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장강 대학에 와서

  • 등록일 / 수정일
  • 페이지 / 형식
  • 자료평가
  • 구매가격
  • 2015.06.27 / 2015.06.27
  • 6페이지 / fileicon hwp (아래아한글2002)
  • 평가한 분이 없습니다. (구매금액의 3%지급)
  • 800원
다운로드장바구니
Naver Naver로그인 Kakao Kakao로그인
최대 20페이지까지 미리보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자료평가하면 구매금액의 3%지급!
이전큰이미지 다음큰이미지
본문내용
긴장을 안고 9월 2일에 中으로 出國을 하려고 仁川机으로 가는데 비가 많이 오고 태풍은 많이 불고 그래서 出國이 내일로 미뤄질 줄 알았다. 그런데 한시간정도 지연이 되었다. 태풍이 계속 불어서 한 시간이 또 지연이 되고,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비행기를 탔는데 옆에 중국인이랑 기초(基礎)적인 대화(對話)를 나누었다. 그런데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고 나보고 잘 알아듣는다고 칭찬해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중국인이랑 대화가 통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좀 그랬는데 타고나서는 중국인이랑 대화를 하고나니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뿌듯했다. 中에 도착해서 武机을 보고 느낀 것은 시골이랑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으로 먹었던 것은 물이다. 물 맛이 한국이랑 다를 줄 알았는데 그렇게 차이가 없었다. 버스를 타고 학교 기숙사를 가는데 정말로 3시간 반정도 걸렸다.
강도 있고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데 한국은 시속 100km이상 달리는데 이곳은 느리게 가서 좀 답답한 면도 있었다. 江大宿舍에 도착해서 보니 한국기숙사하고 너무 달랐다. 한국기숙사는 따로 식당이 있어서 밥도 주고 그랬는데 이곳은 기숙사식당이 아예 없고, 방 구조도 달랐다. 한국은 아예 한 방에 2층 침대 두 개인데 이곳은 그냥 원룸식으로 방 두칸에 2명씩 생활하는 구조이다. 물은 무조건 사먹어야 했다. 식당에 가서 주는 물은 비위생적이라고 물이 생각보다 비싸지는 않았다. 물 작은 것이 1元이었다. 하지만 매일매일 사먹으면 비싼데 기숙사에 정수기는 있었다. 하지만 물이 계속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물을 사서 먹는 것이다. 매일 물 사는 것보다 한통에 8元이라서 괜찮았다. 일주일은 먹을 수 있을 것 같고 남자 4명이니까 빨리 먹을 것 같았다. 한달이면 4통이니까 훨씬 저렴하다. 그날 저녁은 고급식당에서 먹어서 그런지 맛이 괜찮았다.
계좌를 구설하러 가기 전에 양교수님께서 行에 대한 단어들을 알려주시고 그 다음으로 점심은 우리들끼리 알아서 먹는 것이어서 친구들과 몇 명은 牛肉炒을 먹고 몇 명은 蛋炒을 먹었다. 점심 2시반에 양교수님을 만나서 中行에는 같이 가시는 대신에 전혀 말씀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우리들이 알아서 카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中行이 이전에는 통장과 카드를 같이 만들어 주었는데 이번에 바뀌었다. 둘 중에 하나만 된다고 해서 카드를 만드는데 입금도 해야한다고 해서 100元을 입금하고 만들었다. 중국이라 그런지 言가 잘 생각이 나지 않고 해서 당황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만들었다. 中行에서 한국돈을 人民로 환전할 수 있냐고 양교수님께 여쭈어 봤더니 된다고 하셔서 직원한테 가서 바꾸어 달라고 하니 직원이 이곳은 환전이 안 된다고 해서 아쉬웠다. 에서는 어느 은행이나 人民로 환전할 수가 있는데 중국은 그러지 않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生食堂으로 가서 食堂를 만들었다. 처음에 만들때는 人民로 300元을 내야한다 해서 300元씩 내고 만들고 저녁을 그 식당에서 먹었는데 정말 느끼했다. 하지만 먹을만 했고 반찬이 있으면 골라서 밥에 비벼먹는 방식이었다.
