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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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전남 강진군 도암면. 조선 실학의 대가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18년간의 유배생활 중 10년을 머문 곳으로 초가집이었던 것을 기와로 복원하였다.
위치 : 전남 강진군(康津郡) 도암면(道岩面) 만덕리(萬德里)
유적의 중심이 되는 다산초당(茶山草堂)은 5칸 도리단층의 기와집으로, 측면 2칸은 뒤가 거실이며, 앞이 마루로 된 소박한 남향집인데, 처마밑에는 원판이 없어져 뒤에 완당(阮堂)의 글씨를 집자(集字)한 <茶山草堂>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만덕산(萬德山)에 자리잡고 강진만을 한눈으로 굽어보는 이 다산초당은 원래는 귤동(橘洞) 윤규로(尹奎魯)의 산정이었는데, 다산이 이곳에서 적거(謫居)하는 동안에 실학을 집성함으로써 문화재로서 빛을 더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래의 초당은 도괴되어 1958년에 강진의 다산유적보존회가 주선하여 원래의 주초(柱礎) 위에 현재의 초당을 중건하였다.
또, 정석(丁石) ·다조(茶) ·약천(藥泉) ·연지(蓮池) 등 이른바 <다산사경(茶山四景)>이 있는데, 정석은 다산이 석벽에 친히 글씨를 새긴 것이고, 다조는 뒷담 밑 약천의 석간수(石澗水)를 손수 떠다가 앞뜰에서 차를 달이던 청석(靑石)이며, 연지는 초당 동쪽 앞에 수양을 늘어뜨린 아담한 못으로, 그 안에 몇 개의 괴석을 쌓아 석가산(石假山)을 쌓았다.
1801년(순조 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유배된 다산은 강진에서의 유배생활 18년 가운데 11년간을 이곳에서 살면서 현재의 《정다산전서》와 동 <보유>에 보이는 방대한 실학체계의 대부분을 구상하고 집필하였다.
다산초당 천일각
다산초당 동암
다산초당 올라가는길
시간이 남아 정다산유적지도 다녀왔습니다.
정다산 유적지
아름다운 마재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정약용 생가는 다산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 한 곳으로 그 이름을 여유당이라 하였습니다. 전형적인 조선의 양반집으로 경기도 지정 기념물 7호입니다. 문도사 왼편에 위치한 정약용 생가(이하 여유당)는 다산이 관직에 있던 기간과 유배기간을 제외한 거의 반평생을 보낸 곳으로, 유배 생활 이후(1800년 이후),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기운이 심상치않음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 전원생활을 즐기던 집(堂)입니다.
당호인 여유당의 여(與)는 의심이 많은 동물 이름이며 유(猶)는 겁이 많은 동물을 뜻하는 것으로, 사방을 두려워하며 조심스럽게 살아가고자 하는 선생의 의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1925년 대홍수 때 유실되어 방치되다가 후손들과 몇몇 뜻 있는 사람들에 의해 1986년 복원되었습니다.
남양주 시에서는 조선의 대 실학자인 다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다산 생가와 묘소를 중심으로 기념관과 문화관을 주변에 건립하여, 이곳을 정다산 유적지로 지정·관리하고 있습니다. 마을 옆의 팔당호와 남한강은 그 경치가 아름다워 여행코스로도안성맞춤입니다.
정다산유적지 안내판
정다산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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