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줄거리 인물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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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삼국지의 줄거리]
시황제의 진에 이어 두 번째로 중국을 통일한 유방의 한도 400년을 이어온 구조적인 모순으로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황제는 어진 신하들을 멀리하고, 아첨을 일삼으며 쾌락을 부추기는 환관 무리들만을 가까이 했다. 외척들이 정치를 간섭하여 매관매직을 일삼고 관료들은 권력다툼에 여념이 없으니, 왕권은 있으나마나요 사회 기강은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민중을 내세의 허황한 믿음에 빠뜨리던 사이비종교 ‘태평도’를 세운 장각을 우두머리로 한 황건적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왕의 군사들과 조정을 지지하는 군벌에 의해 제압당한다. 그 과정에서 조정의 권위는 더욱 약해지고 반면 각 지역 군벌들의 힘은 강화되었다.
조정에서는 황건적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무장들은 대접하지 않고 "십상시"라 불리는 환관들에게 아부한 이들과 심지어 황건적들과 내통한 자들이 중용되는 어처구니없는 부패인사를 감행한다.
이를 보다 못한 대장군 하진은 조정의 모든 환관을 주살하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에 사람들을 불러 모았는데, 이 때 환관 타도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사람들 가운데 조조와 원소가 있다. 하진은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환관들을 뿌리 뽑기 위해 유력한 호족이었던 동탁의 군사를 낙양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을 알아챈 환관들이 선수를 쳐서 하진을 죽이고, 이에 분개한 원소, 원술 등이 군사를 몰고 궁궐로 들어가 환관을 모두 죽여 버린다. 하진의 부름을 받고 낙양을 향하던 동탁은 사태를 관망하다가 20만 대군을 이끌고 궁궐로 들어가 난장판인 조정을 장악한다. 동탁이 조정을 장악하자 원소, 원술 등은 곧바로 자신들의 근거지로 돌아간다. 대권을 장악한 동탁은 황제를 폐하고 새로 황제로 세우고 전 황제를 독살하고 제멋대로 정사를 처리한다.
이에 조조는 모든 제후들에게 공문을 보내 동탁을 타도하기 위해 궐기할 것을 호소한다. 원소, 원술, 조조, 마등, 공손찬, 손견 등 제후들이 한곳에 모여 원소를 맹주로 삼은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된다. 이 소식을 들은 동탁은 낙양에 불을 질러 버리고 황제와 문무백관을 데리고 장안으로 도망한다. 반동탁 연합군의 지위부가 동탁이 버리고 간 낙양 땅을 바라보며 만족해하고 있을 때 조조는 혼자서 군을 이끌고 장안으로 쳐들어가지만 동탁의 군대에게 크게 지고 만다. 게다가 손견이 찾아낸 옥쇄는 각 제후들의 야망을 부추기는 촉매로 작용하고, 이로 인해 연합군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동탁이 사도 왕윤과 믿었던 심복 여포에게 죽임을 당하자 동탁의 장수였던 이각과 곽사가 장안을 점령해 왕윤 등을 죽이고 여포는 패해 달아나고 만다. 황폐한 낙양으로 돌아온 임금 헌제는 조조를 불러 도움을 청한다. 천자의 권위를 등에 업은 조조는 이각과 곽사를 무찌르고 이후로 가장 유력한 제후가 된다. 한편 공손찬 등을 토벌하고 하북 일대를 평정한 원소는 조조와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을 펼치는데, 관도의 전투에서 2만의 조조 군사가 10만의 원소의 군대를 섬멸한다. 원소는 그 싸움 이후 얼마 못가 죽고 그의 아들들이 조조에 잠시 대항하지만 곧 평정된다. 중국대륙 북부 일대가 모두 조조의 세력 아래 들어온다.
강동 일대는 손견이 죽고 난 뒤 그의 아들 손책이 평정한다. 손책은 작은 항우’라는 뜻의 ‘소패왕’으로 불린다. 조조는 손책을 오후에 봉하고 혼인관계를 맺는다. 200년, 조조와 원소가 관도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손책은 허도에 있던 한나라 헌제를 맞이하려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26세의 젊은 나이에 죽는다. 그 뒤를 이은 동생 손권이 바로 삼국시대 오나라의 초대 황제이다.
한편 유비는 20년 넘게 공손찬, 도겸, 조조, 여포, 원소 등에게 몸을 의탁하며 떠돌이 생활을 한다. 하지만 유비는 한의 황실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을 다짐하며 도원에서 관우, 장비와 형제의 의를 맺고, 세 번이나 몸을 굽혀 찾아가 예로써 제갈량을 얻는 삼고초려의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형주 땅의 유표에 몸을 의탁한 유비는 형주의 한 고을을 맡아 다스리게 된다. 조조나 손책에 비해 유비의 출발은 너무 늦고 세력 또한 미비했다.
중국 북부를 장악한 조조는 전국을 통일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대군을 이끌고 형주로 쳐들어간다. 유표의 뒤를 이은 유장은 조조의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항복해 버리고, 유비는 강하로 도망하는데 형주의 주민이 모두 그를 따른다. 가까스로 강하로 온 유비는 강동에 제갈량을 보내 힘을 합쳐 조조를 물리치자고 청한다. 손책의 뒤를 이은 손권은 제갈량의 말을 듣고 주유를 대도독으로 임명하고 조조의 100만 대군을 맞서 싸우게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적벽대전이다. 수많은 계략들이 오가다 결국 조조의 100만 대군이 괴멸하고 만다.
오와 위가 싸우는 동안 유비는 제갈량의 교묘한 계책에 따라 형주 일대를 장악한다. 대승을 거두고도 얻은 게 없는 손권은 노숙을 파견해 형주를 되돌려달라고 요청하지만 제갈량은 노숙을 설득하여 익주(서촉)를 얻을 때까지 형주에 머물기로 합의를 이끌어낸다. 형주에서 착실히 기반을 다진 유비는 형주를 관우에게 맡긴 채 익주로 쳐들어가고 마침내 서촉과 한중 일대를 평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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