4일에 저녁은 임윤선교수님께서 사주셨는데 괜찮았다. 특히, 고추잡채가 맛있고 생선요리도 맛있고 그럭저럭 나한테 입맛이 잘 맞았다. 기숙사에 와서 기숙사비를 월요일에 내야하는데 800元이 추가가 되서 돈이 모자라 외환은행에 돈 있는 것을 어떻게 찾나 고민했는데 친구들과 후배도 찾아야 한 대서 自取款机에 가서 찾으려고 하는데 우리 추측대로 몇 번이고 시도를 해도 되지 않아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중국인이 와서 돈을 찾으려고 해서 하는 것을 보고 하려고 했는데 중국인도 못하고 그냥 가려고 해서 물어봤더니 인출기에 돈이 없다고 해서 할 수없이 학교밖에 있는 自取款机에 가서 해봤더니 친구와 후배도 계속 안되서 중국은행카드는 될 줄 알았는데 되지 않아서 내가 외환은행카드로 했더니 한번에 돈이 나와서 신기했다. 그래서 친구도 해봤더니 이번에는 돈이 나왔고 후배는 여전히 돈이 나오지가 않았다. 알고 봤더니 비밀번호가 잘못 입력됐다고 계속 그렇게 自取款机에서 나와서 내일이나 모레 다시 行가서 알아본다고 했다.
5일 아침에 교실에서 양교수님께서 이 근처 지역 약도를 칠판에 그리면서 큰 병원과 沃 위치를 알려주셨고 버스비가 얼마인지 궁금해서 여쭈어보니 1元이고 택시비는 11元정도라고 하셔서 우리 모두 값이 저렴하다고 놀랐다. 점심 2시 반에 기숙사 앞에 보자고 하셨다. 그런데 1시정도에 반장한테 전화를 해서 우리들끼리 버스타고 알아서 오라고 하셨다. 양교수님께서는 도착하는 장소근처에서 기다리신다고 하셔서 버스를 타고 沙市를 갔는데 삼성회사도 있고 沃도 있고 패스트푸드점들과 메이커있는 상점들이 많았다. 沃도 있어서 가서 쇼핑을 했는데 어떤물품은 한국보다 싸고 어떤물품은 비싸고 그랬다. 沃하고 가격차이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고 비슷했다. 좀 더 나가니까 비싸고 학교근처는 가격이 저렴했다. 인터넷설치를 했는데 정말 오래 기다리고 기술자가 와서 해주는 줄 알았는데 우리 반장이 IP주소를 적어가서 사무실에서 알아오고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해주는 것보고 중국과 한국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인터넷 속도는 정말 느려서 다운은 못 받고 그냥 네이트온하고 이메일확인 정도만 할 수 있다.
우체국과 병원을 갔다. 학교근처에 있는 우체국은 소포나 택배를 받는 것만 되고 보낼때는 조금 멀리 있는 우체국으로 가야한다 해서 번거롭다. 병원에 가서 절차를 양교수님께서 설명해주셨다. 처음에는 접수실가서 접수를 하고 진료하는 과를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받고 의사선생님께서 써주시는 것을 약방에 제출하면 약을 지어준다. 그 다음으로 다시 접수실로 가서 진료비와 약값을 한꺼번에 지불하는 것이다. 환경과 시설은 좋지는 않았고 약 받는 곳도 병원 안에 있어서 편리한데 한국하고 비교했을 때는 차이가 엄청 심하다. 그런데 중국에 있는 다른 곳은 무슨 컨테이너박스하나 놓고 진료를 한다고 해서 그래서 이곳 병원은 정말 좋다고 해서 역시 한곳만 가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니고 관찰하고 그래야 된다는 것을 느꼈다.
