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의 소설 산화 독후감 인물을 중심으로 본 김동리의 현실인식과 현대사회에서의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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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7 / 201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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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가 발표한 두 번째 소설 「산화」는 한 가족의 궁핍하고 비참한 삶을 통해 지주와 소작인 간의 계급적 갈등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지주와 소작인 간의 이러한 대립과 갈등의 문제는 당대 현실의 주요한 문제로서, 작가는 현실에 대한 관심과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 분명히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주와 소작인간의 갈등은 이전부터 있어 왔으나 태생적 신분 질서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여 자본력이 신분을 결정하는 사회, 억압과 착취가 횡행하는 비정상적인 식민지 상황 속에서의 취약한 경제 상황은 가지지 못한 자를 더욱 더 가지지 못하도록 궁지로 몰아갔다. 이러한 사회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은 현실적 배경 속에 던져진 한쇠네 가족을 중심으로 극명히 드러나고 있다.
찬물이는 가족을 지키고 살림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가장임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을 단 한번도 배불리 먹일 수 없다. 아내가 모욕을 당해도 그에 저항하기 보다는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밖에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쏟아지는 눈물을 닦으며 숯을 굽는 일 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파탄난 가정의 경제 상황에 침묵하는 것에도 화를 낼 수 없는 이유는 찬물이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찬물이에게 없는 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나 책임감이 아니라 자본력이었다. 자본력이 없는 취약계층인 찬물이는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지도 않는다. 자본력이 없는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무력하고 무능력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궁핍한 삶에 소극적으로 살아내는 찬물이와는 달리 실제 가계를 책임지고 있는 아내는 가난 앞에서 하루하루를 비장하게 살아간다. 그의 모습은 생존이라는 전쟁에 최전방에서 싸우다 무수한 부상을 입고 장렬히 전사하는 전사와 같다. 그처럼 자신의 몸을 축내서라도 시어머니를 부양하고 가계의 경제를 일으켜 보려는 아내의 적극적인 노력은 무기력한 찬물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생존을 향한 그의 투쟁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남편으로부터의 폭력과 굶주림과 죽음 뿐이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자 했던 아내의 실패는 ‘노력하면 달라진다.’라는 일말의 희망마저도 꺾어버린다.
비참하고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할머니에 의해서도 이뤄진다. 할머니는 생계를 위해 육체 노동을 했던 아내와는 달리 산신님만 믿겠다는 기복 신앙의 힘으로 삶이 변화될 수 있다고 믿고 끊임없이 가족이 잘 되기를 빈다. 그러나 할머니의 간절한 염원과 노력은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전통적 세계관을 보여줄 뿐 가족의 굶주림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할머니의 기도는 한쇠네 가족의 궁핍함을 해결하기 보다는 오히려 한쇠네에 닥친 비극성을 더욱 고조시키는 역할을 할뿐이었다.
이 세 인물들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부당함에 순응하고 그 속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내는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지나친 굶주림으로 인해 고기가 썩은 줄 알면서도 먹는다. 살기 위해 먹고자 했던 이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먹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배고픔 앞에서 이성이 마비된 이들의 모습은 지독한 착취와 가난 속에서 기본적인 욕구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의 현실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이성적인 결정을 한 것은 의외로 찬물이의 아들 한쇠이다. 고기가 이상한 걸 알면서도 배고픔 때문에 애써 무시했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한쇠는 꿋꿋하게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 또한 그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부당한 폭력에 대해 분노할 줄 아는 인물이다. 자신들의 착취는 생각지도 않은 채 뽕잎을 따갔다는 이유로 도덕적 힐난과 모욕을 주던 윤참봉 맏아들의 소실 대신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밖에 없었던 찬물이와는 달리 그는 자신의 분노를 그 분노의 대상에게 정확히 쏟아낸다. 그러한 한쇠의 모습은 현실에 순응하며 비참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민중들에게도 부당함에 대한 분노가 존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저항과 투쟁의 가능성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의미에서 희망적인 인물인 한쇠 역시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처럼 네 인물은 각자의 방법으로 주어진 상황과 삶에 대응하였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물들은 분노할 줄도 모르고 분노를 어떻게 폭발시켜야 할 지도 모른다. 이러한 비극성은 지주와 소작인이라는 수직적 구조에 인간이 배제된 극단적 양태로써의 자본주의가 대입됨으로써 나타난 현실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기만 할 뿐 끝까지 그러한 비판의식을 고수하지는 못한다. 한쇠 가족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겪는 비극은 썩은 고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굶주림에서, 지주의 착취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그러한 상황을 제시하면서도 누렁내가 나던 썩은 고기처럼 자신의 부귀에만 급급한 윤참봉의 썩어빠진 가치관을 배태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고찰은 부족했다.
더군다나 당산제를 거르지 않고 지낼 때는 이런 변이 없었다는 한 마을 주민의 말은 작품의 비극을 사회 구조적 문제로 확장하여 접근하기 보다는 무속의 문제로 마무리 하는 것이다. 이는 할머니의 기도 장면에서 엿볼 수 있었던 한국적 분위기의 결말로서 기묘하면서 토속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문학적 가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말은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장면 묘사와 인물들의 상황을 통해 줄기차게 제시되던 작가의 현실 인식과 그에 대한 문제제기가 다소 힘을 잃는 결말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작가 스스로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고 있으나 그에 대해 더 고민하고 나아가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적극적인 태도보다는 스스로의 문학적 완결성에 더욱 무게를 둔다는 점에서 비롯된 한계일 것이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문제는 반세기를 넘어 현재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지주와 소작인이라는 단어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람이 배제된 자본주의가 사회를 지배한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교묘하게 각자의 삶을 위협한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최소한 한쇠와 같은 인물이 무력하지만은 않다. 그와 같은 인물이 분노를 터뜨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그러한 목소리들이 사회의 중요한 흐름이 된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우리는 「산화」를 읽는 데에 있어 그 문학적 가치를 되새김질 해 볼 뿐 아니라 작가가 깊이 있게 고찰하지 못했던 현실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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