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영화를 통해 본 상하이와 상하이인의 정체성 [중서 교류와 모던 상하이, 상하이 영화, 상하이인의 연구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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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중국영화를통해 본 상하이와 상하이인의 정체성
1.중서교류와 모던 상하이의 부침
-1840년 아편전쟁이 일어나고 1842년 난징(南京)조약이 체결된 다음해 상하이는 개항을 맞이하면서 중국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했다. 지정학적 가치는 일찌감치 주목을 받아왔었고 1843년의 개항을 계기로 집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서 교역의 관점에서 아편전쟁 이전의 광둥(廣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840년 이전 광저우(廣州)는 국가의 공인을 받은 특허상인인 ‘13공행(公行)’을 대표로 하는 광둥무역체계의 중심이었다. 17~18세기 중서 무역의 총괄했던 13행은 19세기 중엽 국가 위기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는 주로 아편전쟁의 배상금 부담과 5구 통상으로 인한 독점적 지위의 상실로 표현되었다. 1850년대 상하이는 광저우를 대신해 중국 최대의 무역항이 되었다. 과거 작은 어촌이던 상하이가 전국 최대의 무역항이 된 것은 광둥 상인들 덕분이었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상하이는 난징조약 이전부터 번성하기 시작했다. 아편전쟁이 일어나기 8년 전인 1832년 6월 21일 영국 상선 아머스트(Amherst)호가 청나라의 금령을 깨고 상하이에 들어와 18일간 머문 적이 있었다. 그 배의 선장이었던 린제이는 중국 해안 경비 태세를 자세히 정찰했고 훗날 영국정부에 중국 침략을 진언하기도 했다. 그가 동인도회사에 제출했던 보고서에 따르면, 아머스트 호가 입항하고 일주일 동안 상하이에 들어온 상선이 400척이 넘었는데, 배의 크기가 100톤에서 400톤까지였고 선적도 톈진(天津), 푸젠(福建), 광둥(廣東)뿐만 아니라 타이완(臺灣), 류추(琉球), 안남(安南), 타이 등 다양했다. 개항 이전부터 상하이는 동남아시아와 교역이 이루어졌던 곳이다.(이상 진순신 2000, 206~207쪽 참조) 이로미루어보면 상하이는 1830년대 초에 이미 국내외 해상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중서교류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 측 창구는 1804년 이전의 광저우, 1843년 개항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직전까지의 상하이, 1905년대 이후의 홍콩,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의 광저우와 선전(深), 1990년대 이후 상하이가 중심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상하이는 중국 근현대사의 진행과정을 압축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따라서 상하이와 상하이인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은 근현대 중국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2.‘상하이영화’와 ‘영화 상하이’
-중국영화는 오래된 제왕의 도시 베이징에서 탄생했지만 결국 조계시대의 상하이를 자신의 성장지로 선택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까지 중국영화사는 상하이영화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영화가 상하이로 인해 입지를 확보하고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면, 상하이는 영화로 인해 근현대화를 가속화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상하이의 영화산업은 상하이 나아가 중국 근현대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상하이영화에 대해 통시적, 공시적 고찰을 시도한 임대근(2006)의 논의에 의하면,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상하이영화’라는 명명이 쓰이지 않았거나 쓰였다 하더라도 적극적인 의도를 갖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상하이영화는 상하이(를 재현한) 영화(films on shanghai), 상하이(에서 제작된) 영화(films in shanghai), 상아이(에서 상영된) 영화(cinema culture in shanghai) 이 부분의 영문 번역은 비약이 있다. ‘상하이에서 상영된 영화’와 ‘상하이 영화문화’는 일치하지 않는다.
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에 대한 연구를 ‘도시연구’, ‘영화연구’, ‘문화연구’로 나누고 상하이영화 연구는 이 세 축이 상호 뒤얽혀 들어 있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측하면서 논의를 마무리하고 있다. 그러나 ‘상하이영화’의 하위범주로서 ‘상하이 영화문화’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는 미결의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3. 상하이인의 역사적 형성
-‘영화 상하이’라는 문제의식은 당연하게도 상하이인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상하이인의 정체성 형성에 몇 가지 중요한 계기 1853~1855년의 소도회(小刀會) 사건과 1870년의 쓰밍공소(四明公所)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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