학교 근처에 있는 마트가서 중국물품들을 20개이상 단어를 적는거였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것이다. 그리고 점심은 食堂가서 料理를 먹었는데 중국와서 먹었던 음식 중에 정말 맛있었다. 밥다운 밥을 먹어서 배가 든든했다. 기숙사에서 조금 쉬었다가 교재를 받고 를 소개해주었는데 나랑 성격이 비슷하고 중국사람은 중국어가 통하지 않으면 영어로 하는데 나도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말이 통해서 신기하기도 하고 좋았다. 9일은 드디어 수업이 시작하는 날이었다. 여기와서 거의 매일 10시에 만나다가 8시까지 교실에 가야하니 피곤하기도 하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한국으로 따지면 똑같은 것인데도 시간이 8시니까 힘들었다. 하지만 오전수업하고는 나머지는 자유시간이라서 이 점은 한국과 비교가 된다. 음식점들이 맛있는 데는 맛있고 그냥 그저그런 곳도 있었다.
를 만나서 휴대폰을 사러 갔는데 들이 직접 휴대폰을 알아보러 이쪽저쪽 다니고 제일 저렴한 휴대폰을 알아보고 우리한테 되게 친절하게 잘해주었다. 제일 저렴한 휴대폰이 디자인도 문안하고 더군다나 할인 된 가격에서 단체로 사니까 또 할인되서 완전 저렴하게 구입했다. 원래는 휴대폰사고 교내에서 휴대폰칩을 사서 아예 개통까지 하려고 했으나 시간이 늦고 그 충전하는 곳이 문을 닫는 시간이어서 내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끼리 마트가서 사고 기숙사 가려고 했는데 들이 시간있다고 같이 도와주고 근처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더니 저녁을 먹고 가면 버스가 끊긴다고 해서 또 한번 놀랐다. 중국은 정말 일찍일찍 다녀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엔 기숙사 들려서 짐을 풀어놓고 저녁을 먹으러 西으로 가는데 골목으로 들어가서 식당에서 糖醋肉과 감자로 요리한 음식과 고추잡채를 시켜서 여럿이서 먹었다. 중국친구들이 장보는 것을 도와주고 옆에 있어주어서 고마워서 사주려고 했는데 먼저 계산을 해서 다음에 사주기로 했다. 오늘은 휴대폰 사는 것이 하루일과였다. 하루하루를 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물도 사먹어야 하고 물가가 한국보다 저렴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래저래 돈이 들어서 정말 해푸게 쓰는 것 같았다. 기숙사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취를 하는 것 같았다. 다행인 것은 4명이서 돈을 나누어서 내는 것이다. 저녁을 먹고 중국친구들과 농구를 했는데 한국친구들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승부욕도 있고 정열적으로 격하게 하는데 중국친구들은 예의바르게 페어플레이를 해서 재미있었다. 중국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수업준비하고 지각도 하지 않고 담배도 피지 않고 술도 잘 못 마신다.
4명과 우리 13명이 다 아침 11시에 충전하는 장소 앞에서 만나기로 해서 가서 개통을 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 휴대폰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다음에 오라고 했다. 반장하고 중국어잘하는 후배한명이 하고 얘기하더니 모두 갈 필요는 없고 둘만 내일가서 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휴대폰을 개통하려면 50元씩 내야한다고 해서 3명이 가서 칩을 다 받아와서 3명이 설명해줘서 개통을 한 후 친구들과 후배들 번호와 동기들 번호 그리고 번호를 저장했다. 휴대폰번호가 11자리나 될 정도로 긴데 우리들끼리는 5자리로 간단하게 보낼 수가 있어서 편했다. 14일부터 본격적으로 진도를 나가는데 水平考는 정말 어렵다. 중국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은 그럭저럭 하겠는데 수업은 예습을 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가 없다. 교수님이 천천히 말씀해주셔도 水平考뿐만 아니라 다른 수업도 어려워서 공부를 해야한다. 수업시간 도중에 문자가 온 것이다. 나한테 문자보낼사람이 없는데 확인해 봤더니 교실에서 푸다오를 소개해준 날 취재를 했던 카메라맨이었다.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깜짝놀라고 기분 좋았다. 문자를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첫인상이 좋았다는 뜻인 것 같아서 뿌듯했다. 중국어로 문자를 보내는 것도 내 스스로 깜짝 놀랐다. 저녁식사 후 체육관에 가서 탁구와 배트민턴을 쳤다. 푸다오와 함께 탁구를 치고 쉬는 도중에 가 모르는 여자애한테 말을 걸어서 우리들하고 친하게 지내라고 하면서 소개를 해주었다. 첫만남인데도 껄끄럽게 대하지 않고 상냥하고 착하게 대해주었다. 수업끝나고 시내에 월마트 부근에 있는 피자헛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그곳에는 13명이
자료평가
    아직 평가한 내용이 없습니다.
