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사상 관념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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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중국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하 ,은, 주 삼대로부터 국왕을 정점으로 중앙집권적인 국가형태를 유지해왔다. 국왕을 보좌하는 여러 관료가 있고, 관직의 이름이 있었다. 이를 통칭하여 신이라고 불렀다. 『시경』 「소아·북산」에 따르면 ‘땅 위의 모든 존재는 王의 臣이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 이는 王 이하 평민, 노비, 천민을 모두 아우르는 계급구조의 통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광의로 봤을 때의 臣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협의의 臣은 주군을 지근거리에서 섬기고 명령을 수행하는 보좌진을 의미한다. 『고문자고림』에서는 신의 다양한 고대문자를 볼 수 있다. 그러한 예로『예기』「예운」 편에서는 ‘공실에서 벼슬한 사람’을 臣이라 한다. 『고문자고림』에는 눈 ‘目’의 다른 형태로 땅을 향해 똑바로 서있는 눈의 변형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고개 숙여 굴종을 뜻’하는 글자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빈천한 남녀를 낮춰 부르는 호칭으로도, 군주를 섬기는 모든 사람의 뜻으로도 쓰였다. 대체적으로 복종하고 있는 노예 상태를 의미하는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설문해자』에도 이러한 뜻이 반영된다. ‘臣은 끌려감이다. 그래서 군주를 섬긴다는 의미다’라고 하여 굴종하여 복종하고 있는 형상을 나타낸다. 갑골문 복사에서는 ‘점을 쳐 묻습니다. 小臣이 중인에게 영을 내린다.’는 내용이 나타난다. 후대의 ‘小臣’이라는 말의 최초의 원형인 이 말은 위로 군왕의 명을 받아 중인에게 영을 내리는 존재를 뜻한다. 관료체계를 갖춘 국가운영이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사기』 「은본기」는 은나라 신하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러 신하들에게 과거 현명했던 신하들을 기억하라는 충고로서 모범적 사례를 보여주곤 한다. 특히 「은본기」에서 ‘이윤은 태정의 아들 태갑을 세워 왕으로 삼았으나 변변치 못하자’, 그를 동궁으로 쫒아낼 정도로 막강 권력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이것은 은나라 초기 군권이 강대하지 못했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위로는 왕이 있고 아래로는 섬기는 많은 신들이 존재했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臣의 또 다른 어원은 서주시대에서 찾을 수 있다. 서주 귀족들은 농업이나 수공업에 종사하는 노예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당시 성가한 노예를 臣이라 불렀는데, 家로서 그 숫자를 계산했다. 이러한 사실 또한 위를 섬기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같은 관념이라 볼 수 있다.
民의 어원은 후기 갑골문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은나라 중기 이전의 원형은 찾아 볼 수가 없고, 그보다 조금 늦은 금문에 ‘民’이라는 글자가 등장한다.
民의 고문자 해석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고문자고림』에 따르면, 하나는 임의광 등의 견해로서 금문의 형상이 풀의 싹이라고 보아 무성하게 많다는 뜻에서 인민을 가리키게 되었다고 한다는 의견이. 후에, 그 음이 바뀌면서 ‘백성 氓’이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다른 하나의 견해는 상승조 등의 주장으로 고문자 ‘民’은 모두 예리한 도구로 왼쪽 눈을 찔러 멀게 하여 도망을 못 가게하고, 民이 노예의 본질을 상실한 후 ‘亡’이란 글자를 붙여 새로운 ‘氓’ 글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노예로 삼은 것에 대한 ‘지사자’라고 주장한다. 『상형자전』에서의 모양이 손으로 잡는 모양이며, 금문의 글자는 동공이 빠진 모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두고 여러 학설이 대립을 해왔다. 첫째로 이를 사람의 나체로 보는 입장이다. 어미 ‘母’와 유사한 글자로 보고, 발에 기계를 찬 형상으로 이해한다. 청나라 때 육차운의 『동계섬지』를 보면, 서부의 묘족이 한족을 노예로 삼았을 때 족쇄를 채워 달아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民의 금문자형이 옷도 입지 않고 발에 기계를 찼다는 것이 이 비유와 닮아서 노예로 해석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후에 인민을 부르는 용어로 발전했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꼬챙이로 눈을 찌르는 형상으로 보는 것이다. 첫 번째 입장보다 널리 알려진 입장으로서, 사광휘는 ‘民’ 부분에 고대 노예주가 노예들의 모반을 없애고자 차꼬를 차거나, 목을 묶거나, 발을 자르는 등의 조치를 했다 한다. 노예의 상형으로 보는 입장으로, 나중에 ‘民’이 노예를 포함하는 평민을 지칭하는 말로 발전했다는 것을 말한다.
세 번째는 주나라 경전을 중심으로 해석하여 이주백성을 뜻하는 ‘萌’으로 보는 경향이다. 『설문해자』가 대표적으로, ‘民은 萌의 무리이다. 고문의 상형에 따른 것이다.’고 말한다. ‘民’을 일종의 지사문자로 보는 견해로, 지사한 고문의 상형은 위에서 말한 번식, 양욱의 모를 말한다고 바라봅니다. 『광야』에서 ‘民은 氓’이라하면서, 토착민을 民이라 하고, 외부에서 온 사람을 氓이라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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