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아시아 국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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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경제는 2001년 경제성장률이 1.2%, 2002년엔 0.7%에 머물 정도로 상당히 정체돼 있다. 1인당 국민소득도 1970년대 고도성장기의 2만6000달러에서 최근 8430달러로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사우디 왕정은 최근 국내외의 도전과 압력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과격 이슬람 세력의 확산 원인을 아랍 국가들의 부패와 비민주화 등 자체 문제로 보고 있고, 왕가가 왕권을 보호하기 위해 오히려 과격 테러세력의 해외활동을 지원하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과격 이슬람주의자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아랍 국가들이 민주체제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첫째 대상으로 사우디 왕정을 꼽는다. 지금 사우디에는 왕정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개혁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사우디의 발전 방향과 방법을 둘러싸고 서로 상반된 입장에서 왕정에 개혁을 요구하고 있으며, 왕정 내부에서도 두 가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우디인의 반미 감정과 왕정에 대한 도전도 강해지고 있다. 미국이 사우디 왕정에 민주화를 강요할수록 왕정의 권위는 더욱 약화되는 반면, 이슬람법 샤리아에 맞는 통치를 왕정에 요구하고 있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영향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런 추세 때문에 지금 사우디 왕정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10년 후의 사우디
사우디의 파드(Fahd bin Abdulaziz Al Saud) 국왕은 사망하고 파드 국왕의 이복동생인 알답라가 국왕으로 즉위한다. 압달라 국왕은 前 파드 국왕 재임시에도 반미 노선을 취해왔는데 실권을 잡게 되자 그동안 전통적 친미 관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반미 노선을 추구하려 한다. 수다이리 계열 왕자들의 알카에다 연관설로 왕가가 왕권을 보호하기 위해 과격 테러세력의 해외활동을 지원하는 것으로 의심해오던 미국은 아랍 국가들이 민주체제로 전환돼야 한다면 사우디 왕정을 개혁하려 하며 엄청난 대외적 압력을 행사한다. 사우디와 미국 양국 관계는 악화되는 차원을 넘어서고 사우디 민중들도 미국에 대해 심한 반감을 갖게 된다.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국이었던 사우디는 더 이상 미국의 우방이 아닌 미국에게 ‘이란’과 같은 악의 축으로 전락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10여년 전부터 불기 시작했던 왕정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사우디에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취임 초기 개혁주의 자들에 동조하던 압둘라 왕세자도 왕권을 위협할 정도의 개혁의 바람이 불자 개혁에 적대적 노선을 편다. 사우디 사회 대부분에서 왕족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구조까지 흔들리지 않았으나 인터넷과 위성방송 등의 영향으로 사우디 내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진보적 지식인과 민중들의 운동은 점점 더 확산된다. 이에 왕정은 이전부터 이해관계가 있던 이슬람 과격 원리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진보적 지식인과 민중들에 대해 가혹한 탄압을 가행한다. 하지만 운동은 인터넷을 타고 진보적 지식인과 학생 민중들에게 더욱 더 확산되고 수도 리야드에 모여서 왕정 개혁에 대한 대규모 시위를 벌인다. 왕정은 이때 가혹한 탄압을 하면서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함으로서 중동의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파장은 확산된다. 특히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사우디 아라비아의 개방을 바라던 서구 세계는 이 파장을 더욱 확산시키고 여론을 증폭시킨다. 중동의 대표적인 Rentier states인 사우디는 원유가 급감함에 따라 사우디 국내의 경제적 상황도 악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 사건과 맞물려 내부와 외부의 요구에 따라 점진적인 개방을 시행한다. 그동안 사우디는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세계무역기구(WTO)에도 가입하지 못할 정도로 무역 및 투자 장벽이 높았지만 점진적인 개방정책이 성공을 거둠에 따라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눈 앞에 두게 된다. 그 동안 국내 경제의 큰 문제중 하나였던 공기업의 민영화도 거의 이루어진다.