회원 추천자료
  • 동양문화사 중국관련 독후감
  • 장강을 넘어 산동, 복건성으로 파급되어 간다. 그 파급현상은 중국인의 강남개발과 이주의 역사와도 일치하고 있다. 즉, 중국인이 많이 이주하면 할수록 인구가 급증하고, 과잉개발에 의해서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이 파괴되며, 자연생태학적인 균형이 깨져감에 따라 기근이 일어나고 식인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예를 들면 한(漢)의 고조2년 부터 흥평원년까지 4세기 동안, 식인현상은 대부분 중국문화의 발상지인 황하유역에서만 출현했다. 그런데 흥평

  • [교양] 동양문화사 중국관련 독후감
  • 장강을 넘어 산동, 복건성으로 파급되어 간다. 그 파급현상은 중국인의 강남개발과 이주의 역사와도 일치하고 있다. 즉, 중국인이 많이 이주하면 할수록 인구가 급증하고, 과잉개발에 의해서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이 파괴되며, 자연생태학적인 균형이 깨져감에 따라 기근이 일어나고 식인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예를 들면 한(漢)의 고조2년 부터 흥평원년까지 4세기 동안, 식인현상은 대부분 중국문화의 발상지인 황하유역에서만 출현했다. 그런데 흥평

  • [사학] 친일파 99인 자료
  • 와서 경성제대 예과에 입학하여 1937년 3월에졸업하였다. 이어 그 해 4월에는 다시 경성제대 법문학부 법학과에들어갔는데, 재학중이던 1939년 10월에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와 사법과에합격하였다. 전봉덕이 본격적으로 일제의 관료로서의 길을 가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그는 1940년 3월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같은 해 4월에 총독부내무국 지방과에서 도행정계 고등관 견습생활을 시작하였다. 친일관료로서의첫 발을 내딛었던 것이

  • [독후감]중국관련 독후감
  • 장강을 넘어 산동, 복건성으로 파급되어 간다. 그 파급현상은 중국인의 강남개발과 이주의 역사와도 일치하고 있다. 즉, 중국인이 많이 이주하면 할수록 인구가 급증하고, 과잉개발에 의해서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이 파괴되며, 자연생태학적인 균형이 깨져감에 따라 기근이 일어나고 식인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예를 들면 한(漢)의 고조2년 부터 흥평원년까지 4세기 동안, 식인현상은 대부분 중국문화의 발상지인 황하유역에서만 출현했다. 그런데 흥평

  • [고전시가론] 가사문학
  • 대학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를 전사(傳寫)한 도남본(陶南本)과 가람본이 있다. 출처: 동아대백과사전*연대 : 조선 선조 때*갈래 : 내방가사(규방 가사), 서정 가사*표현 : 직유법과 의인법을 구사하여 표현의 효과를 높이고 있으며, 대구법을 사용하여 의미의 율격을 얻고 있다.*율격 : 34조 44조를 기조로한 4음보의 연속체*주제 : 봉건 제도하의 부녀자의 한*해설 : 이 노래는 ‘고금가곡’에 실려 전하는 최초의 여류 가사로서 일명 ‘원부가(怨婦歌)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 저작권 관련 사항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레포트샵은 보증하지 아니하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업자등록번호 220-06-5509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2-539-9392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806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3 reoprtshop.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