실에 대한 설명, 예를 들어 그림 속의 사람이 예컨대 소크라테스와 같이 내가 아는 사람임을 알아보는 순수 지적인 쾌락에서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가운데 이러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하나의 예술을 건설할 수 있을 정도는 못 됩니다. 사실상 그것은 실제로 무관합니다. 그는 예술적 모방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상태보다 더 아름답게 혹은 덜 아름답게 나타낼 수 있는 그대로의 상태보다 더 아름답게 혹은 덜 아름답게 나타낼 수 있는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또한 사물이 그렇게 될 수 있는 바의 상태 및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상태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방은 스스로를 보편적, 전형적, 필연적인 사물들의 특징으로 제한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시학] 1448a1, 1451b27, 1460b13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실재를 모방한다는 명제를 고수하고 있었지만, 그에게 있어 모방이란 충실한 복사의 의미가 아니라 실재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예술가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실재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적 ‘모방’은 실상 제의 적인 의미와 소크라테스적 의미, 이 두 가지를 융합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 개념을 조각과 연극 이외에 음악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모방을 저는 모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학 오디세이에서 나오는 페이디아스의 아테네 여신상을 두고 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의 담화를 인용하자면 플라톤은 왜 신상의 머리를 크게 만들었냐고 말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크게 만들은 건 아래서 쳐다봤을 때 머리가 작아 보이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말을 합니다. 이 담화만 보더라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적 쾌락을 느끼는데 초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술이란 그 작품을 봤을 때 미적쾌락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방과 표절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모방이란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현재 존하는 것을 더 추하게나 더 아름답게 만드는 작업을 말하는 것이지 남의 작품을 배끼는 표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수님이 주신 프린트를 보면 ‘훌륭한 모방이란 대상의 외적인 likeness가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제게 예술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분야가 회화 쪽 인지라 어떤 그림이 훌륭한 모방인지 생각해 봤습니다. 그때 생각하는 그림이 있었는데 바로 레오나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가 떠올랐습니다. 레오나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는 모나리자라는 여자의 초상화로 알고 있습니다. 모나리자를 보면 일반 초상화와는 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느낌을 주기 때문에 모나리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또 모나리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대상의 본질을 잘 드러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미학의 주요 요소가 된 모방이란 원래 (1)비 실재적이며 (2) 실재 대상들과 닮은 대상들의 창조였습니다. 이중에서 첫 번째 요소가 보다 본질적이었습니다. 이것은 플라톤의 미학적 모방에 관한 견해였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 와서는 강조점이 이동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시와 시각예술의 본질은 그것들이 문자 그대로 ‘모방적’이라는 점, 즉 실재를 재 생산한다는 점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제공하는 만족이 이러한 작품에 재생된 실재를 지각하는, 듣는이나 보는 이에 의거한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술들을 미메시스적 행위라는 하나의 부류로 통합하면서 해결하지 못한 점은:
(1) 모방이 그에게 있어 예술의 유일한 원천이며 목적이었는지의 여부
(2) 그의 미메시스 원리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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