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영화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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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7 / 201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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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라는 개념은 무시할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들도 그걸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도권의 사람들은 그걸 드러내고 싶지 않아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곡시켜 버리는 거죠.. 여고와 남고에서부터 성개념은 달라지니 말입니다. 개봉판에서는 Y가 여고생이라는 것을 다 잘랐다고 합니다. 여고생이 그런 행위를 하면 변태란 것이죠.. 아직 한국에서 성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이며, 그런 왜곡은 우리사회의 부적절한 은폐와 몰래 하는 일의 지극한 즐거움을 부추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정리가 되지 않은 저이지만, 영화를 본 후의 느낌은.. 이건 영화도 아니다 정도 입니다. 노랑머리 보다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니까요.. 장정일씨의 소설이 다 그렇지만, 성적인 부분은 정말 마광수씨와 거의 닮아있었습니다. 저로는 정확히 어떤 느낌일지 짐작도 안가는 사도히즘과 마조히즘이 등장하고, 계속되는 포르노그래피에 버금가는 성행위들은 영화라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성개방이나 우리 나라의 왜곡된 성문화 등의 논란을 제껴두더라도, 짜증이 났습니다. 심지어는 이런 필름을 어떤 생각으로 찍었는지, 주려 하는 것은 무언지, 설사 성을 매개로 우리나라에서 억압하는 표현의 자유를 조금이나마 풀어보려 했더라도, 관객에 어필되지 못하는 SM(사도히즘 마조히즘을 줄인것입니다.)까지 동원할 필요는 무었이냐 입니다. 이해되지 않은 부분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혼란스럽습니다. 영화는 하수구이어야 한다는 저의 논지에는 맞지만, 왠지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계몽적인 영화, 교훈적 영화가 영화다라고 말하고 싶은건 아닙니다. 시각적 거부감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부담되는 건 부담되는 것입니다. 음란물이건 폭력물이건 부담되는 것들을 보고싶지 않은 것은 관객의 선호라고 생각하며,
아, 말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사과드립니다. 누군가의 정리가 필요할것 같습니다.
보신분의 이야기도 상관없고, 보고싶은, 혹은 보고싶지 않은 분의 이야기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가치관은 상대방과의 논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깐요.. 어렵사리 잡은 화두이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화두입니다.
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영화로써는 가치없다. 다만 거짓말이 몰고온 우리 영화의 검열이나, 한계는 조금 긍정적으로 발전시켰다."
그 유명한 <거짓말>을 봤다. 가릴 건 다 가리고 잘릴 건 다 잘린, 그렇고 그런 김 빠진 맥주 같은 비디오로, 18세 강력금지라는(혹은 간곡히 금지라는) 딱지가 눈에 띠는(그래서 미디오 주인의 각별한 관심을 호소하는) 독특한 비디오로.
거짓말이 유명하다니 참, 참말이 욕먹는다는 생각이 든다. 거짓말이 남진, 혹은 감독 장선우가 나쁜영화(그래 이 영화 때문에 좋은 영화도 욕먹는다.) 통해 제기한 도발은 사회적인 의미에서, 특히나 낙후한 전근대적 성향의 한국 땅에서는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정치적 억압이라는 것이 성적 왜곡이라는 형태로 드러난다는 게 현실이고(음지의 매매춘은 허용하되 양지의 외설은 안 된다?) 그에 대한 정치적 수사로 장선우의 작업이 읽힌다는 것이다. 그의 진정성과는 별개로 그 영화들이 한국에서 가져온 파장들, 혹은 그 논란들은 충분히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주제넘지만 나는 그 사회적 파장들과 별개로 평을 늘어놓고자 한다. 이 영화는 참 형편없는 영화다. 서사가 포기되니 재미가 없다. 배우들의 연기가 비릿하니 대부분이 베드씬인 장면 하나 하나가 행위따로 대사따로다. (맞으면서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는 제이의 대사는 그 어색함으로 거의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 물론 엉성하게나마 이를 이끌로 가며 피학과 가학을 역전시키는 감독의 의도가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그 의도란 게 그저 알몸에 불과하다. 