또 직업 윤리의 실종으로 높은 실업률을 보이던 사우디의 젊은 층도 사우디 정부의 노동력의 ‘자국화(Saudization)’ 정책에 따라 점진적인 개선을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높은 실업난과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청년들은 3D업종을 기피해 큰 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한다. 사우디는 서구에 대한 경제적 개방과 더불어 뒤이어 검열을 거친 문화적 개방을 실시한다. 서구의 문화가 개방됨에 따라 사우디의 젊은 층은 급속한 서구화의 물결에 휩싸인다. 하지만 서구식 민주주의 체제를 받아들인 사우디에서 이에 반하여 와화비즘을 옹호하는 이슬람주의가 대두된다. 이 와화비즘을 옹호하는 이슬람주의로 인하여 정부군과 테러단체간의 전투가 매일 이어지게 된다. 또 경제 개방으로 인해 친미에서 벗어나 반비 노선을 취하려 했던 압달라도 많은 부분 미국과 경제적 이해 관계 때문에 다시 친미로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이런 와화비즘을 옹호하는 소수의 과격한 이슬람주의는 더욱 심화된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이런 어려움속에서도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 개혁에 대한 열망 때문에 개혁을 지지하고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점진적 개혁이 꾸준이 시행된다.
아시아에 한류 열풍을 주도했던 양대 드라마 <가을동화>와 <겨울연가>등의 한국 드라마가 2004년경 사우디 아라비아 UAE 쿠웨이트 요르단 등 중동 지역 전역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중동 최대 방송사 이집트국영 방송 ERTU를 통해 방영된 것을 시작으로 한국 드라마나 노래가 꾸준한 인기를 얻게 된다. 이 인기를 타고 한류가 자연스럽게 사우디 아라비아에 들어오게 되고 사우디 아라비아와 한국 간의 국가적 교류나 기업적 굘 뿐만 아니라 민간적 교류도 활성화되게 된다.
[이란]
1979년 1월의 왕정붕괴와 동년4월 이슬람공화국 수립이후 이란은 사회전반에 걸쳐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었다. 호메이니를 정점으로 하는 성직자들이 주도권을 쥔 혁명정부는 과거 팔레비 왕정이 추진했던 서구화 정책을 비난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이슬람 화를 표방하였다.
이슬람 혁명으로 신정정치체제를 확립한 이란은 1997년 개혁파인 무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등장한 이래 개혁과 변하의 바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타미는 대외적으로는 ‘문명간의 대화’를, 대내적으로는 ‘이슬람 시민사회의 부활’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 2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보수파가 개혁파 후보들의 출마자격을 무더기로 박탈하고 의회를 장악했다. 의회를 통한 온건개혁의 씨앗마저 거둬들여진 형국이다.
세계에 유례없는 ‘이슬람 경제체제’의 확립을 표방하고 1979년 이슬람헌법을 통해 그 이념과 기본구조를 제시했다. 이슬람경제체제의 핵심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 3의 경제체제로서, 신의 계율에 따라 인간 상호간의 평등을 전제로 건설되는 사회를 목표로 한다. 즉, 이슬람 경제체제는 개인의 사유재산권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그 폐단으로 나타날 수 있는 부의 집중현상을 근원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것이 목표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운영과정에 있어서는 현대 경제학과 코란의 계율을 조화시켜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그 특색이다. 이를 위해 이란 정부는 1979년 6월부터 7월에 걸쳐 민간산업은행 및 주요산업의 국유화조치를 단행하였다.
이슬람 혁명으로 인해 경직된 이란의 사회, 문화는 1997년 개혁파의 전면적 등장으로 균열이 발생하게 됐다. 이슬람혁명 이전 이란은 팔레비 왕조(1925~79년)의 서구화 정책 추진으로 이슬람 시각에서 보면 탈이슬람화된 세속적인 사회였다. 이 때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기억하는 많은 이란인들은 하타미를 필두로 한 개혁파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였다. 특히, 하타미는 여성문제에 있어 전향적인 자세를 취했는데, 여성에 대한 참정권 부여나 교육정책, 가족법·이혼법 등 다른 이슬람권 국가에서 볼 수 없었던 정책은 서구 모방형 근대화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10년 후의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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