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건- 나의 실존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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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조건- 나의 실존에 관하여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왜 살고 있는가? 등의 근본적인 질문은 누구나 당황하게 만드는 황당한 질문일 수 있다. 왜 사는가는 “태어났으니 사는 것”이고 “나는 나”라고 답하는 것이 가장 근원적이고 솔직한 답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식의 답은 삶의 목적이 없는 공허한 답이 될 수 있기에 좀 더 진지한 인생의 답이 필요하다.
본 주제를 고민하는데 있어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의 「인간의 조건」에 나오는 몇 구절은 가슴깊이 와 닿는다. 인간은 ‘지구로부터의 탈출’과 ‘세계로부터의 도피’라는 세계소외를 겪고 있다고 본 아렌트의 말은 실존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실존의 문제로부터 아렌트는 우리가 진정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로 “우리가 활동적일 때 진정 행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질문하였다(이진우외 역, 2011: 54).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아렌트가 제시한 것은 인간의 세 가지 조건 즉, ‘노동’과 ‘작업’과 ‘행위’였다. 이러한 세 가지 조건은 인간의 생명과 세계성, 그리고 다원성에 기초를 둔 것이다. 그러나 아렌트의 이러한 거창한 조건이 아니더라도 나의 삶 속 조그만 세계로 들어와 보면 나 역시 삶의 조건을 몇 가지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내가 살아가고 활동하고 행위하는 내 삶의 조건을 아렌트와 같이 세 가지만 상정해 본다면 첫째는 삶의 필연성이요, 둘째는 사랑하는 가족이며, 셋째는 나의 행복이 될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조건에 의하면 나는 살아가야 할 삶의 필연성에 의해 살고, 소중한 가족이 있기 때문에 살며, 나의 궁극적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나의 삶의 조건은 다소 중첩되는 면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현재 나의 삶에서 가장 소박한 것이며 일반적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삶의 조건은 조금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삶은 이미 최고 학부인 박사과정에 이르렀고 배운 사람으로서 배운것에 비해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없어야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의사가 메스를 들고, 군인이 총을 들었을때와 마찬가지로 지성인이 지식으로 무장했을땐 세상을 위해 책임있는 역할을 찾아야 하며, 이러한 역할을 올바로 찾지 못한다면 타인의 삶에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될 뿐만 아니라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남보다 더 많이 배우고 남보다 더 오래 공부함으로써 갖게 되는 사명은 어떤 것일까?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문자답하였던 그 질문에 이제는 답을 찾아야만 할 것 같다.
세상의 일을 돌보는 누군가 있다면(그가 신이라면), 그가 나에게 허락한다면, 나는 내가 배운 지식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와 교사들에게 용기를 주고 교육의 방향을 안내하고 싶다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점점 더 빈번해지고 심각해지는 사회문제와 청소년 문제의 근원적인 문제를 들여다 보면 그 뒤에는 반드시 부모나 교사의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부모와 교사가 지속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가운데 자라나는 후속세대를 지도하고 또 이 후속세대는 자라서 그들의 자녀를 지도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문제는 앞으로의 세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부모와 교사들이 갖고 있는 문제들은 그 양질의 상태가 점점 더 악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현대의 부모와 교사세대가 갖는 그러한 문제의 근원은 다음의 세 가지 이유에 있다고 하겠다. 첫째, 시대적 이유, 둘째, 세대적 이유, 셋째, 가치적 이유가 그것이다. 시대적 이유란, 경쟁위주의 시대와 물질 만능의 시대에 살아가기 때문에 이 시대를 거슬러 물질보다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어려운 이유이고, 세대적 이유란, 어려운 시절 교육받지 못한 부모로부터 그럭저럭 공부할 수 있었던 시대에 자란 현대의 부모와 교사가 최첨단의 정보화 시대, 멀티플레이어 시대에 자라나는 자녀를 혹은 제자를 앞서가기 어려운 이유이며, 가치적 이유란, 점점 더 양분화 되어가는 경제 구조속에서 시대적 이유, 세대적 이유 등으로 겪는 가치관의 혼란으로 자녀나 제자를 지도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이러한 혼미한 시대에 가장 절실한 것은 교육의 문제이며 따라서 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교육적 권위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정보화 시대를 지나면 ‘정신’의 영역이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어느 예언자의 말이 헛되지 않다면, 이제는 우리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법을 되돌아보고 정신을 제대로 다듬고 정리하는 것이 간절한 시점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나의 공부가 이 혼미한 시대에 부모와 교사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고 미래의 교육에 조그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할 수 있다면 이는 나의 또 다른 삶의 조건이 될 것이다. 나의 마지막 삶의 조건이 나의 실존을 충족하게 해 주길 바라며 오늘도 나의 하루를 먼저 되돌아 본다.
*참고: 한나 아렌트 저, 이진우 역(2011). 「인간의 조건」. 서울: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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