예술의 형식을 띠지 않으니 그저 직설조로 김영진(‘영화, 에로시티즘,정치’, ‘아웃사이더_01’)에 의하면 이 영화는 ‘반미학’적이다. 그러니 재미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기왕의 미학에 대한 관습을 전복시킨다는 의미에서 기존의 잣대는 무의미하다. 그러나 김영진은 여전히 기존의 잣대로 그를 해석하고 있다. 바로 이렇게.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나는 늘 장선우의 형식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예술가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예술가가 구도자와 다른 것은 자기 매체를 장악하는 형식의 힘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선우는 형식을 초월함으로써 구도자를 닮으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김영진 ‘영화, 에로시티즘, 정치’ ‘아웃사이더_01’ (아웃사이더, 2000)P106
반미학으로 정의되는 순간 형식과 관련된 예술의 잣대는 무용해진다. 미술관 벽에 세워진 변기는 형식이 없다. 그러나 그건 예술이다. 왜? 유명한 예술가가 예술을 했기 때문에. 반미학으로 정의된 장선우의 영화는 장선우이기 때문에 예술로 받아들여지며 이렇게 모순된 발언을 낳는다. 지루한 포르노그래피에 몇몇 의미 심장한 화두 좀 던져 놓았기로서니 그게 미학을 뛰어 넘는 반미학이 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원작의 파급력 (예컨대 작가의 구속 및 사회 이슈화)과 무명 배우지만 배우들 면면이 갖는 화제성(예컨대 실제 유명 설치 미술가인 남자 배우)과 곧바로 해외 영화제로 직행하며 해외에서부터 화제성을 더 풍족하게 한 전략, 그리고 장선우라는 괴짜이면서 과거 ‘정치적(혹은 진보적)’이었던 감독의 정체성 등이 이 영화의 골격은 물론 갑옷까지 이루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가 그나마 서사적 구조의 아이러니를 잃고 도달한 최악의 싸구려 포르노그래피이다. 영화에 포함되어 있는 정치적 수사는 아부런 진정성이 없다. 게다가 장선우는 김영진의 말처럼 결코 ‘형식’을 포기하지 않았다! 딴에는 영화를 끝내고 선방에 들어가 선을 했다고 참 비장하게 말하지만, 그는 이런 말을 했드랬다. 여배우가 너무 예뻐서 영화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영화를 통해 도를 구현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포기되지 않는 허욕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선방에 들어간다는 것, 너무 삐딱한 생각일까.
그가 포기하지 않은 ‘형식’은 바로 여배우이다. ‘거짓말’을 옹호하는 대개의 담론에는 뼈만 앙상하고 참 딱하게 생긴 남자 주인공이 중심에 서 있다. 우리 아비의 초상이라는 얘기다. 처음엔 여자를 때리다가 나중에는 때려 달라고 사정을 하는 아비. 궁극적으로 그들의 원형은 바다인 어미의 자궁에서 네다리를 오므리고 앉아 영양분을 얻어 마시던 시절이다. 그는 확실히 기존의 포르노적 도식을 파격적으로 (물론 한국에서만)무너뜨린다. 더군다나 와이는 사디스트에서 마조히스트로 바뀐다. 그는 와이에게 맞으면서도 이기적이다. 결코 와이를 위해 맞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잔선우의 뻔히 보이는 도식이 완성되는 것이다.
남자 주인공만 놓고 보면 야하다는 생각. 그래서 외설이며 상업적이다, 라는 생각까지 개입되기 힘들다. 앙상한 뼈에 머리통만 확대되는 앵글에서 그의 모습은 너무 희극적이고 우스꽝스러움을 넘어 연민의 여지마저 있다. 여자 주인공은 어떤가. 이여자 주인공은 물론 나중엔 사디스트로 개과천선하지만 여전히 제이를 위해 마지막 은총을 베풀고 날아가 버린다. (곡괭이 자루를 휘두르는 천사로 묘사되고 있다.) 천사의 모습은, 물론 제이와 비교도 되지 않게 예쁘다. 혹 제이를 보고 그게 뭐 이쁘냐고 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가 모델 춘신이고 몸매 하나는 ‘쥑여준’다는 사실에는 공감할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 같지만 이는 중요하다. 왜? 이들이 연기한 것은 반포르노 적이지만 이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의 기본설정은 여전히 포르노족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영화를 이끌고 가는, 그래서 재미없는 베드씬마저 흥미롭게 하고 관객들의 시선을 묶어 두는 것은 와이이다. 이 생의 에너지 충만하고 섹시한 여자 주인공과 타락하고 비루한 한 남자 주인공이라는 설정은 따라서 기존과 전혀 다르지 않는 형식위에 성립하는 것이다. 남자 주인공을 통해서 그의 의도가 일부 관철되었는지 몰라도 여자 주인공은 여전히 사회적 통념의 이미지에 갇혀서 빠져 나올 수가 없다. 그게 아직 보살의 경지에도 못이룬 장성우라는 인간의 한계일 지도 모르겠지만(이건 물론 우리 인간 모두의 한계이기도 하다) 예술가이면서 예술가를 포기하지 못하고 구도자인 척 날아가 버리려는 데서 파생된 괴상한 영화가 바로 <거짓말>인 것이다. 장선우가 아니면 그의 이름만 빼면 정말 뼈만 앙상한 삼류영화다. 정작 그게 그가 의도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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