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독후감 __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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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은 향년 83세에 숙종의 사약을 받고 죽었다. 우암 송시열은 누가 무어라 해도 조선 500년 역사의 한 획을 굷게 긋고 간 것은 사실이다. 송시열이 태어나가 전과 그 후의 약 100여 년 간은 조선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고,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조선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400 페이지나 되는 이 책을 매우 진지하게 읽었다.
광해군 15년에 서인은 세상이 경천동지할 인조반정을 일으켰다. 명분은 첫째로 광해군이 임진왜란 때에 원군을 보낸 명나라에 대한 배신과 둘째로 선왕인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 김씨의 존호를 페하고 서궁이라 칭한 것은 불효라는 명분이었으나 서인들은 오로지 권력을 장악할 야심으로 광해군과 북인을 정권에서 끌어내리려 한 것이다.
소인의 성품을 갖고 있는 인조는 결국 천명을 어기고 소현세자와 관련된 친인척들을 모두 죽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소현세자가 집권하여 개혁과 신 지식을 받아들여 정치를 하였다면 일본의 개국 시기보다 200여 년 앞서서 부국강병을 이끌어 냈을 것이다.
인조가 세상을 떠난 다음달 효종 6월 드디어 송시열이 출사를 한다. 효종은 태생자체가 명분이 별로 없덨다. 따라서 그는 북벌을 존재의 정당성으로 삼았다. 그렇지만 그 북벌 조차도 사대부의 지원 없이는 추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서인인 송시열의 예우는 필수불가결한 것이었고, 송시열 또한 효종의 북벌을 표면적으로는 지지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희대의 사기극이었다.
어쨌든 송시열이 펼친 체이부정은 그 본심이 무엇이든 효종-현종-숙종으로 이어지는 종통을 흔드는 결과였고, 그에 따라 송시열은 숙종때에 실각하고, 숙종이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삼은 것에 대한 송시열의 상소로 숙종은 송시열을 사사한다. 그러나 송시열은 끝까지 자신의 정에 서있고, 다른 사람은 사에 서있어서 죽는다고 생각한 위인이다.
성리학이 근간인 조선의 한계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가장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게 된 송시열의 시대가 가슴 아프게 와 눈물을 흘린다. 송과 명의 사상이었던 주자학을 성리학의 형태로 받아들인 조선의 유학자들의 한계와 양명학과 같은 실질적 학문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예학 중심의 사상으로 발전한 성리학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기간이었다.
그래도 리더가 변화하면 가능했던 모든 일들을 거의 손도 대지 못하는 그들을 보았고, 신분제와 그들의 학통으로 보호를 받던 기득권층의 눈치를 어쩔 수 없이 볼 수 밖에 없었던 왕조과 정치가들의 안타까운 모습들을 또한 보았다.
속담에서 인용하지만 그 거꾸로를 보자.“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나무라는 형태의 상황이 전개되는 안타까움이다. 이것이 왜 잘못인가?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된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송시열은 자신에게 겨가 묻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주자의 정통성만을 내세워 정치를 펼친 것이다. 그러니 주자적 근본주의에서 벗어나질 못하였다. 욕먹은 똥 묻은 개들은 마음의 깊은 상처와 앙심을 품게 되고, 그에 따라 진노함과 어리석음을 행하게 되고 결국 송시열은 그렇게 쓰러져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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