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과 인간소외 -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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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과 인간소외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우리 집의 유일한 가장인 아버지(혹은 장남)가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다면? 이 황당한 스토리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줄거리이다. 가족의 가장인 그레고르는 어느 날 벌레로 변하고 그 때문에 다른 식구들은 경제생활에 뛰어들게 된다. 처음에는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걱정하고 슬퍼하던 가족들은 시간이 갈수록 경제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그를 경멸하고 냉대하게 된다. 그는 가족의 무관심 속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이 찝찝한 줄거리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물질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보여준다. 가장 편안한 안식처인 가족에서조차 쓸모가 있을 때만 상대에게 가치가 있고 쓸모가 없는 존재라면 소외될 수밖에 없다. 만약 가족들이 그레고르의 본질적인 가치를 들여다 볼 주 알았다면 그의 현재 모습과 상관없이 소중히 여기고 소외되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칼 마르크스는 인간의 본질은 노동에 있으며 인간은 노동을 매개로 자아실현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체계에서는 대량생산, 소비에 들어가면서 인간을 인간다움으로부터 소외시키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적 풍요와 기술적 혜택을 누리면서 진정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잊어버린 채 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기계의 일부분이자 소비사회의 부속품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 ‘모던 타임즈’에서는 산업화된 현대 문명에서 인간 소외를 희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생산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공장에서 사장은 직원들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며 지시를 내린다. 심지어 식사시간의 효율을 위해 자동 급식 기계까지 발명한다. 밥을 먹기 위해 일을 하는 건지, 일을 하기 위해 밥을 먹는 건지 슬슬 구분이 가지 않기 시작한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찰리는 자동화된 생산 라인에서 나사못을 조이는 역할을 한다. 부품이 오면 반복해서 쉴 틈 없이 일을 해야 한다. 그가 잠시 한눈을 팔기라도 하면 뒤에서 망치질 하는 사람이 일을 못하고, 전체 공정이 무너지면서 작업이 엉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찰리가 나사를 조이다 사회 구조의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톱니바퀴 속에 낀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희극적이다 못해 비극적이다. 찰리는 결국 반복되는 작업으로 나사 모양만 보면 무엇이든 조이려고 하는 정신 착란을 일으킨다. 찰리는 결국 공장에서 쫓겨나고, 병원으로 보내진다. 퇴원 후, 찰리는 길에서 깃발을 들었다가 시위 주동자로 오인하여 경찰서에 수감 된다. 그는 곧 출소를 하여 조선소에 취직을 하지만 완성되지 않은 배를 바다로 보내버리는 바람에 도망치게 되고, 마침 선착장에서 빵을 훔치다가 들킨 아가씨를 도와 함께 달아난다. 찰리는 이렇게 계속 직장을 구하지만 이런 저런 소동에 휘말려 번번이 해고되고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현대 문명에 적응을 못하는 찰리가 경찰서에 몇 번씩이나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렇게 찰리를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 경찰서에 보내 재교육을 시키는 사회의 노력은 눈물겹기 하다.
이 영화는 현대 문명에서 기계를 지배해야할 인간이 오히려 기계의 노예가 되었으며, 일의 목표는 생산량의 증대이지 노동자의 행복이나 즐거움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칼 마르크스의 말과는 다르게 노동자들은 일을 통해서 어떤 자아실현이나 성취감, 본질적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는 ‘일’이라는 주어진 역할을 하는 하나의 부속품일 뿐 사회가 부여한 이 역할을 요구에 맞게 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어버린다. 산업화, 기계화의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춰진 인간은 생산과정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그 후, 식당에서 소녀가 춤을 추어 인기를 얻자 찰리를 그 음식점에 소개한다. 그는 춤을 출 때 가사를 외우지 못해 소매에 가사를 적었으나 춤추면서 소매가 날아 가버리자 결국 아무 의미가 없는 무국적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로써 그는 가사는 중요한 것이 아니며, 적극적으로 자신을 춤과 의미 없는 노래로 표현하면서 그는 얽매이지 않는 자아 정체성과 자율성을 찾고, 대중에게도 호응을 받는다. 그러나 소녀를 잡으러 온 경찰 때문에 둘은 다시 도망가게 된다. 결국 영화에서 찰리는 소녀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고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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